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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Mar 21. 2024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 정창현 한의사(1편)

#원전학 교수로서의 삶 #한국한의약진흥원장으로서의 삶

 올겨울, 대만드의 꽁치, 사막여우, 페럿은 경산에 위치한 한의약진흥원에 찾아가 정창현 한국한의약진흥원장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교수로서 학교에서 원전학을 가르치시다가, 지금은 한국한의약진흥원장으로서 한의약의 발전에 기여하고 계신 정창현 원장님의 진솔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약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 박사
북경중의약대학원 박사후연구원

(현) 한국한의약진흥원장
(현)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부학장
(전) 한의학고전연구소장
(전) 대한한의학원전학회 수석부회장
(전) 중국 내경학회 임원
(전) 경희대 교수의회 사무총장
(전) 미국 UNC Carolina Asia Center 방문 교수
intro


Q. 안녕하세요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


 저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1년 4월에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전공은 원전학으로, 대학에서는 내경을 주로 강의했어요. 한문, 의학한문도 강의했습니다. 특히 2002년에는 온병학 강좌를 전국 한의과 대학 최초로 정규과목으로 개설하여 10년 정도 강의했어요. 그때 온병학 책도 몇 권 번역했고요. 온병학, 감염병 쪽으로 한동안 강의를 열심히 해서, ‘감염병 전문가’라고 나름 자부하고 있습니다.


Q. 한국한의약진흥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이하 한의약진흥원)은 2016년에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되면서 ‘한약진흥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어요. 그 뒤 2019년에 한의약육성법이 개정되면서 명칭도 ‘한국한의약진흥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설립 목적은 ‘한의약 산업 진흥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기 위함’이에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28개 중에서 유일하게 한의약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기관이 한의약진흥원이죠. 양방 쪽에서 20개가 넘는 기관이 하는 일들을, 한의계에서는 한의약진흥원이 거의 다 하다 보니까 하는 일이 많죠. 그만큼 한의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관입니다.


Q. 답변 감사드립니다. 혹시 한의학연구원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기초 R&D, 즉 기초 실험 연구를 하거나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기관이에요. 그에 반해 우리 진흥원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화하는 쪽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더 실용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산업화 말고도, 한의약진흥원은 정책 지원을 담당합니다. 첩약 건보나 건강 돌봄 사업 등 한의약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근거를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 일을 합니다. 이런 점도 한의학연구원과 구별되는 차이점이죠. 또, 세계화 사업과 임상 연구도 우리 진흥원에서 하고 있어요. 정리하면, 한의학연구원이 기초 연구 쪽이고, 한의약진흥원은 좀 더 실용적인 쪽이에요. 대학에 비유하면, 기초 교실이 연구원이고 임상 교실이 진흥원이라고 보시면 돼요.


 Q. 요즘 원장님의 하루 일과와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기본적으로는 월화수목은 경산 본원에 있고, 금요일은 서울 정책본부에서 근무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은 전남 장흥에 있는 분원에 갑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국회 또는 기획재정부나 복지부 방문 일정이 많기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해요. 하루에 국회를 두 번 갔다 온 적도 있고, 어떨 때는 아침에 경산에서 출발해 서울에서 일과를 마치고 다시 경산으로 내려오고, 다음 날 또 서울로 올라간 적도 있어요.

 


학부 시절


Q. 한의대에 진학하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생물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s대 생명공학과를 지망했죠. 그때 모의고사 보면 항상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는데, 제가 학력고사를 못 봤어요. 그래서 재수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리 큰 누님이 갑자기 어디서 들었는지 “창현아 너 한의사를 한번 해보는 거 어떠냐?”라고 했어요. 근데 저는 그때 한의사가 뭔지 몰랐어요. 당시엔 전국에 한의과 대학이 몇 개 안 됐거든요. 그래서 누님 말을 들은 뒤부터 한의사에 대해 찾아봤는데, ‘이거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도 저한테 한의사가 잘 어울리겠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고요. 주변 추천을 통해 한의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한의학을 접하게 되었죠.
 
 Q. 학부 때는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도 교수가 되고 싶으셨나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동아리 활동, 연애, 공부, 데모 다 열심히 했죠. 당시가 한창 데모할 때였으니까요. 특히 우리 한의계를 위한 데모를 참 많이 했어요. ‘침 치료를 의료보험에 넣어달라, 한의사 공중보건의 만들어달라.’ 등… 지금 공중보건의가 있는 게 그때 여러분들 선배가 고생해서 만든 거예요.

 이렇게 학부 때는 즐겁고 재밌게, 또 평범하게 보냈어요. ‘내가 꼭 교수가 되겠다.’라는 생각은 특별히 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이런 건 있어요. 저는 몰랐는데, 제가 어렸을 때 쓴 일기에 장래 희망을 교수로 써놓았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셔서 가르치는 직업에 대해서 나름대로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다시 학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것들을 하고 싶으신가요? 학부 시절에 반드시 해보기를 추천하는 공부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까 얘기했듯이 노는 것도, 공부도, 연애도 원없이 해서, 굳이 학부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하고 싶은 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부나 경험을 추천해 보겠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건, 학생 때 최소한 의서 한두 권 정도는 한 번 완독하는 거예요. 제가 ‘전공 문맹’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전공서적을 스스로 읽지 못하는 사람을 말해요. 전공 문맹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즉 스스로 공부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스스로 의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해요. 다행히 요새는 번역된 책이나 자료가 많이 있어서, 의서를 읽지 못해도 큰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어떤 분야든 제대로 공부하려면 원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고 역자의 의도가 들어가요. 그래서 번역본만 보면 원래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사고의 다양성이 방해받을 수 있어요. 원서는 번역상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의대생이나 공대생들도 다 원서로 공부하는 거예요.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좀 힘들더라도 학생 때 최소한 사서나 의서 한두 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혼자는 어려울 수 있으니, 동기나 선후배끼리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한의학 공부 외에 다른 걸 추천한다면, 문·사·철 분야의 다양한 독서를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한의학이라는 게 단순히 교과서를 통해서만 습득되는 지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삶의 방식과 다양한 사고방식을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인문학분야 특히 문·사·철 쪽의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하나는 삶의 도구로써 어학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어는 필수고, 중국어나 일본어 등 제2 외국어 하나 정도는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앞으로 한의학은 미래 의학을 주도하고 세계 의학을 선도할 것이기 때문에, 해외 유입과 진출 모두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아주 유창하게는 아니더라도 한의학을 소개하고 환자를 볼 수 있을 정도는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진흥원장을 하다 보니까 외국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외국어가 능통하지 않으니까 아쉽더라고요.


 

교수님으로서의 삶


Q. 교수의 길을 걷기로 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교수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예과 1학년 때 은사님을 만나 한약으로 골수염을 치료받은 경험 때문이에요. 제가 10살 때 어깨에 골수염이 생겨서, 광주광역시의 한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그 이후로 20살 때까지 매년 가을이 되면 염증이 다시 도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마다 그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어요. 어깨를 째고, 엄청나게 큰 주사를 뼈에 꽂아서 고름을 빼내고, 항생제를 복용하는 치료였어요. 그때만 해도 의학 수준이 떨어졌으니까요.

 한의대에 들어와서는 ‘한약을 먹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故 박찬국 교수님 연구실로 가서 약 좀 지어달라고 했어요. 그때 마침 한국에서 처음으로 온병학을 번역하신 최삼섭 박사님도 같이 계셨어요.

 최삼섭 박사님은 임상의 대가셨어요. 광주에서 한의원 하시다 서울로 오셨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분께 진료를 보려고 한의원 앞에 여관을 잡아놓고 기다릴 정도로 환자가 많았어요.

 이처럼 임상을 굉장히 많이 하신 분인데, 두 분이 저를 보시고 약을 지어주셨어요. 그 약은 ‘탁리소독음’이라는 염증에 쓰는 약인데, 약을 먹은 지 딱 사흘인가 나흘이 되는 날 통증이 가라앉았어요. 그리고 약을 먹은 지 5일째 되는 날, 점심 먹고 오후 수업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러닝셔츠가 축축한 느낌이 나는 거예요. ‘땀이 났나?’ 하면서 봤는데, 고름이 나와 셔츠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어요. 매년 병원에 갔을 때는 고름을 주사로 뽑으려고 해도 전혀 나오지 않고 피만 나왔는데, 한약을 먹었더니 염증이 저절로 안에서 곪아서 예전에 피부를 쨌던 곳을 뚫고 깔끔하게 다 터져 나온 거예요. 그 뒤로 제가 지금까지 36년 동안 어깨가 멀쩡해요. 그때 이후로 ‘이거 뭔가 있다. 이 분과 공부하면 내가 뭔가를 얻을 수 있겠구나.’하고 은사님 밑에서 공부하다 보니까 교수가 된 것 같아요. 훌륭한 은사님 밑에서 공부하니까 공부가 너무 재밌었거든요.

 또, 제가 교수가 되는 데는 아내의 도움도 컸어요. 그때는 등록금도 제가 대야 했고, 조교도 한동안 무급 조교를 했으니까요. 아내가 지원을 안 해줬다면 제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을 거예요. 근데 고맙게도 아내가 도와줘서, 제가 한 10년을 조교 및 시간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는 게 가능했던 거죠.


Q. 원전학을 전공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냥 한문이 좋더라구요. 은사님 덕분도 있긴 하지만, 입학해서 맹자를 배울 때부터 원서를 읽는 게 좋았어요. 근본 원리를 탐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가지고 또 토론하고 응용해 본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걸 가르치는 것도 나름 상당히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Q. 원전학 교수님으로서 현대 한의학에서 원전학의 가치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원전이라고 하면, 옛날 거니까 지금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현대에도 원전 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첫째, 원전을 통해 한의학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 현대 한의학을 정립할 수 있어요. 한의학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어요. 전 시대의 이론에서 모순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병이 출현하여 이를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이론과 학파가 만들어졌죠.

 원전을 공부하면 이러한 한의학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이전 시대의 이론이 어떤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후대에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이를 현대에서도 적용하여, 기존 한의학 이론이 현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적절히 고쳐서, 현대 한의학을 합리적으로 정립할 수 있겠죠.

 둘째, 원전을 공부하면 한의학의 기본적인 원리와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어요. 원전은 오장육부, 십이경락 등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어요. 그리고 셋으로 나누는 삼음삼양의 사고방식이나, 오행으로 분류하는 사고방식 등 한의학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어요.

 셋째, 원전에는 검증된 임상 경험들이 담겨 있어요. 일종의 빅데이터라고 볼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수많은 사람을 치료해 보고 통계를 내보니까, 사람은 대략 12 경락 계통, 오장 계통이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소화가 안 될 때 여기를 누르면 병이 낫더라. 머리가 아플 때는 태충을 누르니까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더라.’ 같은 것들이 있죠.

 정리하면, 원전 공부를 통해서 정말로 필요한 기본 이론과 사고방식, 경험을 통해 체득한 임상 증거를 익힐 수 있어요. 또 의서를 시대별로 쭉 공부해 보면 한의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고, 그러면 현재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생긴다는 거죠. 이런 면에서 원전이 저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원전에는 그 시대의 여러 지식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틀린 내용도 있어요. 틀린 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Q. 교수의 길을 꿈꾸는 학생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교수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학문에 대한 신념이에요. 한의학을 믿어야 합니다. 근데 이러한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러 험을 통해 한의학의 효과를 눈으로 체험해야 돼요. 

 그래서 스스로 한의학 치료를 경험해보기도 하고, 본인이 건강하다면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체험해야 합니다. 훌륭한 선배님의 진료현장에 참관 가서 환자가 실제로 낫는 걸 보거나, 의료봉사를 가는 것도 좋죠. 이런 경험을 통해 학문에 대한 신념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학문에 대한 신념에 더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도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한의약진흥원장님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2편에서 계속됩니다!

Interviewer. 꽁치, 사막여우, 페럿

Writer & Editor. 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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