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데이터와 한의학의 만남/2부 대학원 생활 #한의사과학자 #대학원
저번 1부 인터뷰에서는 교수님의 데이터과학과 LLM 관련 연구들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2부에서는 초점을 조금 바꿔서 한의사과학자모임과 한의학 대학원 생활의 경험을 통해 유익한 이야기들을 담아왔습니다. 대학원 진학에 관심있으신 한의대생분들 뿐만 아니라, 한의계 대학원 시스템에 호기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참고할만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장동엽 교수님을 대신 만나 전해드립니다.
[약력]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조교수 (2025.02 ~ 현재)
대한동의생리학회 기획총무이사 (2025.03 ~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2024.05 ~ 2025.02)
발표상, 한국대사체학회 (2024.04)
미래인재상 최우수상, 대한한의학회 (2024.01)
가천대학교 한의학 박사 (2020.03 ~ 2024.02)
가천대학교 한의학 석사 (2018.03 ~ 2020.02)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통계·데이터사이언스 학사 (2018.09 ~ 2021.02)
동신대학교 한의학 학사 / 한의사 (2012.03 ~ 2018.02)
연구자의 생활
Q. 교수님께서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앞에서 얘기했던 내용이 이 질문에 답이 되겠네요. (https://brunch.co.kr/@mannadream4u/179)
지도 교수님과 메일을 주고받았던 게 본과 4학년 10월~11월 즈음이었니까요. 병원 지원도 다 끝났고, 국시도 두 달 정도 남았고. 대학원 서류를 넣는 게 11월이거든요.
그런데 확실한 건 교수가 될 생각으로 가진 않았어요. 흔히 교수 임용을 주차로 비유하거든요. 내 차가 아무리 좋아도 주차장에 자리가 없으면은 주차를 못 하는 거고, 내 차가 똥차인데 우연히 주차장 자리가 비어 있어서 주차를 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당연히 기본적인 역량은 어느 정도 있어야겠죠. 차가 있기는 해야할 거 아니에요. 교수가 되려면 당연히 능력도 중요하지만,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운과 때인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보면 그래요.
가끔 ‘어떤 교수님이 몇 년 뒤에 은퇴를 하시니까 내가 여기로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지.’ 이렇게 계산을 해서 입학을 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물론 개인의 자유이지만 저는 이런 사고가 대학원 진학의 좋은 동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개인의 관점에서도 별로 안 좋은 게, 아무리 계산을 해도 세상의 일이 계획한 대로 가지 않아요. 교수를 할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교수가 못 될 가능성도 꽤 높고, 연구라는 진로 자체도 생각보다 본인에게 안 맞을 수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을 하지만,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혹은 입학 자체를 후회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수가 된 이후에 못하겠다면서 나가기도 하거든요. 물론 연구를 하다 보니까 또 잘하게 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도 있지만 내적인 동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전공한 한의학과 컴퓨터를 융합한 뭔가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 이외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제 미래에 대해 더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보면 ‘너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었나…’하는 생각도 드네요.
Q. 플라밍고: 그러면 이메일을 보내셨을 때가 이미 대학원을 가겠다고 마음먹으신 뒤였던 건가요?
A. 대학원 모집 접수 마감이 한 11월쯤인데 보통은 그 전에 미리 컨택을 하기는 합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면접을 봐서 연구실에 들어가는 경우는 잘 없어요. 물론 연구 중심인 DGIST 같은 큰 학교들은 석사생들을 왕창 받아서 여러 교실들을 돌아가면서 체험하고 나중에 성적순으로 지원하게 한다든지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하죠. 하지만 전공을 막론하고 한국의 많은 대학원들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거든요. 왜냐하면 지도교수 입장에서도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의 생계와 교육을 지도교수 개인이 몇 년 동안 책임진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사실 대학원생이 입학하고 공부를 하게 되면, 그 학생의 등록금이나 생활비는 모두 지도교수가 확보한 연구비에서 나가고 학교는 금전적으로 거의 도움을 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대학원생을 뽑고, 교육하고, 생활비를 지원하고, 한명의 연구자로 만들어 졸업시키는 것은 사실 지도교수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하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교수들은 본인 밑에 대학원생을 받기 전에, 우선 자신과 면담하고 나랑 잘 맞는 학생인지를 알고 싶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나는 교수님 랩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교수님과 미리 컨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원 입학 원서를 쓰기 전에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연구실의 대학원생 선배들과도 미팅을 가진 뒤 지도교수가 그 학생들에게 ‘앞으로 저 학생과 한 식구로 지내고 싶은지’ 의견을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후 괜찮다고 판단된 후보자들에 대해 대학원에 원서를 써볼 것을 권유하게 됩니다. 물론 지도교수는 마음에 들어했는데 대학원의 심사위원들이 탈락시킬 수도 있죠.
아무튼 저의 경우 메일이랑 비공식적인 면접은 10월 정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후에 교수님께서 원서를 지원해보라고 말씀해주셔서 11월에 원서를 쓰고 12월에는 대학원 자체의 면접을 봤습니다.
Q. 사자: 아까 교수님께서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연구실 자리가 다 찼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그 때 다른 연구실에 지원을 하실 생각은 없으셨나요?
A. 이제 와서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 정도로 연구 자체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이 랩실 아니면 굳이’라는 느낌? 저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다른 연구실을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연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다만 컴퓨터로 한의학을 연구하는 랩실의 모집 공고가 올라온 걸 보고 안 하면 왠지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랩실이 아니면 절대 안 되겠다는 느낌까지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연구가 아닌 다른 길에도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저는 임상도 진짜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 같아요. 그 메일을 보낼 때에는 다른 경우의 수를 모두 접고 연구 진로로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거든요. 교수님 답장을 받고 결심까지 해서 다시 메일을 드렸는데 돌아온 답변이 ‘죄송하게 됐습니다.’였으니까 마음이 당연히 좋진 않았죠. ‘힘들게 마음을 바꿔봤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임상을 해야겠구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서두르고,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면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텐데 아쉽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반성+아쉬움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마음이 지도교수님께 읽혔던 것인지 정원을 1명 늘려 주셨고, 덕분에 연구를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Q. 대학원 생활이나 포닥 시절에 외롭거나 힘들었던 순간도 있으셨나요?
A. 제일 힘들었던 건 석사 2년 차였던 거 같아요. 저는 석사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논문이 나올 만한 그런 프로젝트를 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계속 뭔가를 공부하는 데 시간을 썼고,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그게 논문이 나올 요소는 잘 없었고. 근데 다른 선생님들이나 선배들을 보면 논문이 잘 나오니까 제가 연구실에 기여하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사실 교수 입장에서는 이게 학생을 배려해 주는 거예요. 사실 대학원 학위과정 초기에는 무조건 논문이 많이 나오는 것보다는, 얼마나 자기가 경험을 많이 쌓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구실이라는 게 재정 지원을 받아야 돌아갈 수 있어요. 보통은 지도교수가 연구비 펀딩을 따와서 실험비용 등 운영비용을 충당할 뿐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학생들의 생계와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지도교수의 어깨가 정말 무겁죠. 학생들은 그 연구과제들을 참여연구원으로 소속되어서, 연구과제를 함께 수행하게 되고요. 학생들이 물론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연구비를 받고 연구를 하는 사람이므로 프로의식을 갖고 연구과제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그래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성과가 나오고, 또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펀딩을 따올 수 있는 거죠.
일종의 한 배를 탄 선장과 선원의 개념인 거예요. 선원들이 노를 저어줘야 이 배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들 밥을 먹는 거고 안 그러면 망망대해서 같이 굶어 죽는 거예요. 여기서 교수가 선장이 되어서 모두를 끌고 가는 거죠. 근데 여기서 어떻게 보면 선배들이 열심히 노를 저어주고, 신입생 축에 들어갔던 저는 노를 저을 힘이 없다보니, 노를 젓지도 않고 밥만 먹었던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좀 답답했어요. 저도 이 팀에 기여를 하고 싶고 개인적인 실적도 내고 싶은데, 계속 공부만 하고 제가 이룬 건 없는 것 같았어요. 사실 그 당시 저희 연구실 사정이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았거든요. 초기 스타트업처럼 당장 몇 달 뒤를 걱정하며 다들 절박하게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노를 젓는 사람들 얼마나 힘들겠어요. 선장도 같이 노를 젓고 있고, 옆에서 다른 배가 끌어주기도 하는 고군분투의 상황이었는데요.
그 상황에서도 교수님이 최대한 페이도 더 많이 챙겨주려고 하시고, 처우가 정말 좋았어요.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그 마음에 맞춰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여기서 저만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 같고 실적도 안 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SCI 등재도 되고 그러는데 저는 졸업 논문 하나 간신히 쓰고 있는 그 상황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연구 주제는 무엇인지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죠.
당시에 좀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은 결국 지도교수님과 대화를 많이 나눠봐야 좀 해결되는 것 같아요. 지도교수님께서는 제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공부할 수 있는 게 좋은 거고, 논문이나 실적은 사실 졸업처럼 다음 스텝으로 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이니, 지금 당장은 그런 것보다 나중에 더 큰 연구를 하기 위한 역량을 쌓는 데 집중을 해야 되는 시기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런 조언들 덕분에 버텼고, 박사 과정 들어가면서 프로젝트도 많이 맡게 되면서 이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됐던 것 같아요.
Q. 사막여우: 교수님께서 지도 교수님의 조언을 통해서 힘들었던 순간을 버텼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혹시 그 외의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A. 참 다양한 원동력이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호기심’이네요. 연구를 하면 새로운 지식들을 내가 발견해 나가는 거잖아요. 진짜 이게 관련이 있을까? 실제로도 이렇게 될까? 이런 궁금증을 내가 스스로 풀어나간다는 즐거움이 좀 컸던 것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 실적을 내는 그 과정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내가 한 일들이 논문이나 다른 수단으로 기록이 쌓이고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게 저에게는 큰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았던 것도 크게 한 몫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연구실 생활에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관계거든요. 지도교수와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연구실 사람들하고도 갈등이 많이 생기거든요. 다행히 제가 있었던 팀에는 눈에 띄게 모난 사람도 없었고, 지도교수님을 포함해서 다 너무 좋은 분들이셨어서 그냥 행복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그런 시간들을 가졌던 것 같아요.
Q. 오리너구리: 들어보니 교수님께서 있으셨던 연구실은 좀 더 공부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A. 확실히 그런 부분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도교수님도 연구나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셨어요. 물론 임상에 비해서는 많이 적지만 그래도 금전적으로 월급을 최대한 많이 챙겨주려고 하셨고요. 저희는 행정 선생님이 따로 있었어요. 원래 대학원에서 대학원생들이 행정 일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거기에 시간 쓰지 말라고 행정 선생님을 아예 새로 한 명을 뽑아서 그 분께 행정 일을 다 맡기신 거예요. 그러니까 학생들 입장에서는 행정이나 잡무에 신경쓰지 않고 공부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Q. 교수님께서는 연구자로서 어떤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개인적으로는 정말 인간의 모든 역량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사교성 같은 것도 우리 연구자가 별로 없어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성공한 연구자들을 보면 다 사회성이 좋아요. 기본 중의 기본 역량이에요. 왜냐하면 이 연구라는 것도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많은 경우에 여러 사람이랑 같이 하잖아요. 특히 중요한 연구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수학 같은 건 혼자서도 하는 거지만 의학과 자연과학에서 하는 많은 연구들은 혼자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리고 사실은 과학이나 연구라는 것도 결국 어떤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잘 지내야 해요. 사람들하고 크게 싸우지 않고 잘 지내야 하는 거죠. 사교력이나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하는 것도 잘해야 돼요. 그래서 대학원의 많은 랩에서 그런 것들도 트레이닝을 시키죠. 지도교수들이 사교에 있어서 어떤 지침을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학회 같은 행사에 데려가면서 교수 본인이 하는 걸 옆에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보여주기도 해요. 때로는 지도교수가 불러서 어떤 점들을 개선하면 좋을지 얘기해 주기도 하죠.
사교력이나 인간관계 같은 부분도 지도교수님이 자연스럽게 조언해줄 수 있는 부분이죠. 예를 들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거나 “이런 태도는 동료들에게 좀 다르게 비칠 수도 있겠다” 같은 이야기요. 이런 조언들은 결국 학생이 앞으로 더 나은 커리어를 쌓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학부생 때의 교수-학생 사이에 비하면 훨씬 끈끈한 그런 관계인 거죠.
이렇듯 사교성도 당연히 필요하고, 끈기 있게 엉덩이 붙여서 몇 시간이고 앉아서 돌파하고 집중할 수 있는 역량도 당연히 필요하고, 연구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들도 갖춰져야 당연히 즐겁게 할 수 있겠죠. 안 그러면 너무 고통스러울 거 아니에요.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도전 정신 같은 것들도 당연히 필요할 거고요.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진짜 다 잘해야 돼요. 특히 뭐가 중요할지에 대해서 딱 떠오르는 건 잘 없네요. 그런데 제가 사교성을 가장 먼저 이야기한 이유는, 우리가 '연구자가 이런 것은 잘 못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것들조차도 사실은 필요한 경우들이 많다는 거예요.
하다못해 성공한 연구자들을 보면 몸이 좋고 운동을 잘하는 경우가 많아요. 체력도 좋고, 스포츠맨들도 많고요. 예체능적인 역량들 있잖아요. 그런 걸 잘하는 분들이 연구도 좀 잘한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있어요. 예체능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활동이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과 좀 연관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니면 그냥 인간 자체가 좋은 인간이면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Q. 학생 때 해보면 좋을 것 같은 활동 혹은 일찍 기르기 시작했으면 좋을 것 같은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영어를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한의학 연구자들도 해외 연구자들과 같이 협업할 일들도 있고 해외 학회에서 발표할 일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이런 기회도 좀 더 잘 잡고, 혹은 그쪽으로 더 집중해서 무언가 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특히 점점 한의계도 연구가 대형화되고 글로벌화되고 있잖아요. 한국 저널에만 논문을 내는 게 아니라 요즘은 그 이상으로 SCI 저널에 더 많이 내거든요. 그러면 읽고 쓰는 것을 영어로 해야 하는 건 물론일뿐더러 이제는 해외 연구자들과 소통할 일도 많아지는 거죠. 갈수록 더 많아질 거고요.
당장 대학원생을 뽑는 일만 보더라도, 한국인을 뽑을 수도 있지만 외국인을 뽑는 경우도 많거든요. 특히 한의대는 지방에 많이 있다 보니 한국인 대학원생을 뽑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요즘 외국인 대학원생을 뽑는 경우도 많은데, 소통이 되어야 하죠. 제가 영어를 조금 더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할 수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학교 다닐 때보다 교수가 되어서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언어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규모의 일이나 글로벌한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당연히 많이 주어지는 것도 중요한 점인 것 같습니다.
Q. 꽁치: 영어 말고 다른 언어를 추천하신다면 혹시 어떤 걸 추천하시겠어요?
A. 일단 영어가 기본이에요. 일단 영어를 잘하는 상태에서 다른 언어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할 때 소통하거나 협업할 때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랑 협업할 기회는 잘 없어요. 물론 연구 역량도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협업하고자 하는 대상은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영어를 잘하는 연구자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영어를 잘하시는 게 좋아요. 영어를 잘하면서도 추가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건 본인 선택이에요.
중국 통으로 갈 건지, 일본 통으로 갈 건지요. 고방을 좋아하면 일본어를 할 수도 있고요. 그건 편하게 취향껏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낙타: 한의학연구원의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인 KIOM URP에도 참여하셨는데, 당시에도 연구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A. 네. 연구에 관심이 있어서 팀을 만들어서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경혈학교실에 1년 정도 가서 실험했어요. 랫(rat)의 백회, 신문 같은 혈자리에 레이저 침을 놓아 뇌졸중에 대한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었어요. 그래서 뇌졸중 동물 모델을 만들거나, 침치료를 진행하고, 인지 능력을 평가하는 실험들을 진행했습니다. 뇌조직을 관찰하고 단백질 발현 변화를 보기도 하고요.
Q. 현재 교수님께서는 연구실에서 어떤 분들과 어떤 펀딩을 받아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계신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단 지금 제가 펀딩을 받은 정부 과제는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 사비로 연구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내년에 새로운 과제들에 지원할 계획입니다.
과제랑 별개로 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은 있어요. 벌써 4-5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지금 한의계에서 난임 치료 사업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저희 동의대 한의대 부인과에 최수지 교수님과 그런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연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어요. 또 부산대 권영규 교수님, 그리고 그곳 대학원생과 함께 하고 있는 연구가 있어요. 소화기 암 환자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환자들의 체형을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다른 부위에 비해 복부의 비만도가 높을 경우, 어떤 소화기 암의 리스크가 증가하는지를 분석하는 연구에요.
그리고 지금 저희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연구들이 있는데, 둘 다 LLM을 한의학 연구에 응용하고자 하는 연구예요. 첫 번째는 원전 연구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전의 텍스트 데이터들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데 LLM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관련된 문장들끼리 분류한다든지, 혹은 이 문장이 우리가 찾는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문장인지 알려주는 식으로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한의학에 있는 처방 정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싶다고 해보죠. 그런데 원전을 보면 어떤 문장은 처방에 관한 것인 반면 어떤 문장은 처방과 관련 없는 문장인 경우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 지금 같으면 사람들이 일일이 처방 목록에서 Ctrl+F로 찾아서 정리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번거로운데, 이런 작업에 LLM을 활용하면 원전 연구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구방법의 개선이 현재 갖춰진 기술로는 어느 정도 가능한지, 앞으로 그런 걸 잘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탐색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또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LC-MS)와 관련된 연구도 학생 한 명과 하고 있어요. 어떤 분자의 정체를 알아맞추는 기계라고 보시면 돼요. 미지의 물질에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주면 그게 이온화되어 파편화되는데요. 이런 파편들의 패턴을 보고 '얘가 원래는 이런 분자였겠네'라고 알아맞추는 연구방법입니다. 이러한 예측을 도와주는 기존의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저희는 LLM을 이용해서 이런 예측률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사람들이 의료를 어떻게 소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모인 한국 의료패널을 바탕으로 한의 의료에 대한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하는 연구도 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연구하고 싶은 주제들이 참 많습니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면 그 때 새로운 주제들도 더 많이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Q. 향후에 만들어 나가고 싶으신 이상적인 연구실의 모습이나 문화, 환경이 좀 있으신지 궁금해요. 또 그에 대한 교수님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실 경우 말씀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제가 원하는 것은 모두가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는 그런 연구실을 만드는 거예요. 행복하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함으로써, 몰입하고 배워가는 게 있음으로써 그래서 하루하루가 충실해지면서 얻는 기쁨과 보람이 있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들어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제가 좋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더라도 좋은 분위기와 좋은 조건이 갖춰진 곳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해서 발휘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해야지' 하고 그저 그렇게 지내게 될 수 있거든요. 다 같이 모두가 으쌰으쌰해서 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연구실의 구성원들이 그런 문화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조화와 화합, 그리고 선의의 경쟁과 서로에 대한 응원이 어우러지고, 평생의 학문의 동료들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습니다.
지도교수와 학생 간에는 상당히 많은 학문적인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도교수가 누구인지, 지도교수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학문을 해 나가는데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어느 대학에 교수로 지원을 할 때에도 나를 수련하였던 지도교수 이름을 써 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이유로 지도교수가 누구였는지 물어보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회를 가보면 "너 지도 교수 누구야?" 하면서 서로의 족보를 맞춰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 지도 교수가 누구이고, 그런데 그분은 노벨상 받은 어느 분의 제자였다더라 하는 식으로 서로 맞추는 거죠. 그러면 "너는 어느 라인 사람이구나" 하는 거죠. 물론 이걸 정치적으로, "너는 누구 라인이니까 나랑 친구야" 하는 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 사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연구 주제는 무엇인지,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받았고 대충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이겠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겠다, 하고 맥을 잡을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되는 거죠. 이 사람의 평판을 물어볼 때는 누구한테 물어봐야겠다, 혹은 이 사람이 대충 어떤 주제를 다루겠다,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되는 거죠. 이런 걸 ‘학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문의 흐름이 이어져 온다는 거에요.
어떤 문화나 DNA를 물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의 즐거움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Q. AI의 급격한 발전과 각종 신기술들이 연구실의 풍경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가지고 계신 비전이 있으신가요?
A. 일단 엄청나게 많이 바뀔 거예요. 이미 많이 바뀌고 있고요. 특히, 점점 사람에 대한 의존, 즉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낮아지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학원생 이야기를 해 볼게요. 학생은 물론 당연히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온 거고 교수는 가르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학생을 많이 가르친다고 해서 학교에서 보너스를 준다던지 하는 교수에게 대단한 이익이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교수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학생이 많아져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대신 교수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큰 이점입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교수 혼자서 모든 실험을 일일이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는 어렵잖아요. 따라서 지도 교수가 연구 주제에 대한 특정한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에게 지도를 해주면서 학생은 교수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보는 과정을 통해 시스템이 운영이 되는 거죠. 많은 도제식 교육체계가 이렇게 운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AI의 발전을 통해, 점차 이런 노동력은 대체가 될 수 있어요. 지금도 많은 지식노동, 문서를 통한 노동들은 LLM이 많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실험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이것 또한 점차 AI가 로봇공학과 연결되면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분야는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것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미래 기술이 발전하고 AI의 활용의 효율이 높아질 것입니다.
나중에는 실험을 할 때도 사람 뽑을 바에야 AI를 접목한 기계를 구해서 수행할 수도 있고,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어요. 사실 이러한 현상은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요. 점점 신입을 뽑지 않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대학원생으로서 달가운 소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요.
또한 입문자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학습하는 것이 예전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논문 스터디를 예로 들어 보아도, 옛날에는 논문을 프린트해서 교수님과 마주앉아 한 줄씩 밑줄 그어가며 읽는 방식으로 공부했어요. 한 페이지 읽는 데 3시간씩 걸리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죠. AI에게 맡기면 금방이니까요. 물론 이게 마냥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깊게 생각할 부분을 AI에게 넘겨버리다 보니, 스스로 꼼꼼하게 읽으면서 얻어갈 수 있는 부분들을 잃게 되고, 교수자에게 직접 피드백받을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는 거에요.
물론 AI에게 성실하게 한 줄씩 교수자가 하는 것처럼 피드백을 해 달라고 하면서 공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만을 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막상 그렇게 꼼꼼하게 AI를 활용해 철저히 고찰하며 읽어가는 것을 하고 싶지 않잖아요. 관련 연구도 있어요. AI를 이용해 글을 쓰라고 사람들에게 시켰는데, 처음에는 나름 생산적인 방식으로 AI를 활용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게을러진대요. 그냥 ‘글 써 줘’하고 끝내버리는 거죠. 결국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드는 거에요.
하지만 또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가서 생각할 수 있죠. 만약 AI가 그런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해준다면, 우리가 과연 그것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고찰할 필요가 있겠냐는 거에요. 예를 들어 보면, 20년 전만 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널리 활용되고 있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복잡한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죠. 내비게이션이 다 알려주니까요.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어졌다고 해서 우리가 못 사는 거 아니잖아요. 맡길 수 있는 부분은 맡겨서 해결하는 거죠. 어찌되었든 이렇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가 많이 바뀌고 있기는 하다는 거에요. 옛날에 논문을 쓸 때는, 기존 문헌을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논문을 프린트해서 직접 보면서 참고문헌을 기록했어요. 두꺼운 책과 프린트 사이에 포스트잇을 끼워놓고,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펼쳐보면서 논문을 써 내려갔던 거거든요. 하지만 저보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 이렇게 과거에 연구실의 풍경이 바뀌었던 것처럼, AI가 상용화된 오늘날에는 연구실을 비롯한 세상의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겁니다.
제가 앞으로 대학원생을 지도하게 된다면, 크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역량이고, 두 번째는 내 전문 분야에 대한 심미안입니다. 우선, AI를 활용하면 정말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AI를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혁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필요한 부분은, AI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역량을 기르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AI를 활용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전문가가 해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초심자도 AI를 활용하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장벽이 낮아지는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분야이든간에, 상위 1%는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의 상위 1%의 전문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 분야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뛰어난 안목은 같은 AI를 활용하더라도 AI의 결과물들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여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합니다. 연구자도 마찬가지로, 어떤 연구가 뛰어난 연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 AI를 사용해서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과학자모임
Q.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금부터는 ‘한의사과학자모임’이라는 단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단체가 처음 구성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한의사과학자모임의 역사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철인 28호 장학기금’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김창업 교수님, 한의정보협동조합, 한의플래닛 등이 힘을 모아 만든 장학기금이에요. 당시 그 기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즈음에 한의정보협동조합에서 한의계에서 유명한 연자들을 불러서 콘서트를 주최했었는데, 그 중 한 꼭지를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게 되었어요. 포스터 발표, 네트워킹 이벤트 등을 함께했지요. 그 과정에서 그런 모임을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가지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뜻이 모아졌고, 새로운 멤버들도 들어오게 되면서 이 단체가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철인 28호 장학기금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고요. 그 후로 학술대회, 학부생들을 위한 봉사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Q. 그렇다면, 한의사과학자모임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교수님께서는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계신데, 어떤 업무를 주로 진행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는, 한의대 출신의 full-time junior level의 연구자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거에요. 그게 저희의 설립 목적이기도 하고요. 이 단체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대학원생들의 경우 어느 학교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 모임을 구축하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긴 거죠. 물론 모든 대학원생들이 컨택되어 모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건 이 모임의 긍정적인 결과 중 하나입니다.
서로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공통의 관심사도 생기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보 공유, 학술 행사 등도 진행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고요. 그런 네트워킹 활동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저희가 한의계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한의대생 대상 프로그램도 그 좋은 예가 되겠죠. 그렇지만 여전히 이 모임의 제1의 목적은 네트워킹, 즉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데에 그 뜻이 있고, 그게 저희의 컨텐츠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대표를 맡아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행사 기획부터 시작해서 재무 관련 업무, 홍보, 신입 회원 모집 등을 모두 담당하고 있습니다.
Q. 방금 전에도 junior-level 연구자에 대해 언급해 주셨는데, 이 레벨의 연구자들이 특별히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나 지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사실 안 필요한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가장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재정적인 지원 부분이에요. 임상에 나가서 일하시는 분들만큼 많이 드릴 수는 없어도, 기본적으로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재정적인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희가 최근에 많이 논의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이 연구자들의 졸업 후 진로에 관한 부분이에요.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지만, 졸업하고 나면 이 대학원에서의 경험과 학위를 살려서 한의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거든요. 교수가 되는 길이나, 연구소 등에 취업하는 것이 대표적인 진로가 될 수 있는데, 따라서 이러한 대학원 출신 연구자들이 졸업 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나름대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지원과 관련해서는 아쉬운 점들도 많아요. 의대의 경우, 의사과학자 양성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여러 지원사업이 마련되어 실행되고 있거든요. 장학금을 많이 준다던지 하는 재정적인 지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한의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러한 지원 체계가 잘 갖추어지지 못한 것 같아요. 정부 수준에서의 사업도 거의 없는 실정이고요. 따라서 의사 출신 연구자가 연구에 처음 발을 디딜 때와, 한의사 출신 연구자가 연구를 시작하고자 할 때 넘어야 할 장벽, 즉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몫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분명히 아쉬운 점들입니다.
Q. 한의사과학자모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 중에 학술 활동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모임 구성원들끼리 연합해 공동 연구를 계획하거나 실행한 사례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사실 공동 연구를 진행한 사례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죠. 연구자들끼리는 언제든 그런 연구를 진행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어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러한 방식의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저희의 직업적 환경 문제에서 기인하기도 합니다. 우선 저희 모임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대학원생들, 또는 박사 후 연구원 신분이거든요. 즉 혼자서 독자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속 기관에서 급여를 받으며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연구를 진행해야 해요. 즉 마음이 가는 대로 본인이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점은, 이 모임과 같이 네트워킹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놓으면 향후 이 연구자들이 각자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여러 비전을 같이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실제로 같이 진행한 연구들 중에, 한의대에 있는 junior-level의 대학원생들이 받고 있는 교육의 질에 대해 조사해서 논문을 출판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독립적인 연구자로 활동하게 된 지금, 한의사과학자모임에서 만들었던 인맥을 통해 다양한 공동연구를 실제로 도모하고 있습니다.
Q. 한의사과학자모임이 한의사 출신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희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각자의 기관에서 개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생들의 경우 그렇게 뜻을 모아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잖아요. 저희는 그러한 연구자들의 뜻을 모아 비록 크지는 않을지라도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의사과학자 양성 사업과 같은 이해관계가 걸린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저희 단체 이름으로 한의신문, 민족의학신문과 같은 언론에 뜻을 전하기도 하고, 대한한의사협회에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모두 연구자 개개인이 수행하기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학부생들 대상으로 워크샵을 하기도 해요. 연구자들의 활동과 삶에 대해 소개하는 거죠. 사실 학생들은 이런 세세한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이 진로 환경에 대해 소개하고, 혹시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각자의 취업 관련 팁이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Q. 동의대에서 진행하셨던 “한의학개론”과 “기초 한의학 논문강독”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길러주고 싶은 역량은 무엇인가요?
A.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각을 겸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우선 한의학의 강점이 될 만한 한의학의 인사이트들이 있잖아요. 아직은 그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에 여러 장벽이 있고, 또 이 학문 안에도 기본적으로는 경험에서 온 것들이 많지만 반대로 이론에서 와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한의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린 패배자고, 한의학 이론은 다 bullshit이야’라고 패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반대로 ‘모두 맞는 말이고 황제내경은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사이 어딘가. 한의학의 긍정적인 면들은 긍정적으로 보면서, 동시에 아쉬운 부분들은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우리 학생들을 그런 사람들로 만들고 싶어요. 저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했을 때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양쪽 극단은 둘 다 답이 아니며, 학생들이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의대를 다닐 때에는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부분이 힘들었어요. 외우고 공부할 내용이 워낙 많아서 압도당하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한의학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수업에서도 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실제 연구 현장에서 한의학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이 충돌하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경우인가요?
앞의 의학과 한의학의 계량가능성에 대한 말씀과 유사한 맥락일까요?
A.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은 사실 충돌한다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것이죠. 하나가 참일 때 다른 하나가 거짓이 되는 관계가 아니잖아요. 둘의 강점과 약점이 각각 있고, 둘에 대한 연구가 같이 이루어졌을 때 그 대상을 더 잘 알게 되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서 한의학에서는 이렇게 봤는데 기존에 알려진 과학적 지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그런 경우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실제 연구 현장에서 충돌하는 순간은 당연히 있을 수 있죠.
확실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과학 안에서도 어떤 내용이 평생 진리인 것은 아니잖아요. 다른 대안적 가설이 나오면 뒤집힐 수 있는 것이고, 한의학에도 이럴 때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죠. 이건 한의학적 사고라서 발생하는 문제라기 보다, 원래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의학적 사고’라는 것이 음양오행과 과학적 지식의 조화에 관해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의학적 사고 방식이나 관점이 갖는 독창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떤 대상을 직관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언어로서 음양오행 등을 사용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반영되어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면, 결국에는 미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거든요. 가설도 더 좁혀서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놓치게 되었던 관계성이라던지, 더 넓은 렌즈에서 봤을 때 보이는 것들을 한의학에서는 직관적으로 잡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의학적 사고가 갖는 강점이겠죠.
반대로, 너무 넓게 바라보다 보니 디테일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죠. 굳이 따지자면 이런 부분이 과학적 방법론과 충돌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서 한의학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얘기했어요. 근데 너무 넓은 렌즈로 보다 보니, 총론에서는 맞을 수도 있는데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틀리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당연히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활용하고, 아쉬운 부분은 뭉개지 않고, 인정하고 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한의학 대학원생 장학금, 연구비 제도가 다른 의생명과학 계열과 어떻게 차이가 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런 얘기는 한의사과학자모임 회원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이번에 의사 과학자 지원사업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한의사는 포함 안 됐네요.”같은 말들이요. (웃음) 사실 한의사 과학자 모임이 처음 추구했던 건 일종의 ‘자조 모임’이었어요. (웃음) 대학원생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연구실에 대학원생 혼자만 있는 경우들도 많고… 이런 것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토닥토닥해주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였어요.
논외로 사실은 저는 한의사 과학자 모임에서 이제는 빠져야 돼요. 회원들이 처음 이 모임을 만들었을 때, 누구든 교수가 되면 나가자고 했거든요. 대학원생들 이야기하는 데에 교수가 끼여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웃음) 빨리 후임을 구하고, 집행부도 잘 만들어 놓고 나가야 하는데, 워낙 구성이 어렵고 잘 안되어서 제가 계속 대표를 붙잡고 있어요. 이것만 해결되면 저는 나갈 생각이에요.
Q. 사자: 저희도 발행을 빠르게 해야겠네요. (웃음)
A. 발행 글에 (전) 이라고 해도 되고, ‘그 당시에는 회장이었습니다.’ 라고 해도 되고. (웃음) 아무튼 시작은 자조 모임이었어요.
사실 이런 (질문과 비슷한 맥락의) 불만은 모임원들도 많이 가졌었고, 그럼 우리가 한번 목소리를 내보자 해서 한의신문 같은 곳에서도 말해보고, 협회와도 자리가 만들어져서 어필하기도 했죠.
‘지원’에서 의대와 차이가 많이 나죠. 정부 차원의 지원도 그렇고, 학교 차원의 지원도 그렇고, 의대에 훨씬 더 공격적인 지원이 많아요. 훨씬 더 큰 위기의식이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의대에서도 요즘 골머리 썩는 게 뭐냐면, 기초 교원을 MD로 채우고 싶어 하거든요. 생리학도, 해부학도, 병리학도 MD가 가르치도록 말이죠. 그런데 전공자가 안 나오는 거예요. 다들 임상으로 가버리고, 기초에 안 남으려고 하니까요. 지방대는 이렇게 된 지 한참 됐고, 수도권 의대들도 사정이 좋지는 않아요. 그래서 많은 의대에서 해부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해부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오래됐어요. 이에 대해 위기의식이 커진 것이죠. 자체적으로 교원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학교에서 지원금도 많이 주기도 하고, ‘레지던트 정도로 월급 줄게’하며 대학원생을 키우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연구 측면으로도 의사과학자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졌고, 국내에서도 의대 뿐 아니라 KAIST, DGIST를 포함한 많은 과학기술원(IST)들에서도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과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들이 연구할 때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판단인 것 같습니다.
Q. 사자: 한의대는 그런 위기의식까지는 없는 편에 속한 건가요?
A. 위기의식이 있더라도 재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대학원생을 키울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레지던트만큼의 페이를 준다’라고 한다면, 1년에 4~5천만 원에 등록금까지 1500만 원. 벌써 6500만 원이에요. 학과에서 1년에 6500만 원은 정말 큰 돈이에요.
특히 많은 한의대가 지방 사립대에 있고,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등의 이슈가 있어서, 한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학이 예산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원 진학을 고민중인 학부생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한마디가 있을까요?
A. 대학원에 진학할 때, 너무 멀리 보면(“교수”가 되려고 한다면) 오히려 답답할 수 있어요. 세상 일이 생각만큼 의도대로 되지 않아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의도대로 잘 안 되어서, 의외로 행운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계획과 다른 길로 갔는데 더 좋을 때도 있고, 당시에는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기회였던 순간도 있어요. 정말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10년 뒤에도 이 진로가 괜찮을까’ 이렇게까지 생각하면 고민이 끝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이 재밌어 보이고 흥미로워 보이면 일단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카레이서 강병휘씨 아세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다니다가 전업 카레이서가 되신 분이에요. 그분이 대원외고 진로특강에서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인생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다시 할 수 있는 선택이 있는 반면, 그 타이밍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선택들도 있다.’
연구도 공부잖아요. 공부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확실히 습득속도가 빨라요. 저도 항상 느끼는 것인데, 예전에는 쉽게 습득했던 것들이 지금은 잘 안 들어와요. (웃음) 또, 보통은 연구를 ‘학문을 배운다’, ‘지식을 습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 넓은 것을 배운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아까 언급했듯, 하다못해 사교하는 것도 지도교수님께 배워요.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연구자로서 대학원에서 뭔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은 연구 문화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은 단순히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연구실에 있으면서 같은 연구실 선생님들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잡담도 하고, 세미나도 하면서 무형으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몸에 베이는 것이죠. 연구자들의 습관이나 사고 방식, 대화 방식에 스며들듯 배우는 게 정말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이에요. 책으로 배우고, 지식을 배우는 것 이상으로요.
이런 배움도 나이가 들어서 하려고 하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인간의 뇌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임상에서의 문화와 연구에서의 문화에 다른 것들도 많아서, 경험적으로는 졸업하자마자 오신 분들이 훨씬 잘 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최대한 졸업 후 바로 오시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물론 당연히 예외도 많습니다. 학계에 늦게 들어오신 분이더라도 열심히 하고, 즐기는 분들은 정말 발전속도가 빠른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들 하시죠. 한의대에 들어와서 ‘대학원을 간다’라는 결정을 할 정도로 의지 있는 사람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적응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죠, 안 해본 것이니까요. 공대나 자연대는 학부생도 실험을 많이 하고, 연구에 익숙해요. 학부 과정부터 연구를 하기 때문에 익숙한 것이고, 우리는 안하니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 차이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대에 들어와서 6년 졸업할 정도의 인재들이라면 충분히 다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또, 하고 후회하는 것과 안하고 후회하는 것 중 하고 후회하는 것이 100배 낫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처음에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일(연구)를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지내다 보니, 그 이상으로 얻는 것이 훨씬 많았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연구자의 길을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무리하며
Q.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UP) & 가장 힘들었던 순간(DOWN)과 그 극복 방법이 궁금합니다.
힘들었던 순간은 이전에 석사 2년 차라고 말씀을 해 주셨으니까 뿌듯했던 순간 위주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아무래도 전임 교원으로 임용되었을 때가 제일 뿌듯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학원 갈 때, 제가 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런 것을 보고 간 것도 아니고요. 제가 갔던 가천대 연구실의 김창업 교수님은 임용된 지 3년 밖에 되셨었고, (웃음) 교수님께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죠. 심지어 제 위로 선배가 4명이나 있었고요. (웃음) 주차장에서 빈자리 들어가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다른 학교로 올 수 있다는 상상도 못했어요. 얼마나 오래 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시작한 거죠.
하다 보니 힘들 때도 많았지만 저와 잘 맞는 부분이 있었고, 그래서 계속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갑자기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예요. 교수가 되기 위해서 연구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채용 프로세스에서 제 성과를 인정을 받은 것이고, 장기적으로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이 되었고. 놀랍기도 했고, 이런 부분에서 뿌듯했어요.
그리고 그 밖에는, 미래인재상 같은 상들을 받았을 때가 기억나네요. 그전에도 여러 발표를 했었고, 많이 떨어지기도 했거든요. 그동안 쌓아왔던 아쉬웠던 경험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교수님의 장기/ 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A. 단기적인 목표는 서바이벌, 생존하는 것이에요. 이제 처음 교원이 되었잖아요. 연구는 계속해왔지만 스스로 주도해서 연구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아예 다른 상황인 것이죠.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어드바이스, 디렉션을 받으며 연구를 수행해왔다면, 이제는 스스로 플랜을 짜서,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서 진행해야 해요.
학교에서 여러 개의 강의를 맡아서 주도적으로 해야 되는 상황도 처음이에요. 물론 잠깐 강사나 조교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요. 학교라는 시스템에 교원으로 일을 하는 것, 즉 학교의 시스템을 알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고 해야 될 일들을 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심지어 부산에도 이제 이사를 와서 부산 생활도 처음이고, 게다가 신혼이에요. (웃음) 모든 게 새롭고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몸이 바쁜 걸 떠나서, 그냥 정신이 없어요. 여러모로 모든 것에 적응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1학기 때도 정말 정신이 없었고, 2학기 때도 정신이 없을 예정이에요. 다른 교수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보통 교수 임용되고 적응하는 데에 2~3년은 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3년 간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영양분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지금 학생들과 하는 연구도, 당연히 좋은 논문들을 많이 내고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하는 것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해주니까 학생이 좋아하네’,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네’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성과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통해 많이 배운다고 생각으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제가 보고 배운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이 있고, 제게 조언해 주셨던 한의학연구원 박사님의 연구실이 있잖아요. 여러 연구실을 보며, ‘나도 이런 연구실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요. 특히 제가 6년동안 훈련을 받았던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런 문화에 의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렇다 보니 제 연구실에도 좋은 문화를 만들어서 제 연구실의 학생들도 좋은 영향을 받고, 나아가 그 학생이 졸업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전파해 줄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좋은 문화를 같이 만들어 나갈 좋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래서, 함께 할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사실 학생들을 모아서 함께 연구실을 꾸려 나가려면,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연구 과제들을 따와야 해요. 어떤 교수님들은,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시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조직에서 사람 뽑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한 번 뽑아 놓으면 나가라고 하기도 힘들고, 이상한 사람을 뽑아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서 나가기도 하고, 저도 힘들죠. 원래 모든 스트레스는 다 사람에서 온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웃음) 그런 것 때문에 연구 과제도 안 하고, 대학원생도 안 받는 분도 있죠. 그건 그분의 스타일이고 존중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은 저도 에너지가 있고,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열정 많은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열심히 연구하는, 서로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싶어요. 대학원생들도 많이 받고 싶고요. 꼭 써주세요 환영한다고. (웃음) 사실 지금도 2026년부터 함께 연구할 대학원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데이터과학을 응용한 한의학 연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저랑 간단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눠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 https://linktr.ee/dongyeop
Q. 앞으로 교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한의학이 보편적인 의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잘 만들어서, 한의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혹은 그런 연구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의학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한의약연구원의 이상훈 박사님을 추천해 드려요. 학위 할 때와 한국한의학연구원에 포닥으로 있을 때, 박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러면서 박사님께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배웠고, 인간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저를 멘토처럼 많이 도와주신 박사님이셔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나네요.
피카디(fika.d)의 정원모 대표님도 추천해 드려요. 경희대 졸업하시고 경혈학박사 취득하신 이후에 현재는 개발자로 일하고 계셔요. 벤처 창업하고 운영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워낙 커리어 패스가 특별하시다 보니까 만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2부에서는 한의사과학자모임을 포함해 장동엽 교수님의 대학원 생활 그리고 한의계의 대학원 시스템 이야기까지 가득 담아보았습니다. 교수님처럼 진취적인 연구자분들이 이 인터뷰 글을 보고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할까말까 고민이 되는 순간들에 '하고 후회하는 것' 또한 중요한 선택지라는 거 마음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장동엽 교수님과 교수님 연구실이 행복하고 보람찬 연구실이 되어 한의학의 미래를 밝혀나갈 수 있도록 대만드가 항상 응원합니다!
Interviewer. 사자, 꽁치, 플라밍고, 낙타, 사막여우, 오리너구리
Writer & Editor.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