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10월, 대만드의 오리너구리, 플라밍고, 양은 유수양 원장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일본 후쿠오카현의 작은 도시 이토시마로 떠났습니다. 일본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유수양 원장님은 한국에서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정신과 임상 현장에서 한방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통합의학을 몸소 실천해 오셨으며, 마음챙김과 존중의 태도를 핵심으로 하는 M&L(Mindfulness & Loving Beingness) 심리치료 기법을 개발해 한국과 일본 양국에 전파하며 치료자 양성에도 힘쓰고 계십니다.
정신과, 한의학, 그리고 심리치료를 가로지르며 ‘사람을 전체로 바라보는 치료’를 실천해 오신 유수양 원장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약력]
- 한의학박사 (원광대학교)
- 일본 정신과 전문의, 후생노동성 인증 정신보건지정의
- M&L 심리치료 마스터 트레이너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석사졸업)
- 도쿄대학 종합문화연구과 (박사 수료)
- 가고시마대학 의학부 의학과 (학사 졸업)
- 일본 야마나시현 고후교리쓰 병원, 구마모토현 기쿠치 병원, 사가현 히젠 정신의료센터 근무
Intro
Q. 안녕하세요, 원장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유 멘탈 클리닉(ゆう メンタルクリニック)의 원장으로 일본에서 정신과 의사로 진료를 하고 있는 유수양입니다. 일본/한국에서 M&L 심리치료를 만들어서 심리 치료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는, ‘M&L 심리치료 마스터 트레이너’로서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직업으로,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 후 돌봄 센터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제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습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까지 하고, 일본 동경대에서는 종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그러다 당시 여러 가지 개인적 체험으로 인해 심리 치료가로서의 길에 들어섰어요. 심리치료 공부를 미국에서 했고, 심리 치료가로서 일본에서 개업해서 일하다가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가고시마 대학 의대를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신과 의사가 된 거죠.
Q. 요즘 원장님의 일과, 그리고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A. 이 질문을 보고 재미있었는데,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일과를 중시하게 됐어요. 지금 저는 굉장히 ‘질서 있는 자유’ 속에서의 생활을 합니다.
일어나자마자 저의 첫 질서는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잠자리 정리를 굉장히 명상 의식처럼 수행해요. 나를 하루 쉬게 한 자리잖아요. 그 자리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정리합니다. 그 외에도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을 하고, 많은 식물들과 강아지, 고양이를 돌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밥과 물을 챙깁니다. 의사로서의 저의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고, 저녁 7시까지 진료를 봅니다. 중간에 1시간 정도 쉬고요. 쉴 때는 우리 강아지 산책을 나갑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한 감사일기를 쓰고, 아침에 잘 정리 해놓은 그 방에 들어가서 침대를 향해서 다시 한번 이렇게 절을 하고 가서 쉽니다. 이게 저의 일과예요. 질서 있는 자유는 나이가 들면서 제가 취득한 저의 삶의 지혜입니다.
의료인이 되기까지
Q. 심리치료의 길에 들어서게 된 원장님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 제가 동경대 박사 과정 때, 원인 모를 두통으로 크게 고생했습니다. 당시 동경대 뇌신경외과 교수님들도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셨지만,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일상 생활이 안 될 정도의 엄청난 두통이었었거든요. 학교에 갈 때도, 아침에 병원에 가서 국소 마취제를 맞고 겨우 등교해서, 오후 3시 정도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으로 울면서 돌아오는 생활을 제가 한 3-4개월 겪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던 도중, 미국에서 온 동료 대학원생이 저에게, ‘요즘 미국에서는 이와 같이 원인 모를 병에 상담 기법을 적용한다’고 이야기해줬는데, 속는 셈치고 한 번만 가달라고 하더군요. 당시에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오신 일본인 심리 치료사가 있었는데, 그분께 치료를 받으러 가서 그곳에서 큰 경험을 했죠. 많이 울었어요. 당시 그분께서는 저에게 이완 기법을 가이드해 주셨는데, 기법 도중에도 무언가 안에서 올라오는 말이 있으면 그 말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 분 앞에서 계속 엉엉 울다가 저도 모르게, 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말을 막 하기도 하면서 세션을 진행했죠.
결론적으로, 한 번의 치료 세션만으로 저의 통증이 없어졌어요. 당시 저로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준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너무 혼란스럽고 또 신기하기도 해서, 다시 한번 갔어요. 이게 대체 무엇인지 여쭤보니, 그분께서 심리치료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어요. 이미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심리치료 기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 방법을 소개해주셨고, 그때부터 심리 치료 공부를 시작했어요. 결국 당시 다니던 학교의 박사 과정 수료만 하고, 저는 심리 치료의 세계로 떠나게 됩니다.
저는 이를 통해 저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정말 즐겁게 공부해 오고 있고, 사실 지금도 공부 중이에요. 옛날에 국제정치 공부할 때보다도 지금 이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네요.
Q. 원래 일본 의사로 활동하시던 원장님께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제가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심리치료 역시 체험이 계기가 되었고, 한의학과의 인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2011년, 일본이 혼란스러웠던 동일본 대지진 당시 도쿄 근교에서 근무하면서, 야마나시현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대형 병원 내과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왕진 진료가 정말 잦았는데, 어느 날 왕진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골절이나 파열은 없다고 진단받았지만,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극심한 통증이 계속됐어요. 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에 돌아왔지만, 온몸이 검게 멍들고 힘이 전혀 안 들어갈 정도라 상태가 꽤 심각했습니다.
그때 한국의 원광대학교 강형원 교수님께서 강하게 권유해 주셔서 한국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어요. 산본 원광대학교 한방병원에 입원해 11일간 침, 한약, 물리치료와 함께 사혈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치료가 진행될수록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지고 통증도 빠르게 나아졌어요. 덕분에 결국 제 발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귀국 비행기 안에서, 정신과 진료에 한의학을 접목해 보고 싶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습니다. 서양 의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의학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 일본에서 개원과 동시에 원광대학교 한의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진료와 학업을 병행하는 생활을 3년간 이어갔는데, 힘들었지만 그만큼 깊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한열·허실·조습의 기본 개념과 사상방을 중심으로 약을 사용하는 법을 공부했고, 기존에 해오던 심리치료와 정신과 진료 경험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결국 의료에 발을 디디신 것도, 한의학을 시작하시게 된 것도 모두 원장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맞아요. 저는 제가 직접 깊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환자에게 쉽게 전하지 않습니다. 책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의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시행착오를 겪고, 그 치료의 위험성과 한계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 치료 약물은 같은 용량이라도 질환 유무에 따라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제가 그 약을 먹었을 때, 저는 조현병이 없기 때문에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났고, 그 경험을 통해 환자들이 호소하는 신체적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는 대부분의 정신과 약물을 직접 경험해 보았고, 그것이 지금의 진료 철학을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동서의학의 융합, 한국과 일본의 시선
Q. 한국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이원화된 의료 체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의사가 동서의학 치료기술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실제 일본 임상 현장에서는 어떤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지, 또 원장님께서는 한의학적 치료를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실제 저의 임상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한약을 복용합니다. 사실 치료 초기에는 한약과 양약을 함께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항우울제 등 서양 약물에는 효과가 분명한 좋은 약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배제할 이유는 없는 것이거든요.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의료는 언제나 제도와 법률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느 시대든 의사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지혜롭게 치료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의사가 한약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매우 자유로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히 있긴 합니다. 실제로 일본 의사 중에서도 한의학적 치료에 대해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의 한방은 한의학의 효과를 체험하거나 공부한 서양 의사들이 조금씩, 점진적으로 사용 범위를 넓혀가며 지켜온 영역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융합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임상 경험을 통해 필요성을 느낀 의사들이 한약을 선택해 온 결과에요.
그래서 저는 종종 우리가 한방의 ‘홍보대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하고, 특정 전문과 의사들이 한의학적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환경에서는 실제 임상에서 환자를 얼마나 회복시키느냐가 전부입니다. 저는 이런 긴장감 있는 구조가 오히려 좋습니다. 그 덕분에 안주할 수 없고,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게 되니까요.
Q. 결국 동서의학을 통합시킬 제도의 개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환자 중심적인 시선에서 최선의 치료를 의료인으로서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A.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제도적 융합’이라는 표현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제도나 형식 이전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의사의 의식과 태도거든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방법이든 기꺼이 활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먼저 서야 하고, 제도는 그 다음에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현 의료 제도는 환자를 중심에 둔 임상 경험이 누적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서양의학 체계 안에서 Kampo medicine이 보완적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제도가 먼저 길을 열어줬다기보다는 개별 의사들이 한의학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임상에서 필요성을 느끼면서 조금씩 사용해 온 과정의 산물이에요. 다시 말해, 제도가 융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임상이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이 점은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동서의학의 관계가 종종 제도나 권한의 문제, 이른바 ‘밥그릇 싸움’으로 소비되죠? 하지만 이런 시선에 머무는 한, 논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중심은 언제나 환자이고, 이 치료를 했을 때 실제로 환자가 좋아졌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임상 결과를 두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협력의 가능성도 열리거든요.
동시에 이러한 논의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한의학 내부의 책임과 성찰 역시 필수적입니다. 한국 한의학은 분명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퀄리티를 더 끌어올려야 할 지점도 분명합니다. 과장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 기본적인 설명조차 설득력이 떨어지는 표현들이 반복될수록 한의학 전체의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의학이 가진 고유한 강점을 지키면서도, 임상 결과와 설명력을 스스로 단단히 다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제가 갖춰질 때, 두 의학은 비로소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설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비유를 합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에 가게 되었는데 약 두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저는 SSRI와 반하백출천마탕을 선택하겠다고요. 서양 약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영역이 분명히 있고, 동시에 한약이 중심을 잡아주고 전반적인 상태를 끌어올려 주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두 의학의 힘을 모두 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입니다.
결국 동서의학의 관계는 제도를 먼저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환자 중심의 임상 태도와 축적된 결과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특히 정신과 영역이 서양의학, 한의학, 그리고 상담이 함께 작동하며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서양의학이 강력한 기술적 성취를 이룬 지금,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의학이 여전히 지켜야 할 고유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상에서 그 가치는 어떻게 드러난다고 보시나요?
A. 저는 동양의학의 가장 큰 힘은 ‘전체성(holism)’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의학을 포함한 동양의학은 인간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바라보거든요. 반면 서양의학은 인간을 분해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 두 관점은 어느 하나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반드시 필요한 접근이죠.
서양의학의 분해론적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정신과 약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에요. 실제로 정신과 임상에는 서양 약물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환자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매우 중증의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경우, 약물치료 없이는 일어나서 밥을 먹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워요.
반면 동양의학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중심을 지켜왔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치료 기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와 철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조의 『醫藥論』* 에서는 의사를 여덟 가지로 나누며, 그중 가장 이상적인 의사를 ‘심의(心醫)’라고 표현하거든요? 반대로 가장 나쁜 의사는 ‘살의(殺醫)’로, 오만하고 교만하며 환자에 대한 연민이 없는 의사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현대 심리치료에서 강조하는 공감, 연민, 존중의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즉,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중요한 가치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특히 현대 한의학이 동양의학이 가진 고유한 강점과 철학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채, 서양의학의 방식만을 따라가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초음파나 MRI 같은 진단기기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환자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실제 임상에서는 그러한 장비가 없어도 환자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양의학이 가진 ‘전체성의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의술은 단순한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철학을 가진 실천입니다. 이미 조선시대 의서에 ‘심의’와 ‘살의’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동양의학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중심에 둔 학문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의 7대 왕인 세조가 1463년 직접 저술해 간행한 의약 전문서. 본 서에서는 의원을 心醫, 食醫, 藥醫, 昏醫, 狂醫, 忘醫, 詐醫, 殺醫로 나눈다.
Q. 그렇다면 ‘정신과’ 진료에서 동양의학의 holistic한 접근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원장님의 실제 임상 방식과 함께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holism’이라는 개념이 정신과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영역이라고 봐요. 정신과는 본래 사람을 전체로 보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려운 분야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체적 통증이 있으면 내과를 찾고, 심리적 통증이 있으면 정신과를 찾죠. 그러나 실제로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가깝습니다. 정신과 증상은 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신체적 통증을 거의 항상 동반하거든요. 여기에 더해, 저는 심리적 통증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 통증’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인간의 고통은 대부분 관계 안에서 발생합니다. 고립된 채 혼자만의 문제로 고통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관계에서 밀리고, 소외되고,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는 과정 속에서 정신적 증상이 심화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저는 ‘영적 통증(spiritual pain)’이라는 층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에 이르게 되는 지점입니다. 저는 임상에서 이 네 가지 통증, 즉 심리적·신체적·사회적·영적 통증을 항상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부분을 전부 치료하려 할 때,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범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에 있어요.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부터는 다른 방식의 도움이 필요한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심리적 통증은 약물과 상담으로 다루고, 신체적 통증에는 한약과 약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든요. 사회적 통증에 대해서는 관계와 소통에 대한 훈련을 치료 과정에 포함시킵니다. 경계 설정, ‘거절’의 표현 방식, 관계에서 침범을 느낄 때의 대응 등은 실제로 매우 중요한 치료 요소입니다.
Q. 동서의학 통합적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A. 대체로 매우 긍정적이죠. 이곳을 찾는 환자들 중에는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다가 치료가 중단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의사와의 관계가 맞지 않거나 자신의 상태가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적되면서 치료를 포기하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치료에 대한 기대 자체가 낮아지고, 다시 병원을 찾는 것에도 큰 부담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통합적 치료를 접한 환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받고 있다는 점을 비교적 빠르게 인식합니다. 한 가지 치료 체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환자의 상태와 반응에 따라 한약과 양약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해진 틀에 맞추는 진료’가 아니라 ‘나에게 맞춰 조정되는 진료’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거든요. 이러한 경험은 치료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고, 의료진과의 신뢰를 다시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신체적 증상과 심리적 상태를 함께 다루는 점이 환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분리되어 있다고 느꼈던 문제들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설명되고 다뤄지면서, 환자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죠. 그 결과 치료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고, 치료를 지속하려는 동기도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단순히 서양의학적 관점으로만 사람을 바라본다면 기대하기 힘든 효과죠.
Mindfulness & Loving Beingness
Q. 최근 한국의 한의계에도 소개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M&L(Mindfulness & Loving Beingness) 심리치료 기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M&L 심리치료는 두 가지 핵심 축이 기반이 되는데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즉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과 러빙 비잉니스(loving beingness),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연습입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치료 기법들이 작동하며, 단순 증상 완화에 그치지 않고 삶 전체의 방향을 다루는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M&L 심리치료의 가장 큰 특징은, 치료자가 먼저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의사가 되기 전부터 미국 하코미 연구소로부터 국제 인증을 받은 심리치료 트레이너로 활동해 왔고, 치료자를 양성하는 역할도 해왔는데요, 그런 제 경험에서 보더라도, M&L의 핵심은 ‘기법’ 이전에 치료자의 태도와 삶의 방식에 있습니다. M&L을 공부하는 치료자들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성찰과 자기 치유를 꾸준히 실천합니다. 다시 말해, M&L 치료자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매일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한 치유 과정을 적용하며 살아가는 당사자입니다. 이 점이 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치료적 신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M&L 심리치료에는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법들도 잘 정리되어 있어요. 한 세션 안에서 15~20분 내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치료 기법들이 체계적으로 개발되어 있고, 개인 치료뿐 아니라 그룹 치료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특히 의미 있게 느끼는 지점은, 치료자가 자신보다 조금 먼저 그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같은 길 위에 서 있다는 감각입니다.
실제로 환자분들 중에는 “이곳은 병원이라기보다 학교에 오는 느낌이다”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매 회기마다 환영받고, 그 시점에 필요한 주제를 함께 배우고 연습하면서, 치유와 성장이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개인 상담뿐 아니라 정기적인 그룹 세션도 운영하며, 치료자들 역시 배운 내용을 정리해 환자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나누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 M&L심리치료학회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 http://mnlkorea.com/
Q. M&L 심리치료 기법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이건 제가 의사가 된 이유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처음 심리 치료가로 일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6~8명의 내담자를 한 시간씩 만나며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제 일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은 컸지만, 동시에 한 가지 분명한 한계를 느꼈습니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제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의료보험 체계 안으로 들어가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그 이유가 의대 진학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의사가 된 이후에도 저는 기존에 해오던 심리치료와 트레이닝을 계속 이어갔고,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꾸준히 임상과 연수를 병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되어 맞닥뜨린 현실은 또 다르더군요. 하루에 수십 명, 많게는 9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환경에서,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길어야 15분에 불과했습니다. 이전처럼 한 시간 동안 깊이 있게 치료를 진행하는 방식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새로운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서도 치료적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이 바로 M&L 심리치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기존에 해오던 한 시간짜리 치료의 핵심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고유한 역할과 임상 환경을 고려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어요. 증상을 단시간에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장기적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짧은 만남 안에서도 의미 있는 개입을 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brief therapy’로서의 M&L 심리치료입니다. 실제로 어떤 환자분들은 진료실에 5분 정도만 머물다 가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M&L의 핵심적인 치료 원리와 스킬은 계속 작동합니다. 치료 성과는 치료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순간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환자를 만나는지에 달려 있거든요.
Q. M&L 심리치료 기법은 동양의학적 사고와 어떠한 접점이 있나요?
A. M&L 심리치료 기법은 동양의학적 사고, 그 중에서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을 전체적인 유기체로 바라보는 관점과 매우 깊은 접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여러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각각 따로 떼어 보지 않고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잖아요. 실제 임상에서도 환자분들이 “증상을 여러 개 말씀드렸는데 약 하나로 괜찮겠느냐”고 놀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복용 후에 두통, 어지럼, 소화 불량, 전신 무력감 같은 증상들이 함께 호전되는 경험을 하면서, 그 연결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전인적 관점은 M&L 심리치료의 기본 철학과도 깊이 맞닿아 있죠. M&L 또한 특정 증상 하나를 제거하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삼기보다는, 그 증상이 어떤 삶의 맥락 속에서 나타났는지, 환자의 정서적 흐름과 신체 반응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함께 이해하려는 접근을 기본으로 하거든요. 마음과 몸을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동양의학적 사고와 매우 유사합니다. 이러한 지점이 동양의학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전인적 관점이 M&L 심리치료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부분이 아닐까요?
Q. 기존 심리치료와 비교했을 때 M&L의 강점과 독창성은 무엇인가요?
A. 이게 M&L의 “Loving beingness”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에요. 인간의 고통을 ‘왜곡’이 아닌 ‘그럴 만한 생존 전략’으로 이해한다는 건데, 예를 들어 기존 인지행동치료(CBT)에서는 고통을 유발하는 사고나 행동을 ‘인지의 왜곡’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M&L에서는 이를 잘못된 사고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기질과 성장 과정,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고유한 전략으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질 위에 경험을 해석하며 살아가고, 그 해석이 반복되면서 무의식적인 생존 전략이 만들어집니다. 이 생존 전략이 곧 성격이 됩니다. 문제는 이 전략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낳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때로는 너무 큰 좌절과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끝에, 인간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사랑을 원했지만 계속 거절당한 사람은 ‘사랑은 없다’는 믿음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갈망했지만 끝내 얻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전쟁터처럼 인식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반응을 병리화하지 않습니다. “그럴 만했다”는 지점에서 치료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으로 선택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치료는 이 생존 전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찾아가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전략을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치료자가 환자의 고통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는 네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네 고통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정직한 태도에서 출발해야 해요. 대신, 환자가 원한다면 언제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안전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깊이 깨진 마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존중합니다.
M&L에서는 치료 자체를 하나의 ‘훈련된 언어’로 봅니다. 단순한 공감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서두르지 않으며, 언제든 기다릴 수 있는 태도를 체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자는 계속해서 자기 성찰과 훈련을 이어가는 사람이어야 하고, 치료 공간은 환자들이 치유와 성장을 함께 배우는 곳, 마치 학교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됩니다.
Q. 심리치료 이후 경과가 호전된 환자의 사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사례는 정말 많아요. 상담을 하다 보면, 겉으로 보기엔 마음이 좀 안정된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발길이 뜸해지는 분들도 꽤 있거든요. 불안이나 우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일상도 어느 정도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거기서 끝이 안 나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기 안에 있는 ‘생존 전략 장치’까지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분들은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나는 도대체 뭘 원하면서 살아온 걸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죠.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상담 초반에는 스스로를 ‘평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던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그 평화라는 게 사실은 오래전에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바람인 경우가 많아요. 어린 시절에는 가족 분위기가 좀 더 평화롭기를 정말 간절히 바랐는데, 그게 계속 좌절되다 보니 어느 순간 “삶은 원래 전쟁이야”, “치열하게 버텨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이 굳어버린 거죠. 그렇게 살아오던 분이 회사에서 상사에게 계속 억눌리는 상황을 겪게 되면,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건 어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이런 경우에는 M&L의 접근법으로 매일 짧게라도 상담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꽤 편해지는 걸 자주 보게 돼요.
그런데, 요즘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하는 분들이 늘었어요. 이 단계에서는 지금의 감정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거든요. 결국 어린 시절 이야기, 그러니까 ‘내면아이(inner child)’를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해지는 거죠. “어릴 때 내가 진짜 원했던 게 뭐였을까?” 이 질문까지 가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분들이 말문이 막혀요. 어릴 때 뭐가 제일 먹고 싶었는지, 어디 가는 걸 좋아했는지, 누구랑 같이 있고 싶었는지… 이런 걸 거의 기억 못 하세요. 결국 우리 대부분은, 어린 시절 가장 원했던 것들을 몇 가지씩 두고 어른이 된 셈이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경우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가장 컸던 바람은 “누군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보통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자연스럽게 돌봐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로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자랐죠. 해야 할 일은 잘 해내니까 어른들한테 인정은 받았는데, 정작 어린 저는 돌봄을 원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주 사소한 거였어요. “너는 뭐 좋아해?”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었던 거죠.
한 번은 정말 큰맘 먹고, “이건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돌아온 반응은 혼나는 거였어요. 어른들이 해주면 감사하다고 하고 받아야지, 그런 말 하는 게 어디 있냐는 식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제 안에는 꽤 큰 사건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장에, 제가 ‘인생은 고투(苦鬪)다’라는 말을 한자로 적어놨거든요. 사실 저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끼다 보니, 삶을 그렇게 이해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 기억이 나중에, 제가 동경대에 다니던 시절 겪었던 통증하고도 이어져 있었어요. 당시 치료 과정에서 계속 튀어나오던 말이 “나한테 이러지 마”였는데, 돌이켜보면 그 말은 그때의 어린 나에게서 나온 거였어요. 도움을 원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그리고 결국 혼자 버텨야 했던 그 기억 말이죠.
Q. 원장님의 사례를 이야기해주셔서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혹시 M&L 심리치료 기법을 접하면서 원장님 본인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A.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예전에 정말 포악한 사람이었어요. 동경대에 다닐 때 별명이 ‘면도날’이었거든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웃음)
M&L을 만나면서 저는, 어린 시절에 두고 왔던 마음들을 다시 회복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보기로 했어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삶을 실제로 살아본 거죠. 제 30대와 40대는 거의 그렇게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의대를 간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날 정말 아무도 제 인생에 대해 말 얹지 않는 시점에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었거든요. 그때 마음에서 나온 대답이 ‘의사가 되고 싶다’였어요. 그래서 그날 밤 바로 서점에 가서 국립대 입시 문제집을 샀고, 8개월 공부해서 들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처음 올 때도, 또 이 클리닉을 개업할 때도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어요. 일본 정부 장학금으로 생활했고, 말 그대로 한 푼도 도움을 받지 않았죠. 그래서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제 인생은 거의 자수성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이 클리닉도,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제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삶의 형태예요. 치료실과 대기실을 넉넉하게 갖춘 이 공간 자체가, 제 인생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죠. 최근에 사회복지재단 법인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500평 정도 되는 땅을 사서, 거의 10년에 걸쳐 천천히 다듬어 왔고, 이제야 비로소 안정적인 형태를 갖추게 됐습니다.
M&L을 통해 제 삶에서 일어난 변화는 아주 단순해요, ‘버티는 인생’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 그 하나입니다.
Q. 원장님께서 생각하는 M&L 심리치료 기법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A. 혹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한국에 출판됐던 책인데,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애벌레가 쉼 없이 어딘가를 향해서 올라가요.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계속 올라가는데, 올라가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애벌레는 죽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나비 한 마리가 옆에 와서 이끌어주고 하면서 결국 자기도 고치를 만들고 나비가 되는 내용이에요.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서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M&L도 그런 나비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대신 이 애벌레들은 자기가 언젠가 나비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나비가 애벌레들을 격려하는 순환이 일어나야겠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M&L이 이런 나비들의 날갯짓을 만드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에서 의료인을 준비하기
Q.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학생이 일본 임상 현장에 진출하고 싶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일단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전사(warrior)의 마음가짐’을 강조합니다. 싸움을 하는 군인(soldier)이 아니라, 한의학의 가치를 지키고 세상에 선하게 쓰겠다는 마음을 가진 전사죠. 개인적으로는 저를 소개할 때 ‘약을 처방할 수 있는 심리 치료사’라고 하고 싶어요. 약을 처방하는 권리보다 심리 치료에 대한 사랑과 정체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에요. 사실 심리 치료가 제 삶을 살렸다고 느껴요. 학생들도 일본이라는 사회에 들어올 때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오기를 추천해요. 그러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어요.
만약 일본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면, 일본 의대를 가든, 한의학 연구를 하든,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의대로 오는 것을 추천해요. 이미 한국에서 한의대를 다니신 분 정도의 실력이라면 1년 정도 준비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의대에 들어간 이후의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아요. 대학 내 한의학 연구실이 늘고 있어서 한의대 학생이라면 꽤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어요. 일본은 이런 쪽으로는 굉장히 열려 있는 분위기거든요. 참고로 저는 졸업 후 해부학교실이나 생화학교실에 남을 뻔했습니다. (웃음)
다만 일본에서 침구사 활동만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아요. 침구사는 일본에서 정골사 정도 위치에 머물러서, 의사로 진출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의학의 가치를 깊이 연구하고 싶다면, 일본은 정말 좋은 환경이에요. 만약 일본 의사로서의 길을 꿈꾸는 학생이 있으시다면, 개인적으로 서포트할 생각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충분히 도전할 만한 길이 열려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본은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사실상 거의 모든 임상 활동이 가능합니다. 한약은 저는 쯔무라를 주로 쓰는데, 중국에서 배워오신 선생님들은 직접 탕전까지 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일단 쯔무라만 사용해도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고, 약재 안전성도 신뢰할 수 있어요. 자체 농장에서 재배하고 일본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보험 진료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희 클리닉도 거의 90%가 보험 진료로 운영되고 있고, 나머지 10% 정도가 자하거나 글루타치온 요법이에요. 큰 부자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생활하기 편하고 안정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사회가 느리고 보수적이어서, 외국인이라도 그 흐름에 맞춰 천천히 적응하면 잘 정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환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신중하고 배려가 많아서, 한국처럼 긴장하며 진료할 필요는 적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Q. 일본에서 임상을 하기 위해서 일본어나 영어 같은 외국어 능력은 어느 정도로 갖추어야 할까요?
A. 일단 저는 영어로도 진료를 많이 보긴 합니다. 클리닉 근처에 규슈 대학이 있는데 일본어가 안되는 중국 유학생들이 엄청 많거든요. 심지어 요즘은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어가 완벽하지 않은 환자들을 위해서 영어로 해요.
그러나 사실 일반적인 곳에서는 영어를 안 쓰는 경우도 많고, 일어는 잘할수록 좋아서, JLPT 같은 시험에서 가장 높은 급수를 받으면 좋아요. 특히 의사로서 일 하려면 언어 센스가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기본적인 수준의 일본어가 된다면, 그러한 미묘한 언어 실력은 의대 다니면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Outro
Q. 후배 한의대생들에게 “꼭 해보고 오면 좋겠다” 싶은 경험이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혈혈단신으로 제로 라인(zero line)에 서보기! 인생에서 꼭 한 번은 아무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대신 자기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일을요. 누가 하라고 강요해서라든가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라든가, 이런 이유로는 추천하지 않고요. 자기 안에서 정말 내가 하고 싶다고 느끼는 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한 3년 정도는 우직하게 노력해볼 만한 일이면 더 좋겠네요.
가급적이면 젊을 때 하는 게 좋아요. 보통 그런 일들은 버텨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많이 요하거든요. 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하고 크다고 평가받는 일들은 다 조건이 안 갖춰진 상태에서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그 '조건'을 갖추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한 번 만들어보세요!
Q.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UP) & 가장 힘들었던 순간(DOWN)과 그 극복방법이 궁금합니다.
A. 우선 가장 뿌듯했던 건 제가 개업했을 때예요. 제가 이토시마시에 아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개업을 했어요. 제가 상상했던 대로 체계가 갖춰지고 운영되는 데까지 1년 반 걸렸거든요? 제가 이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는 환자들도 많아지고, 또 멀리서도 저를 만나러 오시는 걸 보면서 '정말 기쁘다'라는 감정을 느꼈어요. 저는 원래 크게 기뻐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이 감정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처음 일본에서 의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때처럼 0에서부터 다시 한번 시작해본 거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예요. 1980년이었는데 제가 광주에 있었거든요. 광주 민주항쟁을 두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그 때의 공포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꼼짝없이 죽는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슈퍼나 시장을 가면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지경이었고, 정말 그 때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광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는 게 너무 억울해서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고까지 생각했어요. '내가 전주에 있었으면 안 죽어도 되는데 여기서 내가 왜 죽어야 될까.' 이런 실존적인 고통을 느꼈어요. 이 순간을 극복한 방법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각을 떨쳐내는 거였어요. 저는 수학을 좋아했거든요. 어차피 죽는 마당에 내가 좋아하는 거라도 하자라는 심정으로 도인이 도 닦는 것처럼 수학 문제를 풀었어요. 이전에는 종이도 아끼면서 한 장에 여러 개씩 문제를 풀었는데, 이제 죽는다는 생각에 연습장 한 장 정가운데에 한 문제 풀고, 다른 종이로 넘기고, 정자세로 앉아서 유서 쓰듯이 수학을 계속 풀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월남전에 위문 편지를 썼던 세대예요. '군인 아저씨 공산당 무찌르고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이런 내용을 썼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공격하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에 정말 힘들었어요. 사실 제가 외국으로 나온 이유에는 광주가 커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직후에 저를 기다린 건 광주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거든요.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말이 '광주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서울에 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광주 사투리를 고치는 거였어요. 사투리를 빨리 고쳐야만 살아남는다. 관련해서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한국에는 내가 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굉장히 빨리 알았어요. 무의식적으로 난 이 나라를 떠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에도 광주가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일본에 와서 불꽃놀이를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폭죽 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서 주저앉아 버렸거든요. 순간적으로 기관총 소리가 나잖아요. 트라우마 반응이었던 거죠. 1980년 이후로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봐서 그랬던 것 같아요.
Q. 앞으로 원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안 바꿔도 돼요. 저는 세상을 바꾸려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실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었거든요. 물론 제가 해온 것들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도 변화가 생긴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굳이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제가 지금 여러 환자분들을 심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자기 주도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도록 하는 것 정도인 것 같네요. 사회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바꾸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 명 한 명이 모이면 세상이 바뀌겠죠. 물론 제도도 중요하죠.
제가 지금 강조하고 있는 '치유와 성장'이라는 개념이 결국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거든요. 남의 꿈을 살지 않고, 내 꿈을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원장님과 함께한 이토시마에서의 이틀은 통합의학의 전인적 가치뿐만 아니라 향후 일본으로의 진로 진출까지 생각해볼 수 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따뜻하게 맞아주신 유수양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Interviewer: 오리너구리, 플라밍고, 양
Editor & Writer: 오리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