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세계화에 앞장서다, 송지청 교수님

by 대신만나드립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2025년 12월 겨울, 대만드 햄스터와 고등어 그리고 사막여우는 송지청 교수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송지청 교수님께서는 대구한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이시며,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힘쓰고 계십니다. 송지청 교수님과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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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現 대구한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現 대구한의대학교 국제처 처장
-現 한국의사학회 부회장
INTRO

Q.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대구한의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 교실, 송지청입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 한의대를 다시 입학하여 원광대학교에서 석사, 박사를 하고 2009년부터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했으며 2014년도에 부임을 해서 지금 의사학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제가 맡은 과목은 의사학, 한의 정보학 그리고 기초의학한문이었으나 2022년도부터 국제처에서 일을 하면서 현재는 의사학과 한의 정보학을 주로 강의하고 있어요.
현재는 학교에서 국제처장이란 보직을 맡고 있으며 우리 대학교에서 국제화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의과 대학에서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Q. 요즘 교수님의 일과나, 일주일 루틴이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월요일 날 보직자 회의하고, 오후에 부서 회의하고, 수요일 날 주로 학부 강의가 있어요. 그리고 금요일 날 대학원 강의가 있고, 목요일 날 2차 보직자 회의가 있습니다. 그게 제 일주일 루틴입니다. 그리고 한 달 루틴은 평균적으로 2회 정도 해외 출장을 갑니다. 코로나 끝나자마자 첫 출장 가기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그러합니다.

Q. 교수님 대학원에서도 의사학 관련으로 강의하세요?


A. 일반대학원 한의학과에 의사학 전공자들을 위한 강의가 있고, 별도로 한의학과 영어 트랙 과정이 있어서 외국인 유학생들 대상으로한 한의학석사 과정 강의가 있어요. 우리 학교 대학원에 한의학 석사, 박사 영어 트랙 과정이 있어요.


학창시절

Q. 한의대 진학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A. 원래 중학교 때 꿈이 한의사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한의사였는데 고등학교 1학년 봄에 진로를 정하라고 해서 한의예과라고 정했는데, 학교 교무실에 제 진로희망이 한의대라고 썼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왜냐하면 당시만해도 한의학이라는 전공이 젊은 학생들에게 안 맞는거 같다고 생각했었나봐요.. 그러다가 문과, 이과를 써야 되는데 문과를 가겠다고 했더니 교무실에서 또 난리가 났죠. 이과성향이 강한데 왜 문과로 진학을 하냐고요.(웃음)
어쨌든 그렇게 문과를 가서 사학과를 갔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말에 진로 고민을 하는데, 대학원을 갈 생각이어서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 신문을 하나 샀는데 신문 구석에 ‘경희대 한의대, 박사들이 입학’ 이런 기사가 있는 거예요. 그 당시만 해도 대학 졸업하고 사회인들이 한의대 가는 게 조금씩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한의대를 가고 싶어 했던 옛날 생각이 난 거예요. 그래서 집에 와서 고민을 하다가 도전해 봐야 되겠다고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해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4학년 1학기 때 수업을 대부분 마치고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수능준비를 하고 수능을 봤어요. 다행히도 한의대 문 닫고 들어갈 만큼했었는지 합격을 했어요. 운이 좋았던거죠.
그게 아주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에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긴 했던 것 같고, 잘했던 것 같아요.


한의학의 세계화

Q. ‘한의약 해외교육·연수 지원 사업’에 처음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우연한 계기인데, 어렸을 때 배경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80년대 중반에 선친께서 교환 교수로 미국에 가션는데, 그때 미국에서 1년을 살았고, 그 다음에 90년대에도 1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을 했었어요. 또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고, 어렸을 때 미국에 있으면서 두 달간 우리 가족이 미전역의 국립공원에 야영을 하면서 지냈던 경험이 있어요. 85년도 얘기니까 그게 벌써 40년 전 얘기네요. 이런 저런 경험이 있었다 보니까 외국에 대해서 되게 스스럼 없게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외국 친구들도 많았고, 연락하고 있는 지인들도 많았어요. 국제적이다라는 표현은 좀 웃기지만 국외의 물정이나 컨택 포인트가 좀 많았던 것 같아요.

또 고대 사학과 다닐 때 주로 중국사하고 일본사 중심으로 공부했으니까 일본과 중국에 지인들도 좀 있었는데 나중에 한의대에서 그 분들과 또 연결되고, 또 한의대에 다니면서 중의학 전공하는 사람들도 알게 됐어요.
결정적으로는 우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한의약 해외 교육 사업”을 알게 된 것이 컸습니다. 19년 겨울 학교에서 난데없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출장을 가야한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12월달에 블라디보스톡에 갔어요. 가서 태평양 의과대학에 의대생들 대상으로 한의학 특강을 했어요. 근데 그 당시에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님(당시 이응세 원장)께서 우리 학교가 한의학 해외 교육 사업에 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했어요. 저는 ‘한번 해보겠다, 좋죠.’라고 말했고, 그래서 그때부터 한의약진흥원과 함게 ‘한의약 해외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2년도에 학교에서 국제처 일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외교류처 부처장이었는데 국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24년도 2월에 조직 개편되면서 국제처가 따로 만들어져서 지금 국제처장을 하고 있어요. ‘한의약 해외 교육 사업’을 진흥원을 통해 진행하고 있던 차에 학교에서도 국제 업무도 맡고 있으니까 시너지효과가 났던 것 같아요.
21년도는 코로나 여파로 해외 출장이 안 되니까 한의약 관련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대학 이봉호 교수님이랑 둘이서 기초한의학, 경혈학, 침구학 중심으로 거의 100개 정도의 영상을 만들었어요. 21년도에는 해외 의대생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 식으로만 진행했는데 코로나 풀리자마자 22년 5월에 우즈벡 출장을 가면서 해외 유학생 유치업무와 더불어 한의약 해외교육을 실질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짧게 얘기하면 한의약 해외 교육에 대한 관심이 원래 있었고 또 알음알음 하고 있었죠. 근데 ‘체계적으로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던 차에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 지원 사업이 있어서 수행을 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경희대, 원광대, 부산대 우리 학교 이렇게 네 군데서 하다가 지금은 우리 대학만 하고 있습니다.

Q. 사업과 관련하여 아주 많은 해외 출장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세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요. 첫 번째는 튀르키예 의대에서 강의를 할 때였어요. 당시에 참여학생 외에도 나이 많은 신경과 교수 한 분이 참여했었는데, 그 분은 침술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어요. 그분이 수업을 하루 종일 들으면서 중간중간에 계속 부정적인 질문을 했죠. 근데 수업을 할 때 주로 어떻게 하냐 하면, 말로만 하지 않고 설명을 해준 다음에 해당되는 질환이 있는 환자가 있으면 치료를 겸한 실습도 같이 하거든요. 이때 그 교수님은 현장에서 직접 침술을 경험하고는 생각을 바꾸셨는지, 부정적 질문이 호기심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번째는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론 수업 후 실습을 위해 지원자를 받았어요. 그때 어떤 학생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나온 거예요. 원위취혈을 바탕으로 발목치료를 위해 손과 얼굴에 침을 놓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 문제없이 걷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안디잔 교수들도 ‘저거 사기다, 짰다’ 이런 얘기도 하고 부총장은 완전히 놀래서 ‘나 전공 바꾸고 싶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웃음) 이렇게 침술은 경우는 그 자리에서 효과를 보여줄 수 있어서 해외교육에 좋은 방향이 되었죠.

세 번째는 22년부터 여름마다 우리 대학은 한의약 교환학생 프로그램(한의약 써머 캠프)을 진행하는데, 작년에도 7개 국가에서 거의 100명 가까운 의대생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교육을 받았어요. 근데 그중에 타슈켄트 치과, 페르가나 국립의대 교수들도 함께 왔는데 이 분들이 우리 학교 오기 전에 계곡에 놀러 갔다가 넘어져서 교수님 중 한분의 팔과 어깨에 문제가 생긴거예요. 그래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는데 뼈는 부상이 없는데 팔이 안 올라가고 있었어요. 이론수업 마치고 이론수업에 따라 실습의 일환으로 침을 놓아드렸더니 팔에 감고 있던 붕대도 다 풀고 좋아졌죠.
이렇게 침술의 효과를 바로바로 보여주는 게 교육에서 이론을 설명하는 것보다도 좋아요. 한의학의 효과, 침술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서 그렇습니다.(웃음) 우리 대학에서 진행하는 한의약 해외교육 프로그램 중에 이런 실습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의학의 효과를 말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직접 보여주니까 되게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 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네요.

Q.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쌓으신 해외 경험들이 현재의 한의학 강연 및 다양한 노력을 시작하고 이끌어 나가는 데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A. 한의학 교육 방면이 되게 다양하게 있잖아요. 본초학도 있을 거고, 방제학도 있을 거고, 그냥 한의학 기초 이론도 있죠. 저는 그 중에서도 처음부터 경혈학과 침구학 쪽에 포커스를 뒀어요. 이유는 약물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약의 경우 엄격한 법률 제한으로 해당국에서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교육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어요. 약물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수입도 어렵고 우리처럼 탕약처럼 끓여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없고요.

그런데 침하고 뜸만 있으면 그대로 들고 나가서 할 수 경혈학, 침구학을 강의할 수 있고, 그쪽에서는 의사 면허만 있으면 침습 행위는 할 수 있으니까 관심과 교육 수요가 훨씬 많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약에 대해서는 접근이 어려우니 침술에 대해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해외 교육은 이봉효 교수님과 의견 투합을 해서 침술에 초점을 많이 뒀었죠.

Q. 한국 학생들과 외국 학생들은 어떤 점들이 크게 다른가요?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좋은 학문을 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 (한의학을) 처음 접하는 외국 학생들은 너무 신기해하고, 관심도도 높고 이를 배우고 싶어 해요. 하지만 배울 데가 없고, 배우다 보면 깊이 들어가야 하나 언어 특히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힘들어 해요. 실제로 유럽에서 동양의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한자를 익혀서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외국 학생들에게 경맥의 명칭을 WHO 표준대로, 그러니까 수태음폐경을 Lung Meridian 등으로 설명하지 않고, ‘수태음폐경’, ‘수양명대장경’ 등 원래 우리 방식으로 설명해요. 양명, 태양 즉 삼음삼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하기 위해서예요. 그렇게 해야 경맥을 어떻게 운용할지 이야기할 수 있고, 수족이 달라진다는 것, 삼음삼양이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 음경끼리, 양경끼리 묶인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요. 폐경, 대장경이라고 하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지만, 경맥과 경맥의 관계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언급을 할 수가 없어요.
한국 학생들은 조금만 공부하면 한자를 금방 익혀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데 안하려고 하고, 외국 학생들은 관심도가 높지만 언어 문제 때문에 깊이 파고들지 못한다는 것이 있죠. 안타까워요.

Q.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학(이슬람 계열)과 한의학(동아시아 계열)은 어떻게 다른가요?

전통의학 즉 traditional medicine은 지역색이 굉장히 강해요. 특히 중의학과 한의학은 공통분모가 많죠. 잘 알아야 하는 개념이 하나 있는데, 시원이 같다고 해서 두 학문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돼요. 이는 사람의 조상이 유인원이라고 해서 현재의 사람과 원숭이가 똑같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아요. 제가 학교 강의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는 것인데, 시작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에요. 한자도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누가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에요.

침술도 중국과 우리가 다르게 놓아요. 저는 원위취혈 치료 강의를 많이 하는데, 경혈학의 표본론을 중국 중의사들은 쓸 줄 몰라요. 표는 열심히 외우지만, 그 표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죠. 저는 한국에서 그 표본론을 어떻게 쓰는지 배웠어요. 제 교수님의 스승님이 조선시대 전의(典醫)셨고, 침을 그 분께 배워서, 표본론을 어떻게 쓰는지를 아는 것이에요. 고려 시대부터 우리나라는 침술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었고, 침의(鍼醫)의 실력이 좋았어요. 베트남만 하더라도 약물학에 대한 전통은 내려오는데, 침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호치민에 본초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도 약물에 대해서는 전시가 많은데 침에 관한 내용은 잘 없거든요. 반면, 우리는 옛날부터 침에 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전통 의학의 측면에서 중국과 한국은 공통분모가 있고, 일본도 이를 가지고 있다가 양의학 쪽으로 재편되며 일부만 가지고 있어요. 몽골의 전통 의학은, 기마민족이라 정골요법에 강하고 사혈요법 중심이었는데 원나라에 들어 중의학이 일부 들어왔어요. 이후 공산화되며 중국에서부터, 특히 외몽고 내몽고가 나뉘면서 중국 내몽고 지역에 몽골 사람들이 살게 되고, 이곳과 교류하며 현대 중의학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우리는 전통 의학에 침술과 본초학이 삼국시대부터 쭉 내려왔다면, 몽골은 본초학에 대해서는 깊이가 없다가 원나라 때 들어와 다양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근대에 와서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 공통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어요.. 한나라 때부터 교류를 한 베트남도 한자 문화권이고, 전통의학도 있었고, 약물학 지식도 있었지만 침술에 대해서는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어쨌든 동아시아에서는 침과 약이 중심이 된 전통 의학의 tradition이 있는 것이죠.

중앙아시아에는 아부 알리 이븐 시나라는 페르시아 사람이 있었는데, 900년대에 태어나 11세까지 활동한 전통의사에요. 《의학 정전》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약물학 지식, 맥, 부항(히자마), 거머리 사혈 요법 등이 주된 내용이었고 침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최근 전통의학을 강조하는데, 이는 사실 우즈벡의 천연자원 약물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집중이 되어 있는 것이죠. 중앙아시아에 있다 보니 중국과도 교류가 있어서 침술도 배우고 싶어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동양의 전통의학과 꽤 다른 점이 있어요.

또, 인도 쪽에 우나니 의학과 아유르베다도 있잖아요. 이들도 동아시아 전통의학과도 다른 점이 많아요. 그 나라 고유의 약물학 지식이 있지만, 침술을 잘 사용하지는 않아요. 태국의 전통 의학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약물학 지식은 있지만 경락이 10개이고, 경락 노선도 다르고, 침습적 행위 없이 모두 마사지로 시술해요. 경혈을 다 눌러요. 우리가 침을 놓듯, 그곳에서는 지압봉이나 손을 통한 지압을 해서 두통, 경항통을 치료해요. 그래서 아시아 전통의학의 공통분모는, ‘그 나라의 생약(medicinal plants)을 사용한다.’ 정도이고, 각국 전통의학의 모습은 지역에 따라 다 다른 것 같아요. 우리(한국인)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 의학은 한국과 중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본초학, 침구학 중심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네요.

Q. 대구한의대에서 Global PBL 프로그램의 외국인 유학생 멘토로 활동하며, 우즈베키스탄 학생이 "삼음삼양에서, 왜 1이나 2가 아니라 3인가요?"라고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고 한의학에 대한 외국 학생들의 관심에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받으셨던 외국 학생들의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사실 음양이 다 되잖아요. 그러니까 대부분 음양으로 다 설명이 되죠. 크게 보면 음양이라고 하는 단순한 법칙인데, 음양을 나누면 오행이 되고 또 삼음삼양이 되죠. 의학을 하면서 철학을 이야기하면 비과학이란 이름으로 거부를 하게 되는데, 동양학이 철학과 실학이 잘 어울려져 있는 것처럼 한의학은 형의상학의 개념들을 의학에 높은 수준으로 접목한 독특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최종적으로 경락을 이해하려면 삼음삼양을 이해해야 하고, 삼음삼양을 이해하려면 음양이 어떤 의미인지 이론적으로 잘 알아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더나아가 팔괘(八卦)를 알아야 하고... 이렇게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다들 흥미가 떨어지죠. (웃음) 점치는 팔괘를 알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팔괘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제외한 모두는 음양의 편차가 있잖아요. 음양의 편차가 있다는 건 변화가 있다는 거고, 그 변화는 인체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인데, 목적으로 느껴지면 왜 배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런 학문적 구조를 이해하려는 것에 대해 이젠 대부분 거부해요.


Q.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있나요?


네 있어요.

Q.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무엇이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의외로 삼음삼양처럼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었어요.

수업 중 경혈명을 설명하다 보면 학생들이 “이 효능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 나와 있나요?”라고 묻곤 해요. 그럴 때 저는 “고 한의서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아울러 경혈명을 한자로 이해해야 효능을 이해할 수 있다.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이름으로 남겼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다시 “그 한자는 어떻게 배워야 하나요?”라고 이어져요. 더 깊이 공부하고 싶지만 한자가 장벽이 되는 학생들의 고민이 인상 깊었어요. 특히 외국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내용에 더해, 한자를 중국식이 아닌 한국식 발음으로 배워야 하기에 수업을 따라오는 데 어려움이 커요. “왜 이 치료에서 그 혈자리를 선택하나요?”, “그 부위가 그 경락이라는 걸 어떻게 아나요?” 같은 질문도 자주 받아요. 저는 경락 이론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기(氣)의 흐름을 관찰하고 정리한 경험의 결과라는 점을 설명하죠. 실제 임상에서 그 이론에 따라 치료하면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체계를 기반으로 치료해요. 또한 경락을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저 역시 본과 1~2학년 때 경혈학을 배우며 제 몸을 직접 짚어가며 경락을 떠올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왜 원위취혈을 하나요?” 이 질문도 특히 기억에 남네요.

원위취혈의 첫 번째 이유는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아픈 부위에 직접 침을 놓는 방법도 있지만, 예를 들어 혀나 눈처럼 침을 놓기 어려운 부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기의 흐름을 물의 흐름에 비유해 설명해요. 물길이 막혔을 때 그 지점만 해결하면 될 것 같지만,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 위쪽에서부터 물줄기를 틀어줘야 완전히 해결되거든요. 원위취혈은 바로 그 역할을 해요.

두 번째 이유는 동기법을 활용하기 위해서예요. 침의 목적이 기 순환이라면, 움직임은 그 효과를 배가시켜요. 예를 들어 어깨 통증이 있을 때 어깨에 직접 침을 놓으면 유침 중 움직이기 어려워요. 하지만 반대쪽 손에 침을 놓고 어깨를 움직이게 하면, 움직임 자체가 치료가 되고 환자도 즉각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사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프면 움직입니다. 이것이 동기법의 원리예요.

여기에 호흡을 더하면 효과는 더 커지죠. 외국인들에게 운기사법을 활용해 침을 놓은 뒤 “Breathe deeply 5 times”라고 하곤 하는데, 하고 안 하고 효과가 달르다는 걸 알게 되요.

원위취혈 관련해서 재미있는 경험도 생각나네요. 튀르키예 국립 의대 총장이 우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치료했던 일인데요, 침을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며 어깨가 뻣뻣하다고 하셨어요. 손에 침을 놓으면 어깨가 풀릴 것이라고 설명하자, 정말 그렇게 되면 터키 의사 면허증을 주겠다고 농담을 하셨죠. 치료 후 실제로 어깨와 목이 부드럽게 움직이자 크게 놀라셨어요.

저는 치료할 때 보통 원위취혈 후 자극을 주고, 아픈 부위를 움직이게 하며, 운기사법을 활용해 깊게 다섯 번 호흡하게 해요. 통증이 100에서 30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많고, 5~15분 내에 더 크게 호전되기도 해요. 다만 기가 약한 어르신에게는 아시혈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기감이 좋아 반응이 빠르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Q. 비슷한 맥락에서, 가장 답변하기 어려웠던 외국학생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중의학과의 차이가 무엇이냐’하는 질문이에요. 사실 굉장히 쉬운 질문인데, 지금 여러분들도 답변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이 있어요. 똑같은 침, 도구, 똑같은 약재가 있어도 우리가 쓰면 한의학이고, 중국이 쓰면 중의학이에요.
예를 들면, 침의 수기법도 다르고, 경락을 운영하는 방법도 다르고, 중국은 ‘오행혈’이라는 개념을 배우긴 하지만 잘 안 써요. 반면 우리(한의학)는 사암침법이라는 독특한 침법도 있고, 오행혈에 대한 개념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원위취혈에 대해서도 많이 강조하는 편이죠. 또, 약물에 대해서도 다른 점이 있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은 약재가 풍부해서인지, 약을 오래 우리지 않고 티백 우려내듯이 맑은 물로 마셔요. 그래서 중국 처방은 한 첩의 양이 정말 많고, 우리는 적죠. 중국 사람들의 처방 한 첩은 넘쳐서 대형 약탕기에 잘 못 끓일 정도이고, 약물도 농도가 진하지 않아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약재가 귀해요. 정말 진하게 끝까지 우려내도록 세팅되어 있고, 이렇게 우렸을 때의 약물 치료 효과에 대해 알고 있어요. 이에 맞게 약물량도 줄어들었을 거고, 끓이는 방식도 맞춰져 있을 거고, 복용할 때도 짜서 마시게끔 되어 있겠죠. 중국에서는 약재를 짜지 않고, 설렁설렁 물에 적신 후에 우러난 것을 마신다고 해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고추는 남미에서 왔다고 해요. 우리는 고춧가루로 만든 김치를 먹는데, 고춧가루가 남미에서 왔다고 해서 김치가 남미 것은 아니잖아요. 즉,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쓰느냐가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외국 학생들 대상의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에게 배운 침구학으로 너희 나라에서 너희 자국민의 병증, 적응증에 맞게 쓴다면 그것은 너희의 침구학이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맹목적으로 사용하면 남의 것을 카피하는 것이지만, 배우고 너희 나라에 맞게 사용하면 결국 너희의 것이 된다. 1년이 될 수도 있고 100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가지는 무게가 정체성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질문이 어려운 것 같은데, 사실 저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에요. 한의학과 중의학의 차이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Q. 해외 교육, 연수에 관한 업무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행정적으로 세팅을 하는 것이 힘들어요. 외국 학교에 수업 계획에 관해 설명해야 하는데, 나라에 따라서 강의안을 먼저 보내 점검받아야 할 때도 있고, 수업 내용을 허락을 받아야 할 때도 있어요.

가장 힘든 점은, 나라마다 이해도가 다르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베트남과 몽골에는 전통의학과가 있고 공통으로 배우는 것들이 어느 정도 유사해서 그보다 상위의 것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그에 맞춰서 수업 준비를 해야 해요. 반면, 튀르키예나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전혀 배경지식이 없어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해요. 국가별로 수업 수준을 조절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 경험이 쌓이니까 국가별 강의의 수준에 대한 저만의 세팅값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처음 강의의 수준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직접 그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대화하시나요?


해당 학교의 교수님들께 여쭈어보아요. 이 이론을 아냐, 무엇을 배웠느냐 등등이요. 우즈베키스탄의 경우에는 모두 모른다고 해요. 의대생들도 강의를 듣는데, 오히려 전혀 모르기 때문에 쉽게 섞여요. 튀르키예의 경우, 전통의학과라는 것 자체가 없고 모두 의대생들이에요. 그에 맞추어 해부학적으로, 근육을 곁들여 경혈에 관해 설명하기도 하죠.

Q. 교수님께서는 학교 간의 교류와 별개로 해외 교육 사업을 확장하고 계시나요? (개인적 인연을 통해 해외 교육 사업을 확장하고 계시는지 궁금했음.) 국가는 교수님께서 고르시나요?

네, 맞아요. 제가 아는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요.


Q. 대구한의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도 늘어날까요?

하려면 할 수 있죠. 처음에는 우즈베키스탄, 몽골로 시작해 베트남이 추가되고, 이제 튀르키예까지 늘어났잖아요. 태국, 인도, 이집트에서의 프로그램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어요.

Q. 국제교류를 통해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기대하시나요?
대학에서 국제처를 담당하며, 한편으로는 ‘한의대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만날 기회를 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생각해보면, 전국 한의과대학 중 방학에 2주 동안 교환학생을 가서 1~2학점을 받아올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어요. 학생들이 다양한 국가에 2주 동안 다녀오면서, 그 나라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깊이 이해하며 해당국의 의학교육제도를 이해하고 접점을 넓힌다면 졸업 후에도 능력을 갖춘 한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또 22년도부터 한의학 관련 교환 학생들을 보내기도하고 또 받기도 시작했어요. 첫해에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학생들 총 20명이 인바운드로 들어왔고, 우리 학생들 40명이 몽골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어요. 23년도에는 몽골,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학생들 총 40명 정도가 들어왔고, 24년도에 80명 정도, 그리고 25년도 여름에는 120명 정도가 되었어요.

이렇게 규모가 커지다 보니,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외국 학생들의 멘토, 통역 학생으로 활동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고, 어학 공부도 하고,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등 그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어떤 학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친해진 중국의 교수님 초청을 받아 중국에도 다녀왔어요. 이렇게 점점 더 많은 기회와 인연이 생기는 것이죠. 이번 겨울에도 중국, 인도, 우즈베키스탄, 태국, 터키, 몽골, 키르키즈스탄, 베트남 등에서 자국의 의대생들이 왔는데, 이 학생들도 각 나라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교류할 수 있는 것이 국제화 역량이지, 꼭 해외에 나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개인적으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공부는 그다음이어도 되는 것 같아요. 햄스터 학생을 보세요. 우즈베키스탄 전문가예요. (웃음) (햄스터는 대구한의대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에 4번 다녀왔습니다...) 20대 중반에 우즈베키스탄 전문가라고 칭할 만큼 경험 많은 학생들은 많지 않잖아요. 아마 햄스터 학생 혼자 부하라에 가도 잘 살 거예요. (웃음)

Q. 교수님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느 지역을 가보셨나요?


우즈베키스탄에 10일 동안 있으면서 10개 의과대학을 다 돌아다녔어요. 안디잔, 페르가나에 (의과대학이) 하나씩 있고, 타슈켄트에 3개, 사마르칸트, 부하라, 테르미즈, 우르겐치, 누쿠스에 각 하나씩 있어요. 우리 대학은 이 10개의 의과대학과 모두 MOU를 맺었어요.

Q. 앞에서 말씀해주신 석사 과정의 외국 학생은 우즈베키스탄 외에 다른 나라 출신도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Q. 앞으로 대구한의대의 해외 관련 프로그램은 어떻게 확장될까요?


A. 인바운드 프로그램 중에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있어서 매년 여름마다 할 거고 아웃바운드는 지금 우리 대학이 ‘글로컬 대학 30’ 사업하면서 기회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여름방학 때나 겨울방학 때 여러 국가로 확장해서 나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10명씩 우즈베키스탄, 몽골, 베트남으로 나갔는데, 국가가 많아지면 더 소수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학생들이 꼭 한의사로서가 아니라, 한의학을 베이스로 해서 사업을 하거나 한의학 해외 교육자로도 나가는 등 다양한 인물들이 배출이 되면 좋겠어요. 또 한의원을 하거나 한방병원을 운영을 하면서도 외국 환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좋잖아요. 제가 20대 때 졸업을 해서 한의원을 하는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외국인 환자 중심의 한의원을 운영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성북동에서 한의원을 했었는데, 거기 외국 주재원들이 많이 살거든요. 소개를 통해서 외국인 환자분들도 많이 오셨었어요, 제가 치료를 하면서 설명을 해드리고 그랬죠.

Q. 해외 교육 사업이 지속되기 위해 정부나 협회 차원에서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교육을 단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체계적으로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장기로 지원이 되는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Q. 해외 교육 사업을 위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요?

A. 언어 공부를 일단 해야될거고요, 그리고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알아야해요.
그래야 번역을 하든 통역을 하든 할거니까요. 내가 경락이 뭔지 경맥이 뭔지를 헷갈리기 시작하면 안되겠죠. 그래서 해외 교육에 관심 있는 건 좋은데 내 공부도 열심히 해야해요.

Q. 해와 강연 및 교육, 혹은 진출에 관심이 있는 한의대생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A. 책이 꼭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해당되는 국가에 좀 역사와 문화에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해외에 갈 때 짧은 책이라도 괜찮으니 관계 서적들이 있으면 보고 가는걸 추천해요. 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저도 처음 터키를 갈 때, 책을 하나 읽었고 그 다음에 ‘오스만의 꿈’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어요. (웃음)

Q. 해외에서 한의학을 접한 사람들이 인상 깊게 반응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예전에 벨기에서 특강을 했는데 거기는 30년 전부터 중국 중의학을 접한 1세대들이 있었어요. 그 1세대들이 지금 2세대들을, 또 2세대들이 3세대들을, 이렇게 교육을 하고, 침을 놓거든요. 열결혈은 대부분 직자를 잘 못하니까 사자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직자를 할 수 있거든요. 열결혈이 편두통에 좋잖아요. 직자를 잘하면 편두통 치료에 되게 좋아요. 근데 처음에 제가 벨기에에 강연을 갔을 때 이 분들이 반신반신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팀이 열결혈 직자를 직접 보여드렸죠.
근데 그날 밤에 저한테 열결혈 침을 맞으신 분이 편두통 없이 너무 잠을 잤던 거에요,
그래서 그 다음에 우리를 다시 초청했어요


OUTRO

Q.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과, 가장 힘들었지만 극복했던 순간이 있으셨다면 그 과정과 배운 점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제가 본과 2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고 혼자 도서관에 앉아서 내가 이해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이해할 때까지 자리를 안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이렇게 쌓아놓고서는 한 3~4시간 앉아가지고 계속 찾아봤어요. 어느 순간 그냥 갑자기 확 풀리는 경험을 했는데요, 그 때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앞으로의 장기/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A. 단기 목표는 한의학 세계화 더 열심히 하는 거고,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이 제자들이 해외로 더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위해서 내가 어떻게 서포트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Interviewer : 햄스터, 고등어, 사막여우

Editor&writer: 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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