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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Jan 04. 2020

[진로인터뷰] 한국한의학연구원 이상훈 박사님 1편

한의학의 미래를 보라: 한의학의 표준화 과제 연구란? 

해가 산뜻하게 등허리를 비추는 어느 5월의 금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수달과 호랑은 부리나케 대전 한의학연구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바로 한의학 표준화작업의 선두주자, 이상훈 박사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인공지능 한의사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하는데요. 인공지능 한의사, 미래의 한의학이 궁금하다면 이상훈 박사님을 보라! 바로 이상훈 박사님의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약력]

2003년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2007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석사 

2009년- 한의학연구원 근무 (현재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2011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박사 

2015년- 한국 과학기술 연합대학원대학교 한의융합의학과 전공책임교수

201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차세대 회원     


[이력]

한의학연구원 최초 연구원(최저직급)출신 보직자

ISO/TC 249 전침기, 전침용침 시험방법, 부항기 Project Leader로 국제 표준개발 총괄책임

2017년 일회용 멸균 부항 개발로 한방의료기기 최초 보건신기술(NET) 획득

2017년-2019년  자기식 침 시술 가이드 초음파 시스템 개발 및 상용화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 

2019년 한의사 최초로 한국 과학기술한림원 ‘차세대 회원’ 선임  

2019년-2024년 AI 한의사 개발을 위한 임상 빅데이터 수집 및 서비스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     


<1편: 한의학의 표준화 과제>

Q. 박사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말씀해주세요.

현재 한의학연구원에서 한방의료기기 현대화 및 한의 의료정보 표준화 업무를 맡고 있는 10년차 한의사 연구원 이상훈입니다.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의 개원의 생활과 1년 남짓한 대학교 연구실 생활을 거쳤습니다.

     

Q. 박사님의 하루 Daily 일정이 궁금합니다. 전체 일정 중 연구의 비중은 어느 정도 되나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연구하는지를 묻는 거라면 제 대답은 잠잘 때 빼고는 다입니다. 사람이 꽂히는 게 생기면 하루 종일 생각하잖아요. 저도 뭔가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 까지 달려드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잠잘 때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이 질문에는 24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Daily 일과는 매일 일정이 달라 정확하게 말을 못 하겠지만 보통 한의학연구원에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7-8시쯤 퇴근해요. 연구원은 자율 출퇴근이에요. 8시 출근해서 5시 퇴근하거나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든지 해요. 10시 출근도 가능해요. 하루 8시간만 맞추면 돼요. 저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보통 10시에 출근해서 7~12시까지 있어요. 전형적인 올빼미 스타일이지요.     


Q. 박사님은 어떤 대학생이셨나요?

A.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놈팡이였어요. ^^    

(재연) 대학생 시절 이상훈 박사님 모습

(호랑이) 놈팡이라니 안 믿기는데요!  

한의대 다닐 때 유급을 당했는데 그 전까지 놈팡이같은 삶을 살았어요. 제가 원래 성격이 누가 답을 알려주는 걸 정말 싫어해요. 내가 납득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못 넘어 가는 성격이었죠. 한의대 수업도 이해가 잘 안가고 그래서 유급도 당했죠. 혼자서 반년 정도 한의학 공부하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수업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는 한의대를 좀 편하게 다녔어요. 그 전에는 좀 힘들었거든요. 그때 혼자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게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는 한의학의 역사를 뭉뚱그려서 한 장의 책에 넣다 보니까 일관성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때부터는 맹목적으로 한의학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이게 어느 맥락에서 쓰였던 글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보게 돼서 그렇게 힘들지 않게 한의대를 다녔어요. 특별히 대학교 성적이 좋았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Q. 임상(개원)을 하다 연구자의 길로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계기가 있으셨나요?

 A. 저는 개원을 할 때부터 언젠가 연구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교에 들어갈 생각이었죠. 개원했던 이유는 내가 학생을 가르친다면 글로만 배우는 한의학을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적어도 어느 정도 임상경험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개원을 했던 거예요. 그렇게 학교에 연구를 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한의학연구원으로 들어왔어요. 한의학연구원에 들어오고 나서 보니까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연구를 통해서 한의학에 기여하는 게 좋겠다 싶었죠.      


(수달) 원래도 연구를 생각하고 있으셨던 거네요.      

개원을 했을 때도 제 한의원에 맥진기도 있었고 적외선 체열 진단기, 심전도기, 8ch 뇌파기까지 있었어요. 처음부터 정신적인 부분, 육체적인 부분, 한의학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을 다 정량화시키면서 진료를 하려고 한 거죠.     


Q.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화'는 시작의 어머니다

A. 스스로 답답해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요. (웃음)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분명히 이렇게 침을 놓으면 나아야 하는데 환자가 안 낫는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하던 참에 침을 보니까 거꾸로 놓은 걸(*보사) 발견한 거죠. 다시 제대로 놓았더니 환자가 좋아졌죠. 

그 이후에 호기심이 들어서 다시 반대방향으로 침을 놓아봤어요. 당연히 환자에게는 말하지 않고요. 그랬더니 다시 아파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니 제가 하는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점점 높아지게 되었죠. 한 때 침 시술의 원리를 단순 플라시보라든지 혹은 더 급성 통증자극을 통해서 만성 통증 전달을 차단한다는 관문조절이 전부라고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진료경험이 많아지면서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걸 경험했거든요. 한의학 기전을 잘못 설명하고 있는 ‘썰’들에 너무 화가 났어요. 

내가 남이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성격이 못돼요. 그래서 연구를 시작한 것 같아요.  



Q. 요즘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A. 지금 연구에서 주력으로 하는 게 2가지 있어요. 하나는 침 시술용 초음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한의사가 있어요. 그리고 연구원 주력사업은 아니지만 ISO 표준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어요.    

 

ISO 표준: 의료 부항기, 전침용 침 시험방법

Q. 어떤 표준을 만드시고 계신가요?

A. 지금 하고 있는 건 전침기예요. 올해 표준 나오는 건 전침용 침 시험 방법이고, 2017년에 발간한 건 부항(의료용 부항기)이었어요. 이런 표준을 왜 만드는 걸까요? 보통 우리가 쓰는 다른 기술이나 도구들은 웬만하면 표준이 있어요. 그래서 표준화된 기기들은 상호 호환이 가능하죠. 예를 들어, 이쪽 형광등 빼서 다른데 써도 표준규격이니까 맞게 작동해요. 

 규격에는 ‘품질 규격‘도 있어요. 그래서 표준을 준수하면 호환이 되고 무엇보다 최소 품질 보장이 돼요. 예를 들면 침을 멸균해서 쓰는데, 그동안에는 그런 규격이 없어서 공장마다 자체 규격으로 침을 만들었어요. 이제 국제적으로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ISO/KS 규격이 생겼기 때문에 이를 지키면 ISO 마크, KS 마크를 붙일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마크가 붙어있는 건 믿고 살 수 있어요. 그동안엔 규격 자체가 없었어요. 침의 표준규격이 없었죠. 

아직 전침기는 그런 표준규격이 없어요. 전침기는 어떤 성능과 안전성이 보장돼야 하는지에 대한 규격이 없어요. 지금 우리는 저주파 치료기를 쓰는데 여기 규격에 맞춘 전침기를 써요. 저주파치료기는 체외 전극 패치인데, 사실 우리가 쓰는 건 삽입 전극이에요. 그 둘의 표준이 같으면 안 되겠죠? 그런 부분에 대한 안전성 표준을 만들고 있어요.   

   

전침기 표준을 공동개발중인 한,중,일,캐나다 THE LEADER!!!!!!

Q. 그렇다면 전침용 침도 이젠 표준이 있는 건가요?     

A. 더 명확히 말하자면 얼마 전에 발간한 건 전침용 침 시험방법이에요. 전침을 하면 침에 전기가 흐르게 되고, 그럼 전기 부식이 발생해요.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그 전기 부식에 더 강한 제조방식이 있고, 약한 방식이 있어요. 똑같은 전침기를 썼어도 제조 방법이 다르면 어떤 건 더 부식이 많아지고 어떤 건 덜 되죠. 부식 산물에 따라 알레르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비교할 방법이 그동안에 없었어요. 그걸 비교할 수 있는 표준 시험방법을 만든 거예요. 그게 ISO로 발간된 거고요. 이제 여러 회사 침을 나란히 시험을 해보면 어떤 제품은 좀 더 부식이 심하고 어떤 제품은 부식이 덜한 걸 알 수 있죠. 침에 전기 가했을 때 나오는 전기부식산물이 체내에 남으면 독성이 생길 수 있는데 그걸 비교할 수 있는 표준시험법을 만드는 거죠. 이런 시험방법이 없으면 회사들 맘대로 시험해서 ‘이 정도 부식은 괜찮아,’하고 판매할 거고, 쓰는 사람은 그 차이를 잘 모르고 쓰겠죠. 

    

(수달) 그동안 침, 부항에 표준규격이 없었다는 게 놀랍네요.     

ISO 10차 총회 공로패 수상이라니! (감격)

A. 알고 보면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회용 멸균 침을 쓰기 시작한 것도 2005년, 2006년 이쯤이에요. 불과 20년도 안되었어요. 우리가 일회용 부항을 쓰기 시작한 것도 2012년 이후예요. 물론 그 전에도 일회용 부항을 조금씩 쓰긴 했어요. 2012년에 본격적으로 식약처에서 일회용부항을 보험급여 항목으로 인정하면서 보편화된 거예요. 내 돈이 안 들어가니까 다들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 전에는 일회용 부항을 내 돈 주고 사야 했어요. 다회용 부항은 여러 번 쓸 수 있는데, 일회용은 100원씩 손해가 나요.


 알고 보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의료행위가 당연한 게 아니에요. 중간에서 누군가의 치열한 노력에 의해서 발전하고 있어요.     

침 시술용 초음파

Q. 침 시술용 초음파도 표준규격을 만들고 계신 건가요?

2020년에 출시 예정인 '침 시술용 초음파'

A. 네 맞아요. 침 시술용 초음파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침 시술용 초음파는 보급이 되고 나면 나중에는 이런 말들이 당연해질 거예요. “거기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침을 놔?” 제가 김재효 교수님이랑 연구하면서 충격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상완, 구미는 그럴 수 있는데 중완까지도 간이 나와 있는 경우가 꽤 있어요. 실제로 2012년 우리나라 의료사고 케이스 중에 침 맞고 간이 찢어져 죽은 환자가 있었어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을 거예요. 의사가 놓은 침이 대침(大針)이었을 것이고 환자가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라 침 맞는 동안 아마 자세를 바꿨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까지 손상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중완에 대침을 아무 생각 없이 놓기도 하는데 이런 똑같은 사고가 또 터질 수 있다는 거예요. 매년 한의대에서 한, 두 명씩은 견정혈에 침 맞다가 기흉 사고가 나기도 해요. 그냥 재수가 없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에요. 

 

원광대학교 추홍민 선생님께서 이와 관련된 논문을 냈었는데 견정혈을 초음파로 찍어서 보니까 사람들마다 폐까지의 깊이가 랜덤이라는 겁니다. 뚱뚱하다고 깊은 것도 아니고, 말랐다고 깊이가 얕지 않아요. 정말 랜덤인 거죠. 그 말은 정확히 위치를 보고 놔야 정확하다는 거예요. 사람들마다 격차(variation)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거든요. 또 어떤 사람은 목 피부 표면에서 척수까지 2cm도 안 되게 얕은 사람도 있어요. 자칫 잘못해서 찌르면 사람이 죽을 수도 경우인 거죠. 중국 논문을 보면 목부위 독맥혈에 자침후 사망이나 마비 사례가 꽤 나와요 그래서 침을 놓을 때는 영상장비가 꼭 필요해요.     


Q. 침 시술 초음파는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지금 초음파를 못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A. 금지된 건 초음파 ‘진단행위’가 금지된 거예요. 초음파 진단은 영상을 보고 여기에 병변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게 초음파 진단이에요. 그래서 해당 어떤 질환이나 부위에 대한 고도의 지식이 필요하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초음파를 보고 진단하면 불법 의료 행위가 돼요. 근데 혈자리의 해부 특징에 대해선 우리가 전문가예요. 침 놓을 때 초음파 쓰는 건 진단이 아니라 위치를 알기 위한 시술 가이드일 뿐이에요. 그 위치에 혈관이나 신경이 있으면 그걸 고려해서 보다 안전하게 침을 놓겠다는 뜻이죠. 지금도 사실상 써도 돼요. 

 다만 지금 판매되는 초음파 같은 경우는 침 놓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조직은 보이는데 침이 안 보이거든요. 침을 보기가 힘든 게 우리가 얘기하는 ‘초음파’는 너비가 보통 1cm 정도 되는데 실제 그 초음파의 transducer, 즉 진동자가 있는 영역은 1mm보다 아래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1.2-0.8mm 사이. 내가 침을 정확하게 그 1mm 안에 딱 맞춰서 놔야 현재 초음파장비의 화면에 보이는 것이죠. 조금만 틀어져도 안 보여요. 양방에 있는 초음파 니들 가이드 시스템 같은 경우에는 주삿바늘의 위치가 아예 고정돼있어요. 초음파에 주삿바늘 끼우면 딱 진동자 위치로 가도록 고정돼있죠. 그나마 주삿바늘은 굵고 안 흔들려서 초음파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데 침은 그렇지 않아요. 침은 부드러워서 내가 이렇게 꽂는다고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들어가지 않아요. 근육에 조금만 힘주면 알아서 꺾이는 게 침이죠.      


(수달) 그렇다면 지금 침 시술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영상기기는 아직 없는 거네요.     

A. 그래서 한의학연구원에서 만들고 있어요. 올 연말에서 내년 사이에 출시될 예정이에요. 독일의 자기장 니들 가이드  기술을 합쳤어요. 자화된 바늘이 오면 그 주변에 자기장이 달라지는데 그걸 계산해서 침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기술이에요. 침을 자화 시켜서 자기장 추적기능이 있는 초음파 장치(probe) 근처로 가져가면 초음파 화면에 침이 안 보여도 가상으로 침을 그려줘요. 가상 이미지로 여기로 가고 있다고 보여주죠. 2mm 오차 범위 내에서 여기에 있다고 그림을 그려줘요. 그러면 내가 침을 놓기 전부터 어떻게 침이 지나갈지 알려주죠. 그럼 위험한 부위를 피해서 자침할 수 있어요. 

자기장에 따라 파란색 선이 왔다갔다 수시로 바뀐다네요~


Q. 침 한번 놓을 때마다 초음파를 쓰면 안전하긴 하겠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까요?

A. 모든 부위, 특히 별로 위험성 없는 부위까지 초음파 쓸 필요는 없죠. 장기, 목, 신경 있는 부위 이런 곳에만 초음파를 쓰면 돼요. 최근에 “고위험 부위 혈자리 안전 자침 가이드북"책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책도 내고 논문도 계속 쓰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5년 뒤, 10년 뒤면 이런 장비들을 쓰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거예요. 지금 멸균침이나, 일회용 부항을 쓰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하듯이 초음파 없이 위험한 부위에 침을 놓는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때가 올 거예요.      

거기에 10년쯤 더 지나면, 지금은 표면해부학(2차원)을 따라 침을 놓는데 영상을 보다 보면 지금과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사실 우리가 체표를 기준으로 이 부위에 놓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체내에서는 전혀 다른 공간(3차원)에 놓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될 지도 모르죠. 영상을 보다보면, 나중에는 어느 근육과 어느 근육 사이에 걸치게 놔야 혹은 인대결합 부위에 놔야 효과가 있다고 하는 데이터가 하나둘씩 쌓일 거예요. 그땐 지금보다 편하게 초음파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고, 2차원에서 3차원으로 경혈학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Q. 표준화, 부항컵, 전침, 많은 걸 개발하셨는데 표준화 작업 중에 힘들었던 점이 있으셨나요?      

"처음부터 본인이 근거를 다 만들면서 해야 하거든요."

A. 힘든 거는 한의학 연구 쪽에 있는 사람들 심정은 다 비슷할 것 같아요. 뭐 하나 시작하려고 하면 기존에 되어 있는게 워낙 없어서 처음부터 본인이 근거를 다 만들면서 해야 하거든요. 표준화도 한의학쪽으로는 연구된 것이 많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전침기의 안전성을 보기 위해서 이전에 연구했던 침의 부식 연구를 찾아보는데, 연구했던 사람이 없진 않지만 내가 원하는 정도가 아닌 거예요. 그럼 처음부터 다시 다 해야 하는거죠. 물론 힘든 건 이게 다가 아니에요 치료기술을 개발하거나, 뭔가 멋진 과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연구에 비하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는 일이다보니 연구비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있죠.    

  

Q. 맥진기, 설진기도 표준이 지금 있나요?      

A. 맥진기, 설진기 둘 다 아마 올해 연말쯤 나올 거예요. 현재 개발 중에 있어요. 하지만 일반 한의사들은 표준이 나온다 하더라도 사실 체감을 못할 거예요. 그 표준이 적용된 맥진기가 나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쓰는 거죠, 다만 그전에는 이런 맥진기, 저런 맥진기가 품질에 상관없이 다 팔렸는데 ISO 표준에 의거한 맥진기가 나오면 적어도 어느 정도 퀄리티 이상의 맥진기만 팔리게 되니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맥진기가 좋아졌네 싶죠. 그런데 사실 그 정도도 잘 못 느낄 거예요.   

  

Q. 맥진기(설진기)에 관심이 많아요. 맥진기가 우리가 보는 맥과 많이 다른가요?      

A. 일단 무조건 달라요. 다르지만 얘는 얘대로 쟤는 쟤대로 가치가 있어요. 우리가 고전적인 방식을 다시 구현해내야 한다고 반드시 그 방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고전에서 보고자 했던 것만 알면 돼요. 예를 들어 설진에서 보고자 했던 걸 현재 더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걸 사용하면 돼요. 만약 고전에서 소변의 붉은 기를 보고자 한 게 적혈구를 보고자 한 거면 적혈구 색을 보면 돼요. 굳이 색도계를 재면서 얼마나 붉은지를 볼 필요는 없다는 거죠.      


Q. 그렇다면 실제 사람이 맥을 보는 것과 맥진기를 사용하는 것 사이 얼마나 유사성이 있나요?     

손끝으로 느낀다! 세심하게, 정확하게!

A. 센서에 대한 교육을 우리가 학교다닐 때 받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질문하게 되는 데요 간단히 비유하자면 눈으로 보는 거랑 카메라로 포착하는 것은 아주 비슷한 것 같지만 결국은 달라요. 그거랑 비슷해요. 우리는 뇌가 알아서 다 보정을 해주는데, 카메라는 색깔을 다 보정을 해야 해요. 눈은 그럴 필요가 없죠. 이런 과정이 기계는 반드시 필요해요.      

사람 손에 있는 센서를 기계 안에 그대로 박아 넣을 수가 없어요. 손이 너무 정교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 맥진기 표준에는 단 채널, 다채널 여러 가지가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맥을 볼 때 맥의 너비를 보려면 적어도 가로 방향으로 3개의 센서가 필요하죠. 맥의 길이를 보려면 세로방향으로도 최소 3개의 센서가 필요하겠죠? 사실 우리가 맥을 볼 때 굉장히 다양한 상태를 봐요. 혈액의 양, 혈액의 점도, 혈관의 긴장도, 심장의 1회 박출량, 펌핑 타입 등등 다양한 것들을 알 수 있어요.      


Q. 그럼 센서가 정말 많이 필요하겠네요?     

A. 그렇죠.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감안하는 센서를 만든다는 건 사실 힘들어요. 사람 손이 워낙 뛰어나서 다양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지금 맥진기가 할 수 있는 건 속도, 너비, 길이 정도예요. 그리고 다채널 센서로 움직임정도 알아볼 수도 있죠. 123번 센서가 순서대로 따다닥 하고 뛰는지 혹은 동시에 탁하고 뛰는지 그런 것들을 조합을 통해 찾아낼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맥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주파수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분석해서 여러 가지 지표를 뽑아낼 수 있어요.    

  

고전에서 말하는 28맥은 뭐냐면 내가 만졌을 때 느낌을 가장 비슷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가져온 거예요. 이거는 모래알, 이거는 구슬, 이거는 활줄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런 묘사는 사람 손 감각일 때의 묘사인 것이에요. 센서 입장에서는 이 묘사대로 하는 게 맞을 때도 있겠지만 안 맞을 때도 있어요. 맥진기가 볼 수 있는 것이 맥의 전부는 아니에요. 안 맞을 수도 있죠.      

엑스레이가 있기 전에 사람들이 뭐를 했냐면 도수검사를 했어요. 두드려보고 움직여보게 해서 골절이 있는지 없는지 봤는데 요즘은 엑스레이로 보죠. 엑스레이가 청진기나 도수검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냐 하면 그렇진 않잖아요. 그 둘은 그냥 다른 거예요. 하지만 엑스레이가 주는 정보는 일단 일정하고, 사람의 실력하고 무관하죠. 그리고 기록이 되어있으니까 데이터화가 될 수 있는 거죠.     

 

지금 우리가 만드는 맥진기의 필요성은 한의사가 손으로 하는 맥진을 100구현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맥에 대한 매개변수(parameter)를 정량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옛날 도수검사에서 못 보던 걸 엑스레이에서 볼 수 있듯이 손으로 느낄 때 못 보던 거를 맥진기가 보여줄 수도 있어요. 그 둘은 어느 정도의 영역을 공유하는 것이지 같은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인공지능한의사 과제‘에서 하고 있는 밑 작업 중 하나가 한의학에서 측정하고 있던 생체신호들을 물리량이라는 대리지표로 바꾸는 과정이에요. 그래야 데이터가 되거든요. 숫자로 바꿔야 데이터가 돼요.     


Q. 현재 데이터가 지금 많이 모여 있나요? 아니면 모으기 위한 과정인가요?     

A. 모으기 위한 약속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서 소변색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소변의 노란색을 결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로빌린(urobilin)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비타민 b를 먹어도 소변이 노래져요. 그러면 소변의 색으로 무언가 판단하려면 검사하는 사람은 소변 색에서 비타민b는 배제해야 하거든요. 

그러면 이 때 눈으로 보는 게 정확한가요? 아니면 뇨화학검사가 정확할까요? 검사가 더 정확한 거죠. 더 이상 소변 색이 노랗냐고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비타민b 영양제가 없었으니까 상관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비타민b 때문에 데이터가 가려지는 거죠그럼 그걸 거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러니까 고전을 존중하되, 고전에 있는 것을 현대적으로 검증할 필요는 있는 거죠.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저는 너무 현대의학 중심으로 한의학을 해석하는 것은 안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 걸로는 진짜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다만 그것을 최대한 정량화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도구를 쓰는 것뿐이죠. 현대적인 연구 방법론을 통해서 한의학이 가진 가치를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거를 가치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거라 생각해요.


*<이상훈 박사님 2편: 인공지능 AI 한의사 과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다음 편으로!

https://brunch.co.kr/@mannadream4u/40 




Interviewer. 수달, 호랑이

Recorder. 수달, 호랑이, 고양이

Writer.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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