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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Mar 29. 2022

교사에서 한의학 교육실로, 한상윤 교수님 (2탄)

한의학교육실 최초의 전임교원, 한의대 교육을 말하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Q. 한의대 교육을 하면서 뿌듯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까진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뿌듯함을 기대하는 순간이 많아요. 앞으로 할 일이 많고 변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에서 배운 가장 큰 부분은, 어쩌면 모호할 수 있는 교육학적 이론들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이론의 도입, 적용을 통해, 그 효과가 확실히 구별되도록 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을 찾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한의학에는 많아요.            

제가 한의학 교육을 하는 이유는 후배들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의료행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더 나은 임상역량을 가지고 졸업해서 자신있게 한의사로 활동하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의대 교육과정을 무조건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고 우리의 특수성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의대 교육과정만 모방하는 게 아닌, 한의대만의 자체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한다면 무엇이 관건이 될까요?  

세계적으로 의학교육의 추세는 임상 역량의 강화예요. 양방에서는 역량중심 교육과정이 이미 많이 퍼져있어요.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했는데, 한의계는 그런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2023년부터는 국시도 CBT로 바뀌어요. 이를 대비해서 의학계에서는 10년 이상 연구해왔고, 부작용 최소화, 완충작용을 하면서 이뤄낸 변화예요. 한의계는 너무 단기간에 변화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예요. 시대적 상황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마음이 급해서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조급하게 양방 쪽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를 평가하지 말고 소통을 해야 해요.     

교육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에요. 기존 교수님, 기존 방식이 잘못되었더라도 그들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 의견들을 존중하면서 소통해야 하고, 교육의 한 축인 학생들과도 소통해야 하죠. 지금의 교육과정 심의위원회(교심위) 같은 곳에도 학생들이 많이 참여해야 하고, 학생 위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하죠. 단적인 예로, 어떤 교수님한테 찍혀서 성적이 안 나온다 이런 비상식적인 얘기가 나와서는 안돼요. 평가에는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해주어야 합니다.    

      

교육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교육과정 개편에는 두 가지 진리가 있어요. 1) 언제나 저항이 뒤따른다. 2) 언제나 예산이 부족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개편은 의미가 없어요. 누군가는 불만과 반발이 있는데, 부작용 완충을 위한 시간과 노력의 여유가 있어야 해요. WFME 기준으로 한의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국내 의대도 그 기준을 맞추려고 허덕여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의 정체성, 특수성을 지키면서 교육의 방법을 찾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일정 부분 의대의 시스템을 차용하는 거죠. 지필고사 형태의 죽은 지식보다는 임상 역량을 강화해서 실제 환자가 호소할 때 어떻게 변증하고 티칭 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학교 교육만으로 독자 진료가 가능해야 하죠. 그런면에서 임상술기교육 OSCE, CPX 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개선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Q. 한의대 내 교육과정 개편에서 가져야 할 방향성은 뭐가 있을까요?     

현재 건강보험재정 95% 이상이 양방이고 한의계는 그 5% 내에서 서로 갈등하고 있어요. 파이를 키워야 해요. 남학생들은 물리치료사도 아닌데 졸업 이후 다들 추나를 익혀요. 이것도 좋지만, 내과질환이 무너지면 의학으로서 의미가 없어요. 학생들은 약 처방해 본 경험이 없으니 졸업후에도 약 쓰는 것이 두려워서 처방을 못하죠. 일부 사례일 수 있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임상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그만큼 교육을 잘해야 해요. 임상교육을 더 강화해야 되고, 졸업을 했다면 환자 보는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거죠. 한의계를 지배하고 있는 패배주의. 저는 이걸 배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의대를 못 가서 한의대에 왔다는 학생들도 많지만 이 학문이 질병 치료에 있어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학문이라는 걸 알면 좋겠어요.   

   

Q. 현재 한의학 교육에서 잘 이뤄지고 있는 점이 있다면?     

예전에 경희대 한의학관에 갔을 때, 교육심의위원회 회의 결과를 화장실에 붙여놓은걸 보고 인상적이었어요. 이렇게 공지를 해줘야 해요.  역량중심 교육과정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젠 적어도 명칭이 익숙하게는 됐잖아요. 이렇게 조금씩 인식 확산이 되고 있는 게 잘되고 있어요. 뭔가 개선하고 학생 위주로 나아가려는 조짐이 보여요. 근데 아직 학교별로 차이가 있어서 화두를 자꾸 던져야 해요. 학생들이 학생 입장을 자꾸 제기해야 되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통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제도도 소통 없이는 반발만 따를 뿐. 예산이 부족하고 반발이 많지만 이를 이겨내고 하려면 소통이 필수적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라는 칼럼을 연재하다가 요즘은 못하고 있는데,  이제 학교도 갔으니까 한의대 현장에서 느낀 것을 원고로 쓰려고 마음은 먹고 있어요. 중간고사도 끝났으니까 여유 있을 때 다시 써봐야겠어요.    

       

Q. 칼럼에서 읽은 ‘교육은 좌절이다’라는 말이 매우 인상 깊고, 공감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겪으신 좌절이 있었다면 어떠했는지, 지나간 일이라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좌절의 연속이었어요.  교육은 좌절할 수밖에 없어요. 열을 가르친다고 열을 다 흡수하는 게 아니니 효율을 높이려고 애쓰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좌절을 느끼는 것은 곧 극복할 힘이 있다는 거예요. 좌절을 보지 못하는 게 진짜 문제이지, 좌절을 느끼는 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니 같이 손잡고 개선시키면 돼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의견을 구하고 나 자신도 반성하고 그러면서 좌절을 극복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완전한 극복이란게 있을까 싶네요. 교육 개혁에 의지를 가진 분들이 각 학교에 한둘씩이라도 퍼져있다면 교육 현실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각오로 제가 속한 학교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고, 여러분도 충분히 저의 손을 잡아주시면 좋겠어요. 대만드 활동 자체도 상당히 진취적이에요. 한의계는 좁으니,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을 거예요.                          


Q. 교수님이 개원의이던 시절 얘기도 궁금합니다!     

처음 개원했을 때는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지만 환자가 하루에 한 두 명 왔어요. 적자였지만 저는 치료율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이었고 제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으로만 한번 해보자는 각오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임상강의도 듣지 않고 오로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 수준으로 한의원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치료가 잘 됐어요. 물론 학부생 때 한의학 관련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있어요. 그렇게 저는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학생 때부터 공부도 많이 하고 처방도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다른 사교육 없이 임상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원 생활도 경험했지만, 학교로 온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학교에 많이 남으시면 좋겠어요. 물론 개원보다 돈은 안 되겠지만 또 바꿔서 생각하면 개원은 면허 한 장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Q. 의대에서 포닥을 하면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고, 어려운 점이 있으셨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의사 중 지금 의대에서 박사과정이나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의학 교육학 쪽은 별로 없지만요. 의학교육학의 특성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다른 전공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어느 학교나 의학교육학 교실은 MD와 non-MD가 있고, 두 집단의 비중의 차이는 학교별로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그래도 의학교육학은 non-MD가 속해있어서 한의학 등 다른 학문을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우호적인 분위기가 좋았어요.      

당시 제가 했던 일은, 서울대 병원 전공의 교육과정 개편 작업을 했어요. 전공의 교육과정을 바꾸고, 외래진료는 몇 시간 하게 하고, 논문 연구는 어떻게 시키고, 어떤 전문의를 양성할 것인가 연구하는 거죠. 저는 여기에 박수를 보냈어요. 제 주변 수련의하는 사람들도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부러워하죠. 6년제 한의대 교육과정도 바뀌어야 하지만, 병원 수련과정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부산대에서 교육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 교육을 하는 교수님으로 바뀌게 되셨는데,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요?     

받는 입장에서 하는 입장이 되니까 어떻게 교육하면 전달이 더 잘되겠다 하는 게 느껴져요. 받는 입장에서는 학교 내 제도나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고, 받은 후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평가를 할 수만 있었죠. 그런데 이제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에 참여하다 보니 아 이건 바꾸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어렵구나, 이건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바꿀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대전대는 학장님과 모든 교수님들이 저한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셔서 활동하기 수월해요. 그런데 보수적인 교수님이나 그런 학풍이 지배적이라면 쉽지 않을 거예요.           

사실 교수님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인식을 바꾸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을 받을 때는 단순히 호불호만 있었다면,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책임자가 되고 나니 이건 좀 빨리 해야겠다, 이건 나중에는 꼭 해야 한다 이렇게 단계를 나누게 돼요.    

            

Q.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가자!’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반성이나 확인없이 정체된 상태로 오랫동안 한의학교육이 이뤄져왔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자 발전하자는 의도로 한마디 ‘가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네요. 그래서 ‘가자!’는 한의계 전체에 던지고 싶어요.   

       

Q. 학생들이 한의학 교육의 수요자로서 가져야 할 생각과 태도가 있을까요?     

두 가지예요. 지금의 교육이 내 의술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비판적인 수용, 그리고 자부심과 자신감. 현재에는 의료의 제한이 있지만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우리가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너무 많아요. 의학은 실용학문이고, 그래서 임상이 우선돼야 해요.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아무 근거 없는 치료법도 임상에서 결과를 보이면 유효해요. 한의학은 임상적으로 뛰어난 성과가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한의학 공부를 하세요. 동시에 비판적으로 수용하세요. 이것보다 더 나은 제도, 시스템을 고안할 수 없는지. 어떻게 최대한의 실력을 쌓을지. 보통 무감각해져서 고민을 안 하는데, 비판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면 좋을 사람을 추천해주세요!     

대만드에서 출판한 책을 읽어봤는데 상당히 다양하게 만나봤더라고요.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분은 조성준 한의사님이에요. 강남에서 화상전문 진료를 하고 계시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화상을 침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한의계 영역을 개척한 거고요. 이 외에도 학교에 계신 분 중에 뛰어난 성과나 남다른 마인드를 가진 분이 계신다면 만나보면 좋겠어요. 임상분야보다는 기초, 연구 쪽에 조명을 비춰주는 것도 대만드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이 대만드가 아니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분들일 테니까요.                 


Q. 앞으로의 행보와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한의전 들어가고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너무 바쁘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학생들 교육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 더 바빠질 것이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꼭 행복한 한의사의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저는 제가 있는 곳에서 여러분들이 더 자신 있고 활발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역할 하겠습니다. 어디다 내놔도, 양방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한의학교육 체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교육이 잘 안 돼서 못한다 이런 소리 안 듣도록 한의학교육 개선하는데에 앞장서겠습니다.         


            

한의대를 다니면서 한번쯤은 학교에서의 교육에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열심히 강의해주시는 교수님들께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인터뷰 내내 학의학 교육과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 내주시고 값진 인터뷰를 해주신 한상윤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Interviewer. 거북이, 참새, 용

Writer. 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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