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나를 탐탁지 않아하셨던 이유

2014년 7월 1일. 파리. 프랑스

by 김정배

파리의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주머니가 조선족 출신이셔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주머니께서는 우리가 입실한 첫날부터 나의 존재에 대해 매우 궁금하셨다고 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머슴아처럼 생긴 애가 머리카락은 여자처럼 한쪽만 길게 길러서는, 바지는 하얀색 전통 민복 바지를 입고 게스트 하우스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아주머니께서는 내 손에 쥐어진 소고를 보시고는, 처음에는 내가 여행사 가이드인 줄 아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번에 두 번째로 나를 보셨을 때에는, 내가 머리끈으로 뒷머리를 묶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는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인지 아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젯밤, 우리 방의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나의 색동 더거리와 삼색띠를 보시고서는 그제야 비로소, 나의 존재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드셨다고 고백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살며시 귓속말로 말씀하시기를, 혹시 내가 한국에서 무당을 하다 오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자처럼 긴 머리며, 하얀색 통 큰 바지며, 원색의 빨강, 파랑, 노랑 띠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하하하.


“아주머니, 무당이라니요. 저는 무당이 아니고, 풍물패예요, 풍물패. 대학교 때 꽹과리 쳤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풍물패라는 단어도 꽹과리, 장구, 소고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다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어 나의 예전 버스킹 영상들을 보여드리자, “키햐, 니 춤 억수로 잘 추네, 니 무용수가?”라고 말씀하시며 박수를 치셨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머리로 돌리고 있는 상모를 제일 신기해하셨다.


어렸을 때에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면, 다 우리나라 사람, 대한민국 사람인지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조금씩 그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얼굴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 나처럼 한국말을 한다고 해서 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처럼 동양인의 얼굴을 했어도, 그 안은 미국인인 사람도 있었고, 언어로는 한국말을 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언어만 닮아있을 뿐, 서로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만한 어떤 문화적인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조선족 아주머니와의 관계도 그러하였다.


아주머니께서 지금껏 나를 무당으로 오해하셨다고 하니, 아주머니께서 그동안 나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신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주머니께서 나의 채상과 민복을 알아주지 못하셔도 크게 서운하거나 실망스럽지는 않다. 조선족이신 아주머니께서 우리 한국의 문화에 대해 몰라 주시는 것에 대해 크게 원망하거나 아쉽지는 않다. 반대로 말하면, 나 역시 조선족으로 살아오셨을 아주머니의 인생과 생활, 문화 등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니까. 나 역시 그분께 공감하고 공유할 만한 어떠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니까.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의 혹독했던 일제 강점 시대에, 먹고살기 위해, 혹은 항일 독립운동의 투쟁을 위해, 혹은 강제 이주, 강제 동원 등에 의해, 만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그 먼 타국에서 핍박받고 차별받고, 온갖 서러움과 모욕을 다 받았을 우리의 핏줄들이 끝내는 모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조선족,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이, 이렇게 남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꽹과리, 장구라는 단어마저도 함께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