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by 김정배

나의 공연을 그냥 지나쳐 걷는, 어른들을 붙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공연을 그냥 지나쳐 걷는, 부모님들을 붙잡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아이들과 눈을 한번 쓰윽 마주치고, 상모를 한 바퀴 쓰윽 돌려주면 된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걷던 아이는 나의 상모를 보는 순간, 열에 아홉은 제자리에 걸음을 멈춘다. <나는 지금 이 사람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음>을 몸으로, 행동으로, 비언어적 수단으로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멈춤에, 그들의 부모는 그제서야 길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나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런 걸 보면, 소설 <어린 왕자> 속,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라는 문장은 참 시기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어린아이들 뿐이다. 어른들에게 차창 밖의 풍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바쁘게 지나가는 여정의 잔상에 불과할 테다.


아이들의 눈에는 나의 채상이 그저 신기해 보이기만 하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내 채상을 쓰고 스스로 돌려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자신도 이 모자를 쓰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그들의 부모는 때로는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들을 달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으니, 때로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한다고 그들의 부모는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내 상모를 기꺼이 벗어주는 편이다. 하다 못해 내 소고라도 그들 손에 꼬옥 쥐어주는 편이다. 이렇게라도 그들의 도전과 쟁취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일 따름이다.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 기꺼이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어른이 과연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하물며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나 조차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나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손을 들고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들이 부럽고, 또 대견스럽다.


호주와 유럽의 거리에서 상모를 돌리고 돌아와, 한국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7년째! 나는 요즘 인스타에 그림을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이 되고 싶은 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림으로도 인정받고 싶고, 글로도 인정받고 싶다. 물론, 나의 그림책으로도 인정을 받고 싶다. 나는 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취업이 되면, 서른이 되면, 그래서 회사에서 대리를 달면, 나의 삶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보다 더 구체적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나의 꿈을 자꾸만 낮추게 된다. 어른이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닐뿐더러,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이니까.


정배 씨는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어떤 회사 사람 이야기에, 말없는 눈물 한 줄기만이 내 볼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렸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다.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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