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같은 사람

온새미학교 친구들과 공연을 함께 하며

by 김정배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였다. 학원에서, 과외에서, 그리고 대학생 멘토링 수업에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고, 그 꿈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대리만족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이 호밀밭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나의 고향, 금산의 어린 친구들이 더 큰 세상인 서울을 궁금해하면 언제라도 서울에 초대하여 서울을 보여주었다. 서울대든, 동국대든, 홍익대든 그 친구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가 있으면, 기꺼이 대학 탐방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들의 학원 선생님, 과외 선생님이기에 앞서, 그들의 인생 멘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자 친구는, 어쩌면 자신보다도 내가 학교라는 조직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어투는 가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칭찬으로 하여, 아이들의 꿈과 성취동기를 북돋아 줘야 하는데, 본인도 아직까지 칭찬에는 많이 서툰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그들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보다는 현실적인 조언과 지적을 할 때가 더 많더라는 것이다. 자신도 오랜 수험 생활을 하였기에, 자신의 꿈을 믿어주고 함께 응원해 주는 이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 지를 잘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고 하였다.


부산 온새미학교의 고등학생 친구들을 인사동에서 만난 것은 2016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 7시쯤에 안국역에 도착하여, 버스킹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인사동 안쪽 저만치에서 갑자기 풍물패의 공연 소리가 들리었다. 한 15분가량 큰 소리로 꽹과리와 북, 징, 장구 소리가 들리다가 그치기에 어느 한 풍물패의 짧은 길놀이 정도로 여기고는 나의 버스킹 공연을 마저 이어 나갔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아까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풍물패의 판굿 소리가 들리었다. 아무래도 남인사마당에서부터 북인사마당에 이르는 그 길을 주욱 따라 올라오며 게릴라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한 20분이나 지났을까, 내 앞을 지나가는 열댓 명의 어린 풍물패 친구들을 만났다. 바로 온새미학교의 고등학생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팝송에 맞추어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신기해하였다. 그들에게 나의 유럽 여행 사진앨범을 보여주며, 나는 호주와 유럽에서 거리 공연을 하였고, 지금은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인사동에서 공연을 하는 30대 회사원이라고 나를 소개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반가운 기색으로, 자신들 역시 내년 여름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날 것이며, 그 여행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오늘 새벽 첫차를 타고 부산에서 이곳 서울까지 올라왔다고 하였다. 인사동에는 점심 조금 넘어 도착하여 지금까지 몇 차례 게릴라 공연 중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유럽에서 거리 공연을 하며 여행하기에 앞서, 이곳 인사동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싶었고, 또 이 분들의 후원금을 통해 내년 여름의 유럽 여행 경비에 보태고 싶다고 하였다.


풍물놀이로 이미 유럽 여행을 다녀온 자와, 앞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올 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지 않을래야 끌리지 않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누가 먼저 제안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함께 공연하기를 원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상모를 돌리기를 원했다. 그들도, 나도, 서로가 그동안 연습하고 공연한 판굿은 달랐지만, 그래도 재미난 공연이 될 것 같았다. (판굿은 크게 좌도와 우도로 나뉜다. 그리고 정읍 우도, 이리 우도, 곡성 좌도, 금산 좌도 등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가락의 연주법을 갖고 있다.)


그들의 선반(춤 동작)은, 내가 알고 있는 정읍 우도의 선반과 확실히 달랐다. 그래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하기 전까지 동아리 정기 공연만 1년에 3차례씩, 못해도 9번은 뛰었었기에, 백전노장(?!)의 노련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과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 관객석의 아주머니도 무대 위로 모셔오고, 구경하던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슬며시 소고를 쥐어 주었다. (지난 영상을 다시 보니, 판굿을 이끌던 상쇠 친구가 나로 인해 생겨난 변수들로 인해 제법 많이 당황했을 것 같다. 하하하하)


그들과의 갑작스러운 합동 공연을 마치고, 나 역시 그들의 후원 모금함에 마음을 전했다. 다 같이 모여 우리를 응원해 주신 관객분들과도 사진을 찍었고, 외국인 관광객 친구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은 채 헤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그들은 이듬해 여름, 악기를 들고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페이스북의 피드를 통해, 체코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의 공연 소식들이 전해져 올 때마다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꽹과리와 장구를 치며, 유럽을 여행하는 친구들이라니, 참 멋있고 부러웠다. 하하하하. (이 포인트에서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온새미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들의 젊음과 청춘을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2학년 여름방학의 유럽 여행을 위해, 그들은 1년간 악기도 열심히 연습하고, 여행을 위한 여러 가지 공부와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간의 준비과정과 여행 동안 느끼었던 감정과 생각들은 하나의 문집으로 묶어 세상에 내보인다. 나는 스물일곱,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겨우 만나게 된 세계를, 열일곱, 열여덟의 나이에 만나게 된 그들은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재미있고, 신나게 보였었을까? 온새미, 그 친구들의 뜨거운 젊음과 청춘에, 그리고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나 역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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