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남보다 더 나아야 안심하는 것일까?

by 김정배

“왜 우리는 남보다 더 나아야 안심할까요?

우리는 왜 존경받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나요?

허풍쟁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칭찬만을 원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기에, 자신이 가장 옷을 잘 입은 사람이기를 바라며, 가장 부자이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기를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서수영 작가님의 저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다> 중


제가 처음으로 몸을 담았던 회사의, 아파트형 기숙사에는 관리직 이사님이 함께 살고 계셨었어요. 회사 직원들이 자신을 가장 대단한 사람으로 알아봐 주기를 바라셨던 이사님은 모든 대화의 시작을, “이사가 말이야” , “이 이사는 말이야”로 시작하셨어요. 기숙사는 회사가 아니니, 이곳 기숙사에서만큼은 자신을 동네 형처럼 편하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사님은 저희가 편히 쉬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동네 동생들 대하듯 너무 편하게(?!) 대해 주셨죠.

“OO야, 기타는 배워서 뭐하냐? 이 이사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기타라도 꺼내지. 크으~ 이 이사가 옛날에 기타 들고 기차 타면 사람 몇 명 죽어나갔다.”

“OO는 좋은 대학 나오면 뭐하냐? 술도 못 마시고, 그렇게 붙임성이 없는데...... 이 이사는 말이야 군대 있을 때부터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 회사 생활도 그렇고, 사회생활도 그렇고, 딱 이 이사처럼만 해. 알겠어?”

“어떻게...... 오늘 이 이사가 기분이 좀 안 좋은데, 편의점에서 컵라면 좀 사다가 소주 좀 마실까?”


그때는 마치 회사를 퇴근하고 나서도, 회사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자기 자랑이 취미이셨던 이사님을 위해, 저는 늘 손뼉을 치고, 박수를 치며 이사님을 찬미하였어요. 소설 속 어린 왕자가 허영쟁이에게 박수를 보내듯 말이지요. 사회생활이 뭐 별 거 있나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도, “네, 맞습니다, 이사님. 이사님 말씀이 무조건 맞습니다.”하며 굽신굽신 거리는 거지요. 다만,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그 자리가, 그 당시의 저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지요.


저는 기숙사 생활에 지쳐 자취를 시작했고, 그 이사님께서는 그로부터 일 이년 뒤에, 자신의 직책을 잃고 회사를 떠나게 되셨어요. <이사>라는 직함도 잃으셨죠. 그럼에도 가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여전히 “이 이사가”, “이 이사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대화들을 꺼내셨어요. 어쩌면 그분은 <이사>라는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저에게서 <이사님>이라는 단어를 듣고 싶어 하셨을지도 몰라요. 물론, 제가 그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면, 그분의 직함과 소재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분을 진심으로 이사님이라고 불러 드렸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분의 성격을 잘 알아요. “나는 회사의 이사, 너는 회사의 말단 사원!” 그곳에서 오는 우월감으로 이제껏 인생을 살아오셨던 분이셨으니까요. 우리는 왜 남보다 더 나아야 안심할까요?


허풍쟁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칭찬만을 원해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기에, 저 역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해요. 다른 분들이 저를 먼저 알아봐 주기를 바라기 전에, 제가 먼저 다른 분들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요.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귀를 기울이고, 상대를 위해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어 준다는 이야기니까요.


이사님께서는 저희에게 자신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애초에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었어요. 이사님께서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저희를 편하게 대하고 싶으셨던 거였으니까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친구는 없어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사실 친구가 아닐 거예요. 저는 친구 같은 선배, 친구 같은 선임, 친구 같은 형, 친구 같은 오빠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들 때마다, 어느 소설책의 한 구절을 떠올린답니다.

“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 분명해. 하지만 왕이나, 허영장이, 사업가나, 술꾼만큼은 어리석지 않아. 왜냐하면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은 어떤 뜻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가 가로등을 켜는 것은 인생에 별 하나를 더 빛나게 한다든지, 꽃을 하나 갖다 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거야. 그건 매우 아름다운 일이지. 그리고 아름답기 때문에 정말로 쓸모 있는 일인 거야.”


우리는 왜 남보다 더 나아야 안심할까요?

우리는 왜 존경받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나요?

사는 게 외로워서?

사는 게 참으로 삭막하고, 각박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