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에게 길들여지고 싶다

프랑스어 단어 appriviser에 대하여

by 김정배


서수영 작가님 덕분에 appriviser라는 프랑스어 단어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여 본다.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이 단어에는 아래와 같은 여러 뜻이 담겨 있다.


*타동사

1. (짐승, 새를) 길들이다.

2. (사람을) 순하게 만들다. 제 편에 끌어들이다. 손아귀에 넣다.

3. (현기증, 감정 따위를) 가라앉히다. 누그러뜨리다. 제어하다.


*자동사

1. 길들다.

2. 순해지다.

3. 친해지다. 익숙해지다.


Appriviser.

이 단어는 “길들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길들다”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 역설적인(상반된) 두 가지의 뜻처럼이나,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곧 나 역시 “그에게 길들여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수영 작가님께서는 나에게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작가님께서는 appriviser라는 단어가 voir(보다)라는 단어와 apprendre(배우다)라는 단어의 합성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셨다. 그래, 어쩌면 “길들다, 길들인다”라는 단어는 “보는 법을 배운다.”라는 문장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보는 법을 배운다!”

참으로 멋있는 말이다.

“그 사람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의 마음에 길들여지는 제일 간단하면서도 제일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단언컨대, 오늘날의 우리는 이분법과 단순화의 논리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타자는 둘로 단순화된다. 좋은 놈 아니면 나쁜 놈, 착한 놈 아니면 나쁜 놈,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 나에게 돈이 되는 사람 아니면 나에게 돈이 안 되는 사람.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다. 니체는 차이를 긍정하며, 이분법적 사고와 단순화의 논리를 공격한다. 니체는 그가 가진 천 개의 눈을 통해, 이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나 도덕의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다양한 삶의 길들을 제시한다. 그는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이 단순화의 폭력을 행사할 때에도, 그는 차이와 다름, 다양성의 가치를 긍정하며, 저기 저편에서 위버멘쉬(초인)처럼 춤을 추고 노래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코 이분법과 단순화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그는 주장한다.


프레드리히 니체!

그는 천 개의 얼굴과 천 개의 가면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가진 천 개의 눈으로 천 개의 길을 본다. 나는 어린 왕자가 가진, 어린아이와 같은 그 시선이 니체의 그 시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편견 없는, 선입견 없는 그 시선은 모든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에 열려 있다.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의 새로운 시선을 가지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법을 배우기에 힘든 점이 없다.


나는 당신이 이 세상을 바라보듯, 당신과 똑같은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당신처럼 보고, 당신처럼 듣고, 당신처럼 말하며, 당신처럼 느끼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길들여지고 싶다. 그러니 제발 나를 길들여 달라.


Please, tame me.

나는 그대에게 길들여지고 싶다.

그리하여 appriviser라는 프랑스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여 본다. 나는 당신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 나는 당신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