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삶, 정착하는 삶에 대하여
“안녕. 사람들은 어디 있니?”
“사람들? 사람들이라면 예닐곱 정도 있기는 한가 봐. 몇 해 전에 보기는 했지만 어디를 가냐 만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바람이 그들을 데려가거든.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서 사는 게 아주 힘들 거야.”
- 소설 <어린 왕자> 중, 일부 발췌.
뿌리내리는 삶, 정착하는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어린 왕자의 별은 생물이 뿌리내리기에 너무나 작다. 고작 한 송이의 장미만 가까스로 뿌리를 내렸을 뿐이다. 세 그루의 바오밥나무가 뿌리를 내리에는 턱 없이 작은 별이다. 말하자면, 어떠한 생물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삶의 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나의 전공과목인 노동경제학 수업시간이었다. (물론 지금의 경제 상황이 더 좋지 않지만) 2013년 그 당시의 국내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죽겠다는데,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없어서 죽을 상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오늘은 전공 수업의 진도를 나가는 대신, 취업 시장의 미스매치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기업과 취업 준비생 간의 서로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이러한 미스매치의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국가이므로, 다른 나라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 인력을 더 투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더욱 큰 경제성장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회사다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뿐인데, 우리나라에는 질 좋은 회사가 많지가 않고, 매년 과잉 학력, 오버 스펙의 취준생은 양산된다.”
“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계의 연구와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조용히 필기나 하면서 수업이나 듣고 있었을 나였을 텐데, 그날은 대체 무슨 용기로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의견을 피력했는지 모르겠다.
“자국민의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일본에서는 일본 자신들의 국내 경제만으로도 자급자족, 자립경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자국민의 인구가 겨우 5천만 명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일본과 같은 자립 경제를 실현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구직자가 현실의 중소기업의 복지 실정에 만족할 수 없다면, 그리하여 그 기업들과 자신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면, 우리의 고개를 돌려 다른 취업 시장을 두드리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쏟아져 나오고 있는 4년제 대학교의 졸업생들을 국내의 취업 시장에서 미처 품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우리 취준생의 대학생들 먼저 취업의 시야를 넓혀 세계의 취업 시장을 노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도 예외 없이 국내 취업 시장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였다. 나는 지난 전공수업에서의 발언에 책임이라도 지듯, 해외로 눈을 돌렸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그 당시의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하셨던 어느 대국민 발언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진출을 해보라. 대한민국 청년들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발언도 결국에는, 2년 전의 내가 수업시간에 발표한 발언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발언에 숨이 턱 막히고, 희망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비록 빈말일지더라도, 제가 이 나라의 경제를 살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우리 땅에서 배부르게 먹고 자며 만족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현재는 2022년. 내가 대학을 졸업한 2013년으로부터도 10년이 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시장 경제는 10년 전보다도 더 꽁꽁 얼어붙었고, 국내의 취업시장은 그보다도 더 꽁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해외 취업 시장으로의 도전은커녕, 해외로의 단기 어학연수도, 워킹홀리데이도, 유럽 배낭여행도 모두가 불가능해졌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은 여전하기만 한데, 꽁꽁 얼어붙은 취업 시장은 좀처럼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생활도 어느덧 10년 차인 나도 그렇게 조금씩 기성세대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한 일원으로서, 다음 세대 친구들에게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친구들을 위하여 내가 감히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 한 입 먹고살기도 바빠 그 친구들의 안위까지 걱정할 여유도, 여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 그들을 위한 행동까지는 못 하더라도, 어디 생각뿐이더라도, 아니, 어디 마음뿐이더라도, 다음 세대와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지금 매우 목이 마르다고 하여,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땅에 물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갈 미래의 그 땅에는 분명 아무것도 자라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은 뿌리가 없어 늘 바람에 휘둘려 살지만, 그래도 우리 이 힘든 시기를 함께 잘 견디고 이겨내어 우리 함께 싹을 틔우고, 예쁜 꽃을 피웠으면...... 그리하여 우리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삶을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