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산 여행, 보수동 헌책 골목에서 어느 한 문장을 만났다.
“Crazy people can change the world.”
(미쳐있는 사람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뭐,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어느 한 문장을 떠올려 보았다.
“Lazy people can change the world.”
(게으른 자야말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게으른 자는 게으르다. 그렇기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 덜 일 하고, 더 많이 쉴 궁리만을 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쉬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힘을 아끼고 절약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는 기존의 방법만을 고집하고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늘 최선의, 최적의 방법을 갈구한다. 그렇기에 나는 부지런한 자보다도, 게으른 자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소설 <어린 왕자>에는 부지런함의 대명사, 가로등지기가 등장한다. 예전의 그는 하루에 한 번, 가로등을 켜고 끄기만 하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행성의 자전이 빨라진 지금, 그는 1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켜고 꺼야 한다. 그의 몸은 피곤에 절어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부지런한 성격의 그는 자신의 임무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악법도 법인 셈이다.
만약 가로등지기의 그가 조금만 더 게을렀다면 어땠을까? 그의 게으름이 그의 행성의 등유 가로등을 전기 스위치의 가로등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의 행성의 전기 스위치 가로등을, 자동 타이머 기능이 탑재된 최신형 LED 가로등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었을까? 아니, 어쩌면 손가락 하나로 핸드폰 어플을 튕겨가며 수시로 가로등을 켜거나 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로등지기의 부지런함에 백번 공감한다. 왜냐하면, 나도 예전 직장에서는 야근에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했던, 일 중독자였었으니 말이다. 어떤 이가 누군가를 가리켜,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분명 그 사람의 성실함을 이용하여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니체의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책임감이라는 이름 하에 내가 맡았던 일을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일 하는 곳에서는 나의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모든 일을 내 손으로 다 처리하고, 모든 일을 내가 다 책임지려고 하기보다는,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려고 하는 편이다. 나는 가로등지기의 그 부지런함을 부러워하면서도, 또한 그의 부지런함을 슬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