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그로부터 10년 뒤의 이야기
핸드폰으로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른다.
BTS의 다이너마이트 전주 부분이 흘러나온다. 멜버른에서 하는 10년 만의 공연이다.
’ 내가 좋아하는 도시,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10년 만에 상모를 다시 돌리는 기분은 어떨까?‘하고 몇 날 며칠을 상상했었다.
“심장이 터질 듯,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까?”하고 호주행 비행기에서도 몇 십 번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막상을 공연을 시작하니, 나의 기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덤덤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반가움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불과 이틀 전, 사흘 전에도 이곳에서 버스킹을 했던 것만 같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이다. 내가 이곳을 무려 10년 만에 다시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2주 전에 인사동에서 리허설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연습을 하며 마음이 다져진 것이었을까?
반갑다. 즐겁다. 행복하다.
나의 공연을 보며 신기한 듯 시선을 보내는 관객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비디오를 남기려 잠시 걸음을 멈춘 사람들. 나의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 나의 눈인사에 미소와 웃음으로 화답하는 사람들. 나의 피날레에 환호와 박수로 맞아주는 사람들.
너무나 반갑다. 너무나 즐겁다. 너무나 행복하다. 불과 어제 오후까지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이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공연을 한 시간쯤 하였을 무렵, 한 인도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호주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냐며, 이 춤은 어디에서 배운 것이냐며, 오늘은 몇 시까지 공연할 예정이며, 멜버른에는 언제까지 머무를 예정이냐며 자신이 궁금했던 내용들을 나에게 연이어 던진다. 나는 오늘 오전에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으니, 아직 이곳에 온 지는 12시간도 채 안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10년 전에도 바로 이곳에서 버스킹을 했었는데, 그 10년을 자축하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BTS며, 싸이며, 강남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 역시 해외영업 업무를 통해 어느 정도 인도와 인연이 있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갈 참이었다.
“구자라트”라는 그 도시 이름만 생각이 났어도 분명 내 입에서 인도 이야기가 줄줄줄 나왔을 텐데, 4~5년 만에 그 도시의 이름을 갑자기 떠올리려고 하니 도시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나에게 인도라는 나라는 애증의 나라였나 보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입에 담았던 도시의 이름을 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 인도친구는 나의 공연을 자신 혼자서만 보기는 너무 아깝다며, 자신의 친구들을 더 데려오겠다고 하였다. 친구들을 데려와봤자 한 2~3명 되겠거니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인도친구는 10명쯤 되는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와 나의 공연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 상황이 너무나 신기하고도 감동적이었다. 그 인도 친구들은 제법 오랫동안 나의 공연을 구경하고는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며 포즈를 청하였다.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인도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은 멜버른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짧은 여름 휴가지만, 시간을 내어, 용기를 내어 이곳 멜버른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솔직히 예전 직장에서의 인도 관련 업무 때문에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편한 감정이 많았다. 인도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그리 좋지 않지만, 나와 친구가 되기 위해 다가오는 인도 친구에게까지 나의 그 불편한 마음을 떠넘겨서는 아니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내 마음속의 이미지가 새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치가 빠지고, 어른이가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