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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배 Apr 24. 2024

아기 장미와 어른 아이

여주의 <초록 공간>에 심은 장미들은 어른 장미도 아니고, 청소년 장미도 아니다.

이제 겨우 첫겨울을 보낸, 두 살배기 아기 묘목이다.

정성을 들여 땅을 파고, 퇴비를 주고, 물을 주며 심은 장미들이기에 이 묘목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예쁘고 화려한 장미꽃들을 피어내는 그날을 기대하고 또 기다려본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번 봄에 심은 이 장미들이 당장 이번 봄부터 빨간 장미꽃들을 주렁주렁 피어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세상을 맞이한 어린 장미들에게, 어서 어서 예쁜 꽃을 피우라고 기대하고 강요하는 것은 어린 장미 친구들에게 참으로 부담을 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막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어서 걸음마를 하라고, 어서 글자를 읽어 보라고 보채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 벌써부터 그런 부담감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다.


한 그루의 장미가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자신의 가지와 줄기를 단단히 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뿌리와 줄기를 건강히 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늘, 자신의 성장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고, 지금 당장의 작은 꽃을 피우는데 적지 않은 에너지를 쓴다면, 그 꽃은 결국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 초록공간에 핀, 한 송이 장미를 만났다. 분명, 지난주 토요일까지만 해도 땅땅한 꽃봉오리 안에 진분홍색을 가득 머금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이 장미는 고운 햇살과 함께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아직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 작고 작은 키의 어린 묘목인데, 대견하게도 벌써 꽃을 피워냈다. 참으로 대견하다. 초록 공간의 109그루의 장미들 중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워냈기에 그 고마움으로 이 친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 장미가 다른 108그루의 장미들보다 먼저 꽃을 피워냈기에 이 장미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두 단어가 있다.  “어른 아이”와 “부모화된 아이”.

“부모화”란 아동이나 청소년이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역할 역전 과정을 말한다. 아이가 보았을 때, 자신의 부모가 신체적으로 아프다든지,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지쳐있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연약한 존재로 여기게 되고, 그 힘들어하는 부모에게 힘이 되고자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한다. 부모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생각하고,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 방식으로써 자신의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고자 한다.



“부모화”를 경험한 아이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면서까지 남들을 챙기기에 바쁘다. 그래서 “부모화된 아이”의 경우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착한 아이”, “배려심 많은 아이”로 인식되고는 한다. 그렇지만 이런 아이들의 경우,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가?”에 크게 집착을 하고,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과 비난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타인에게 늘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타인에게 비판을 받거나,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자기주장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는 아이답게 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그 나이에 맞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적당히 투정도 부리고, 적당히 자기중심적이어야 하며, 부모로부터 적당한 애정을 받으며, 그 나잇대의 아이에 맞는 모습으로 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어른 아이)의 어른스러움에 칭찬을 하지 말자. 누군가는 그 아이의 의젓함과 배려심 있는 행동, 양보하는 마음에 “너는 정말 착한 아이구나?”하고 칭찬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부모화된 아이”의 경우, 어린 시절에 아이로써 받아야 할 충분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자란 이유로, 훗날 사회화와 대인관계에 여러 어려움을 겪고 우울과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옛 속담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어른이 되어버린 탓에,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장미들에게 너무 일찍부터 어른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꽃을 피우라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저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를 내린,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가 되라고 북돋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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