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차장님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식당 TV에서는 계속된 취업난과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20대 청년의 이야기가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뉴스를 듣고 있던 차장님이 입을 떼셨다.
“정배씨, 정배씨는 자살 생각해 본 적 있어?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사는게 얼마나 힘들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 나도 40년 넘게 살았지만,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취업이 안된다는 게 말이 돼? 취업이 안 되긴 뭐가 안돼. 취업이 안 되면 편의점 알바 같은 거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야지.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음...... 이 분은 정말로 지금껏 굴곡 없는 인생을 사셨나 보다 생각하였다. 지금껏 원하는 것은 원하는 대로, 바라는 것은 바라는 대로 다 이루며 사신 분이겠구나 싶었다. 거래처 차장님은 다시 말을 이으셨다.
“정배씨. 나는 그래서 정배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정배씨는 명문대 경제학과 나왔는데도, 사회생활을 작은 회사에서부터 시작했잖아? 정배씨는 대기업 취업 안된다고 징징대기보다는 그래도 바로 현실을 자각하고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거 아니야. 그런 거 생각하면, 뉴스에 나온 저 친구처럼 취업이 안 된다고 자살을 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자신의 능력이 안 되어서 대기업 취업이 안 되면, 자신의 실력에 맞는 회사로 눈을 낮춰서 일자리를 다시 알아봐야지, 죽기는 왜 죽어, 안 그래, 정배씨?”
한 귀로는 거래처 차장님의 이야기에 애써 동의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한 귀로는 뉴스 속 청년의 이야기에 그가 그간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심한 위로를 표하였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자신이 바라던 대로, 딱 딱 인생을 살아온 이는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학창 시절 모범생으로, 집과 학교에서 많은 기대를 받아오며 자라왔던 내가 지금의 회사에서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배는 적어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고위직 공무원이 되어 있을 거라는 주위의 기대와 시선들..... 그 기대와 시선들 속에서 나는 아무 회사에나 막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 인정하고 수긍할 만한 그런 좋은 회사, 좋은 직업을 가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때 금산 군수가 꿈이었던 모교 전교 1등이었고, 명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었고, IMF로 무너진 우리 가정을 경제적으로 다시 일으켜야 하는 장남 중의 장남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20대 취준생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졸업의 유예를 가장한 취업의 유예였다. 아무 회사에나 아무렇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취준생 신분으로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하였다. 취업의 유예는 나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시선들로부터의 유예이기도 하였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신 상황에서, 나는 나에 대한 주의의 기대와 시선들에 의해 거의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학습화된 무기력함. 실패에 대한 불안감. 아버지의 부재. 경제적 궁핍. 가리워진 길. 그리고 주위의 기대와 관심.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그랬던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나는 내 앞의 거래처 차장님이 나보다 더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라서, 혹은 나보다 더 낙관적인 삶을 사시는 분이라서 지금껏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분은 그저 지금껏 좋은 환경과 좋은 기회 속에서 온실 속 난초처럼 자란 것뿐이라고 생각하였다. 1.5평 남짓의 고시원에서 20대를 보내보지 않은 이가 어찌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도시라고 한들, 사막 한가운데만큼이나 숨 막히고 외로운 공간이라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도시 속 1.5평 고시원의 그 숨 막히는 답답함에 대해 그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나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기대처럼, 그리고 가족친지들의 기대처럼,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생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또 다른 세계선에서의 나는 정말로 고위 공무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세계선에서의 나는 계속되는 고시 낙방으로 무기력함에 빠진 채 나의 젊음을 허투루 낭비했을 수도 있다.
가난한 집안의, 가진 거라곤 공부 머리와 끈기, 성실함 밖에 없던 시골 소년이, 서울에 상경하여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 무섭고 냉혹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바다를 처음 접한 나비가 그러했을까. 지금껏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시골 소년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대도시의 학우들에게 기가 팍 죽었다 한다. 끈기와 성실함은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없다고 깨달았다 한다. 지독한 가난은 넘치는 부유함을 따라갈 수 없다고 느꼈다 한다. 하얀 나비가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왔다 한다,
물론, 지금껏 굴곡 없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신 거래처 차장님께서는 나의 지난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이 없으시겠지. 그러니까 나의 대학교와 나의 첫 직장에 대해서도 아무렇게나 이야기하시는 거겠지. 그러니 취업난과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20대 청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여전히 하고 계시는 거겠지.
군수가 꿈이었던 청년은 어쩌다 호주에서 상모나 돌리게 되었을까?
누구보다도 긍정적이었고, 누구보다도 낙관적이었던 어느 시골 청년은, 자신이 계획하던 대로, 자신이 바라던 대로, 자신이 꿈꾸던 대로 늘 인생이 살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은 늘 불안했고, 불확실했고, 불분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신 역시, 호주에서 상모를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정말로 어쩌다 호주까지 가서 상모를 돌리게 된 걸까?
낮에 울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오늘 밤에는 검푸른 천으로 까맣게 하늘을 덮고, 별처럼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