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배 Jul 09. 2023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13년 호주 멜버른 스완스톤스트릿에서의 버스킹 공연 중 일부

나는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좋다. 중학교 때 누가 몇학년 몇반이었고, 우리반 1번은 누구였고, 우리반 2번은 누구였고, 옆반 3번은 누구였는지,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누가 무슨 색을 좋아했었는지와 같은 쓰잘데기 없는 기억들을 엄청나게 잘 기억해낸다. 그래서 나의 친한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이렇게 농담하곤 한다. 그 좋은 기억력으로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서울대를 가고도 남았을 거라고 말이다. 하하하. 하지만 나도 나의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에만 기억력이 좋았다. 그래서 그 때 그 당시 그 친구가 자주 하던 습관, 말투, 그리고 어느 날의 바람과 습도 등을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해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좋아하던 시절, 그 소중한 나날들의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싶은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멜버른에서 공연하던 순간 순간들 역시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스완스톤 스트릿에서 공연을 하고 있노라면 내 뒤로 천천히 지나가는 트램과 청소차와 자전거가 있었다. 그리고 도로 건너편으로 들려오는 다른 버스커들의 연주 소리. 관객이 보내오는 관심의 눈빛들과 마음을 담은 박수들. 그 하나하나들이 여전히 나의 머리 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누군가는 이러한 나의 기억이 쓰잘데기 없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지난 10년 전의 멜버른에서의 거리 공연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인생 최고의 시간들이었다. 거리에서 춤을 출 수 있어 행복할 수 있었던, 내게는 너무나도 그리운 시간들이었다. 그 그리운 추억 속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나는 감히 이렇게 나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멜버른의 상모버스커라고.


나는 3일 뒤면 호주 멜버른으로 다시 돌아간다. 3박 6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그 기간동안 진득하게 버스커로의 삶을 살다올 생각이다. 10년 전의 내가 느꼈던 그 기쁨과 즐거움, 환희와 행복을 다시금 가득 채우고 올 계획이다. 10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멜버른의 행복한 상모버스커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헤이, 스콧, 웬즈데이, 사케, 오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