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에게 뿌리가 있었다면, 대쪽같은 강단이 있었다면

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by 김정배

“자기야, 언제까지 이런 데서 살려고 그래? 자기는 이런 빌라촌이 좋아? 결혼도 10평짜리 원룸에서 시작하려고 그래?”

전 여자 친구는 내가 사는 동네를 지독하게도 싫어하였다. 다닥다닥 들어선 빌라건물들 앞으로, 일요일 저녁이면 음식물쓰레기봉투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녀는 이런 청결하지 않은 거리를 걷는 게 싫다고 하였다. 가까운 지하철 역 하나 없어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것도 싫고, 젊은 사람 하나 없이, 나이 드신 분들만 사는 동네라서도 싫다고 하였다. 그녀는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 봐야 한다는 게 그녀의 인생철학이라고 하였다. (뭐,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런 유형의 말들도 가능하지 않은가.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스타일을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즐겨 읽는 책들을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평소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과연, 하나의 시선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볼 수는 있는 걸까.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이나, 적어도 천 개의 시선은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가치 잣대에 따르면, 나는 <허름한 동네의 어느 빌라 꼭대기 층 옥탑방에 사는, 평균 이하의 남자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는, 참으로 모자란 남자였을 것이다. ‘과연,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데서 살 생각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때서?’라는 반발감도 이내 일었다. 내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이것으로 만족하고 살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지금껏 내가 <내 집>이라 불렀던 공간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10살까지는 대전의 어느 34평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살았고, 그래도 금산으로 이사 와서는 마당과 <내 방>이 있는 집에서 살았으니, 평균 또는 평균 이상의 집에서 살았었다고 할 수 있었겠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늘 학교 앞 고시원을 전전긍긍했고, 그나마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친동생과 자취를 하며 반지하 생활을 하였다. 호주에 있었을 때는? 27평이 안 되는 집에 5명이 함께 살며, 그마저도 나는 거실에 억지로 설치한 2층 침대에서 생활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 생활이 좋았다.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34평 아파트에, 관리비에, 전기비에, 수도세까지 월에 5만 원만 내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회사 사람들과 저녁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자기도 살고 싶은 집, 살고 싶은 동네가 있을 거 아니야? 나이 50, 60 먹어서까지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은 거는 아닐 거 아니야?”

한국의 정 반대편 호주에 넘어와서야 옛 여자 친구가 했던 말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흠..... 아닌가? 한국의 정 반대편에나 왔으니까, 그때의 그 말들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살고 싶은 동네로 이사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벨트를 더 졸라매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그녀가 늘 말하였다. 소득이 적어서, 월급이 적어서 세이브가 안 되는 거면, 얼른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보다 조건이 더 좋은 회사를 알아볼 필요도 있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래, 나에게도,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나라가 있지. 그래, 나에게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이 있고, 내가 살고 싶은 동네가 있지. 나도 월급 많이 받아서, 돈 많이 모으고 좋은 집,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 (그러나,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퇴근하고, 하루하루를 회사 일로 치이는 일상에서는 나는 그저 오늘을 버텨낼 뿐, 내일의 오늘을 그려낼 수가 없다고......)

그녀의 눈에는 나는 참으로 게으르고, 용기도 없고, 변화의 의지도 없는 무능력한 남자로 보였을 것이다. 자신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 다 사는 것처럼, 딱 평범하게 그만큼만 하자는 건데, 왜 그렇게 뭉그적 거리느냐고 그녀가 말하였다.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바래? 그냥 딱 남들 사는 것처럼만 살자고!”


정말이지, 이곳 한국 정 반대편에 와서까지 예전 여자 친구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그랬더라? 행복이란, 집과 자동차를 사고, 세계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라고. 집 값이 너무 비싸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든 경제적, 사회적 배경에서,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행복을 향유해야 하나? 어떻게 향유하긴! 그냥 깔끔하게 집과 자동차와 세계여행을 포기하면 되지!

요새 들어, 나의 10평짜리 원룸 옥탑방을 못마땅해하는 분들이 많다. 현재 실거주하고 있는 내가 만족하며 산다는데도, 그 나이 먹고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답답하게 살고 있냐는 핀잔들. 나에게 더 큰 집으로 이사를 종용하는 동생에게는, 나의 전세 보증금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거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사를 가겠다고 하였다. 나이도 있으니, 이제는 좀 집다운 집에서, 사는 건 어떻겠냐는 회사 분들에게는, 잘 알겠노라고, 안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 내가 살고 싶은 도시가 있는데, 가까운 날에 그곳에서 살 생각을 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회사에 하계휴가를 내고, 멜버른 열흘 살기를 하기 위해 도착한 이곳 호주땅이었다고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어서, 지금 있는 곳에 살고 있는 거라고. 주위에서 자꾸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 핀잔을 주시면, 나도 내가 살고 싶은 그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언젠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의 빨간 꽃이 이렇게 말하였지. “사람은 뿌리가 없어서 사는 게 제법 힘들 거야. 바람은 좀처럼 사람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게 하니 말이야.”

어쩌면 나도 뿌리가 없어서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뿌리가 있어서 어느 땅이든, 쭉쭉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사는 게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만약 나에게 뿌리가 있었다면, 그래서 나에게 대쪽 같은 강단이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나에게 닥친 그 모진 바람으로부터, 진작에 뚝하고 부러져 버렸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