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첫 끼니는 역시나 케밥이지

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by 김정배

공항에서 짐을 찾아, 멜버른 시내로 가기 위하여 공항버스인 스카이 버스를 탄다. 스카이 버스 안으로 호주 특유의 향수 냄새가 가득하다. 이 향이 무슨 향인지 알면, 한국에 하나 사 들고 가면 좋겠는데,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볼지 막막하여 오늘도 혼자서 코로만 이 호주 특유의 향내를 담는다. 스카이 버스가 출발하고, 영어로 주의사항 안내방송이 나오자, 그제야 나는 내가 또 낯선 곳에 혼자 남겨졌음을 실감한다. 그리고는 두려움 반, 설렘 반의 오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언제나 늘 그랬듯, 나는 이 긴장감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기리라. 공항으로부터 40분쯤 달려왔을까? 어느덧 시내에 도착하여 호텔을 찾는다. 미리 예약한 숙소는 버스 정류장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그렇게 공손하게도 인사하더니만, 호주에 오자마자 한국에서의 그 태도는 그새 싹 잊고 새삼 쿨하게 호텔 카운터 직원에게 인사한다.

“Hi, how are you doing?”

‘나에게 이곳, 멜버른이라는 도시는 전혀 낯선 도시가 아니다’라는 점을 어떻게든 어필하려고, 온몸으로 발악을 하는 중이다.


카운터에서 방 열쇠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호텔 구조가 참 재미있다. ㅁ자 모양으로 방들이 배치되어 있고, 한가운데는 빈 공간으로 1층의 휴식공간이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짐만 간단하게 풀고는 바람막이에 지갑만 챙겨 호텔 밖을 나왔다. 전날 아침 9시에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는데,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멜버른의 호텔에 겨우 짐을 푼다. 집 떠난 지 31시간이 되어서야 짐도 겨우 내려놓고, 마음도 겨우 내려놓는다. 2013년, 2023년에 이어 올해가 멜버른으로의 3번째 방문이지만, 유독 이번 멜버른으로의 여정이 더 고된 느낌이다. 긴장감이 풀리자, 배고픔도 함께 밀려온다. 편의점 빵 같은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시내에 있는 제대로 된 음식점까지 걸어갈 자신은 없었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후드티 모자를 눈 밑까지 푹 내려쓰고는 호텔 골목의 끝에 위치한 케밥가게에 들어갔다. 닭고기는 손에도 안 대고, 양고기로만, 거기다가 체다치즈까지 듬뿍 추가하여 최대한 기름지고 느끼하게 먹으리라. 아무래도 기름지고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 줘야 이 추위와 피곤함이 조금은 가실 것 같다.


케밥 세트메뉴를 주문하고, 나의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10대 후반은 되었으려나? 교복을 입은 백인 10대 남자아이들이, 전형적인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들의 행동을 하고 있다. 무리 지어 와서는,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들끼리 깔깔대며 서로 장난을 친다. 자신들끼리 서로 주먹을 휘두르고 피하며 놀더니 한 아이의 몸이 나의 몸에 부딪힌다. 아직 청소년기의 철없는 아이들이긴 한가 보다. 여느 멜버른의 사람들 같으면, 몸이 부딪히자마자 “쏘리”라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나와 몸을 부딪힌 아이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나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내가 자기 또래이겠거니 싶어서 괜히 쿨한 척 행동했을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본래 남자들이란, 자신의 또래 무리와 있으면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행동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애들아, 나 내일모레면 마흔 살이란다. 엄지 손가락 치켜세워져 봤자 나는 별로 기분이 안 좋아.)


케밥 하나에 17불, 감자튀김과 음료수가 곁들여진 세트 제품은 25불! 케밥 하나만 사 먹는다고 해도, 우리나라 돈으로 거진 2만 원 돈이다. 물론, 미국 달러가 아니라 호주 달러(약 900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케밥 단품 하나에 만 오천 원. 우리나라 한 끼 식사가 대략 만원 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호주의 물가는 여전히 우리나라 보다 1.5배는 비싼가 보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에 호주에 왔었을 때도 첫 끼니로 케밥을 먹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멜버른 여행에서의 첫 끼 역시 케밥이다. 내가 그동안 이곳 멜버른의 케밥을 알게 모르게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케밥으로 배도 채웠겠다. 조금 전의 배고픔이 사라지고 나니, 케밥집의 통창 너머로 멜버른 사람들의 패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겨울 코트며, 겨울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한국의 7월이 한 여름이라면, 멜버른의 7월은 한 겨울이다. 한 겨울이라고 해봤자 겨우 영상 12도에 바람만 간간이 세게 부는 정도. 겨우 영상 12도의 날씨에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니다니, 멜버른의 남자들은 생각보다 유약하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한국처럼 영하 12도 정도까지는 되어줘야 겨울이지, 겨우 영상 12도를 겨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여기 방금 막 한국에서 도착한 이 사내를 보아라. 이 사내로 말할 것 같으면, 겨울이 한참인 멜버른에, 바람막이 하나에, 반팔 티셔츠만 몇 장 챙기어 왔노라. 다른 사람들이 다 패딩을 입고 다닐 때, 오로지 그 혼자만이 반팔을 입고 다닐 지어니, 일주일 뒤 그는 지독한 감기를 떠안고 호주를 떠나게 될 따름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