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그녀가 말하길, 그녀의 남자 친구는 나의 호주 방문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멜버른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멜버른에 내 친구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꾸역꾸역 멜버른을 찾아오는 지 그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혹시나, 나와 그녀, 우리 둘 사이에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서, 내가 그녀를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오는 건 아니냐는 오해까지 하였단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에서도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리는 곳을 매번 이렇게 찾아오겠냐는 것이다.
멜버른에서 태어나 멜버른에서만 나고 자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너에게 멜버른이라는 도시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서, 멜버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몰라. 너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도시에서의 삶을, 어느 누군가는 항상 그리워하고, 항상 꿈꾸지. 왜냐하면, 이 도시에는 그의 소중한 추억들이 스며 들어 있거든. 멜버른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너는, 그가 그토록 멜버른을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어쩌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네가 멜버른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의 삶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 때는 그가 멜버른을 매번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녀는 나의 감정을 100%, 아니, 200%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어쩜 저렇게도 잘 알고 있을까. 내가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리워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고 싶어하는 지에 대해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참으로 많은 글들을 남겼었다. 하지만 외국인인 그녀가, 내가 한글로 쓴 글들을 100% 공감했으리라 기대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언어란 그런 거니까. 내가 영어로 아무리 비슷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우리말로 전하는 그 감정, 그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가 멜버른이라는 도시로 매번 발걸음을 하는 이유에 대해,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공감해 주어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이미 10년이 넘게 멜버른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여전히 꿈 꾸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와 가볍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지난 세월들의 회포를 푼다. 그 때는 어땠고, 저 때는 어땠고, 우리는 10년 전에도 그러했듯,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말장난으로 시시콜콜 잡담을 나눈다. 그녀가 말한다. 10년 전의 우리는 마치 서로가 더 어른인 것처럼,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서로가 더 어른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더 젊은 척을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청춘일 것만 같았던 나도, 그녀도 이제는 어느덧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나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린왕자를 따라 한 듯한, 나의 비대칭 헤어스타일은, 천편일률적인 한국 남자들의 헤어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왼쪽 머리는 군인처럼 짧게 쳐서 올리고, 오른쪽 머리는 파마를 하여 길게 늘어트린 모습은 여지껏 본 어느 한국 남자들의 스타일과 확실히 다르다고 한다. 한국은 특히나 패션 유행에 예민하여, 모든 남자들이 연예인들처럼 따라 입기 바쁜데, 나는 늘 그 유행과는 동 떨어진 채, 배기바지만 입는 것도 신기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이어 말하였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김정배라는 사람을 바라볼 때, 비대칭 머리에, 배기바지를 입고 다니는, 외모가 독특한 사람으로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은 곳을 향할 때, 혼자서만 다른 길을 걷는 이 사람을 독특한 사람이라고 평가할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자신이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도시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그의 헤어스타일, 그의 패션 스타일이 아닌, 그의 퍼스널리티(그의 내면, 인간으로서의 매력)에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 그녀의 말에 200% 공감하였다. 이 곳 멜버른의 사람들은 사람의 외면이 아닌, 사람의 내면을 바라보는 편이라고.
한국으로 돌아와 1년간 취업이 되지 않아 빌빌 대던 때에도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그리워 했던 이유! 사회초년생으로 회사에서 혼나 가며 일을 배우던 때에도, 늘 멜버른이라는 도시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렸던 이유!
멜버른에는 ‘스캇 플린더스’라는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에 대해 늘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늘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더 친절을 베풀었던 것 같다. 오늘 만난 그녀 역시도 그 때의 그 감사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좋다. (나에게는 여동생이 없지만) 나는 그녀가 나의 여동생만큼이나 좋다. 내가 멜버른을 가장 좋아하고 아끼던 때에,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멜버른을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