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s head doughnut, 또는 돼지머리고기

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by 김정배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Kirk‘s wine bar>라는 펍에 들어간다. 이제 겨우 저녁 6시가 되었을 뿐인데도, 펍 내부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 시간대에 이곳을 홀로 찾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의 모습도 보이고,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와서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보인다.


술을 시키려고 메뉴판을 보는데, 참으로 낯선 메뉴 하나가 두 눈에 들어온다. <Pig’s head doughnut>. 단어 그대로 직역하였을 때, 이 메뉴는 뭔가 우리나라의 돼지머리고기 편육을 닮았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멜버른의 펍에서 돼지머리고기를 팔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참으로 적응이 되지 않는 이름이다. 펍의 종업원에게 이 메뉴에 대해서 묻자, 돼지머리고기로 만든 도넛이라고 간단하게만 설명하는데, 내 머리로는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어떻게 생겨 먹은 음식인지는 어떻게든 알아야는 겠고, 종업원의 설명으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뭐, 별 수 있나, 직접 시켜보는 수밖에.


또 다른 안주로는 생굴을 시킨다. 생굴은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는 부유한 귀족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는데, 그 맛이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생굴은 5개를 시켰다. 5개만 시켰는데도 벌써 3만 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비쌀까 싶다. 우리나라 파전 집에서 시키는 2만 원짜리 굴전에도 굴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데, 여기 호주의 굴은 우리나라의 굴과 얼마나 다르다고 이렇게나 가격 차이가 날까?


(물론 우리나라와 호주의 굴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호주와 유럽에서는 굴의 생산지역에 대한 기준 잣대가 엄격하다고 한다. 굴의 품질뿐만 아니라, 굴이 채집되는 해역의 환경 지수까지 관리한다고 한다. 유럽과 호주의 굴이 비싼 이유는, 그만큼 대장균과 노로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년 전인가 유럽의 한 수입상이 우리나라의 굴을 수입하러 우리나라 바다로 직접 현장실사를 왔다가 우리나라의 열악한 조업환경을 보고 경악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획을 하다가 배가 아프면 그 용변을 그대로 그 바다에 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들은, 어선 작업자들의 용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대장균과 노로바이러스에 민감한 식재료인데, 용변으로부터의 오염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나라의 굴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나라 마켓에서 파는 굴 상품들을 자세히 보면, 무조건 가열하여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Pig’s head doughnut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굴이 먼저 나왔다. 트레이에 생레몬 조각과 비네가 소스가 함께 올려져 있었지만, 첫 번째 생굴은 아무 소스도 없이 그대로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한국에서 먹던 생굴의 맛과 비교하면, 특별하게 도드라지는 차이점은 없다. 굳이 찾자고 하면, 이곳의 생굴이 더 크고 생생하다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생굴은 레몬즙만 살짝 뿌려 입안에 넣는다. 생굴 특유의 바다 내음이 레몬의 상큼함과 어우러져 입안이 행복해진다. 맥주 특유의 쌉싸름함이 굴과 레몬의 향과 섞여 더 오묘한 기분을 낸다. 세 번째 생굴은 비네가 소스를 한 스푼 얹어 먹는다. 비네가 소스 때문에, 아까보다는 굴 특유의 바다내음은 사라졌지만, 새콤한 소스맛과 호주 굴의 식감이 더 해져 또 새로운 맛을 냈다. 한국에서 굴전을 시켰다면 이렇게 굴 한 조각, 한 조각에 애를 태울 일은 없었을 텐데, 이깟 생굴이 뭐라고, 입에 넣는 한 조각, 한 조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맛을 음미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기만 하다.


네 번째 생굴은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그렇게 기다렸던 새 메뉴가 나왔다. Pig’s head doughnut은 얼핏 보기에는 고로케, 혹은 찹쌀도나스의 모습이다. 겉은 튀김옷을 입어 바삭하고, 그 안은 만두 속처럼 촉촉한 고기 속이 들어 있다. 아마 이 고기 속을 돼지 머리고기로 만들었으리라. 맛도 특별하지는 않았다. 고기 고로케에 마요네즈를 가미한 맛이랄까? 내심 우리나라 스타일의 편육 고기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고로케 모양의 음식이 나와서 아쉽기만 하다. 메뉴에 대한 아쉬움은 맥주 한잔으로 날려 버리고, 다시금 남은 생굴 2개에 온 정신을 기울인다. 남아있는 이 2개의 생굴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솔직하게 말하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생굴의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Pig’s head doughnut와 함께 맥주 4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어느덧 술기운이 올라, 굴맛을 음미하는 것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맥주를 한 잔 더 시키고는 펍 안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한국에서는 혼술도 잘 안 하는 사람이, 여행만 오면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러 부지런히 펍을 찾는다. 멜버른에서의 세 번째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밤은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 단 3일뿐이다. 오늘도 시간을 꽉꽉 채워 하루 온종일을 보낸 것 같은데, 점점 가까워져 오는 출국날이 아쉽기만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