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이주의 가장 큰 차이점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20225

by 김정배

역시나, 100kg가 넘는 체구로 3시간이나 버스킹을 한 게 무리였나 보다. 양쪽 종아리와 정강이에 파스를 2장씩 붙이고 잤는데도 불구하고, 다리에 쥐가 나서 새벽에 두 번이나 잠이 깼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리에 쥐가 나서 잠이 깨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다리의 경련 때문에 도저히 다시 잠에 들 수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시시각각 제 멋대로 뒤틀리는 종아리 근육을, 두 손으로 십 분은 마사지하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채 못 되어, 다리에 또 쥐가 나 버렸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휴식을 취해야 수요일 버스킹 공연이라도 멀쩡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식을 핑계로 오전 11시가 될 때까지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렸다.


오늘 점심은 Queen Victoria Market이라는 멜버른의 전통시장에서 먹을 생각이다. 나는 어느 여행지를 가든,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어릴 적, 어느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의 문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의 문화가 궁금하다면,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방문하라. 그리고 그 나라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그 나라의 도서관을 방문하라.” 이 문장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제일 먼저 방문하는 편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그리고 어떤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떠한 역사적 상황과 어떠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하여 이 음식들을 즐겨 먹게 되었는지까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짧은 이야기와 스토리텔링들이 모여,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나는 Queen Victoria Market이라는 전통시장으로부터, 호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가. Queen Victoria Market에서는 호주 원주민들이 만든 부메랑과 같은 공예품도 판매하지만, 각종 야채와 과일, 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있다. 미나리와 숙주나물, 콩나물과 같은 낯익은 채소들도 있지만,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름 모르는 채소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과와 배, 수박과 멜론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의 그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전혀 낯설기만 하다. 꼬마 아이의 주먹 쥔 손 정도 크기의 호주 사과. 호리병처럼 기다랗고 볼록하게 생겨 푸석푸석한 맛이 나는 호주의 배. 초록색과 검정색의 개구리 무늬 대신, 어두운 청록색 껍질을 지닌 호주의 수박. 에메랄드 빛 연두색의 속살이 아닌, 주황색 호박 빛을 띠는 호주의 멜론까지 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식재료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5대양 6대주의 다양한 국가 출신들이 모여 이곳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으니, 이곳의 식재료 역시 범지구적일 수밖에.....


식재료 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푸드트럭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멕시코의 타코부터, 태국의 팟타이, 일본의 스프링롤, 독일식 소시지, 네덜란드의 와플과 팬 케이크.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의 모든 음식들을 이곳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 맛볼 수 있다. 본래 새로운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나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지금껏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티벳식 푸드 트럭으로 달려간다. 양고기로 만든 모모(티벳 전통 만두) 3개와 치킨볶음누들을 주문한다. 모모를 한 입 베어 무니, 만두피 사이로 양고기의 육즙이 입안 가득 맴돈다.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교하면, 두부와 부추, 김치를 제외하고 오롯이 양고기만을 다져서 속으로 만든 것 같은 맛이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이었다. 분명히 비슷한 속재료와 비슷한 레시피, 비슷한 요리로 만든 음식인데, 어느 나라에서는 교자, 어느 나라에서는 만두, 어느 나라에서는 덤플링, 어느 나라에서는 샤오롱바오, 어느 나라에서는 모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내가 앉은 간이 테이블 맞은편으로, 회사복 차림의 백인 남녀가 앉는다. 내가 먹는 티벳 음식들이 맛있어 보였는지, 그들은 내가 먹고 있는 메뉴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저기 티벳 푸드 트럭에서 모모와 치킨누들을 시키면 된다고 알려준다. 불현듯 이 두 사람의 일상이 부러워진다. 기껏해야 나는 하계휴가를 내어 호주에 와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이들은 매일 같이 일상에서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곳 호주 멜버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나도 산책이나 할 겸 이곳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점심을 먹으러 많이 왔었을 텐데 말이다.


식사를 마치니,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호텔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라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갈 계획이다. 어제저녁에 했던 버스킹의 피로가 아직도 나의 두 다리를 무겁게만 한다. 호텔로 가기 위해 플래그 스태프 가든을 가로질러 걷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풋살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팀 구성이 참 재미있다. 1팀에 6명씩 12명이 한 코트에서 승부를 가리는데, 각 팀마다 10대 여학생 3명과 10대 남학생 1명,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2명이 1팀이다. 남녀가 섞여서 풋살 경기를 하는 것도 신기한데,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섞여서 하는 풋살 경기라니, 한국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팀 구성이다. 그것도 월요일 오후 2시에 이들이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들은 직업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는 오롯이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는 걸까? 공원 벤치에 앉아 두 팀의 풋살 경기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풋살 경기에 끼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저 코트 위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골키퍼 역할을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부럽다. 평일 오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저들의 삶이 부럽다. 한국에서의 삶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여유로운 호주인들의 삶이 부럽다. 한 때는 나의 것이었던, 그리고 어쩌면, 나의 것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저들의 멜버른에서의 삶이 부럽다. (이럴 때 보면, 나는 라푼젤 영화 속 마녀의 마음을 가졌다. “Bring me back what once was mine”이라며, 한 때는 자신의 것이었던 것들을 되찾고 싶어 하는 라푼젤 속 그 고약한 마녀의 마음을! )

어느 누가 그랬더라? 여행과 이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라고.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보다, 호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커지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더 이상 한국에 남은 미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분명 7박 8일의 여행만을 계획하고 이곳 호주를 방문하였지만,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을 잊게 된다.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을 마음속에서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