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언제나 그러하듯, 버스킹을 하러 가는 길은 늘 긴장 반, 설렘 반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가졌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매 학기마다 반장 선거에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아무래도 내향적인 면과 외향적인 면이 반반씩은 섞여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돋보이는 것을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매번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만 골라 걷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내 안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상당히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노래 한 곡을 튼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두아 리파의 <Don’t start now>라는 곡이 오늘 낮부터 자꾸만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둠칫둠칫하는 비트에 나의 몸이 저절로 춤을 춘다. 지금의 감정과 이 텐션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오늘 버스킹 공연도 정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오늘 저녁에는 두아 리파의 노래에 맞춰,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두아 리파의 노래 제목은 “이제,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두아 리파의 “이제, 제발 하지 말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 (버스킹을) 하러” 간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나는 너무나 웃기고 재미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하러 갈 거면서, 굳이 “시작하지도 마라”는 노래를 들으며 버스킹 공연을 하러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나는 정말로 변태이거나, 아니면 참으로 심보가 못 돼먹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펼치는 멜버른에서의 버스킹 공연!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에 맞추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춤을 추었는지, 이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그다음의 춤동작을 기억하고 있다. 한 곡, 두 곡, 세 곡, 공연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의 가던 길을 멈추고 나의 공연을 구경하는 관객분들도 늘어난다. 그러면 나는 또 괜히 많은 관객 앞에 선 내 자신이 부끄러워져, 관객분들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팝송에 맞추어 상모를 돌리는 것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다만, 누군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에게 참으로 부담되는 일이다. (그렇게 공연에 매번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매번 버스킹을 하러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나 자신을 보면, 나도 나 자신을 참 모르겠다.)
월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나의 공연을 즐겨 주셨다. 특히나 많은 10대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그들의 요청 한 마디면, 그동안 나를 에워싸고 있던 부끄러움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즐겁고 행복한 도파민만이 나를 감싼다. 노래가 끝났을 때 들려오는 진심 어린 박수 소리. “You are cool!(멋져요)”이라는 짧은 감탄사. 말은 안 해도 서로의 눈빛으로 전해지는 미소와 훈훈함. 거리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잔잔한 감동들이, 계속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나로 하여금 자꾸만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 같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나에게는 앞으로 수요일과 금요일, 두 번의 버스킹 기회가 남아 있다. 멜버른에서 앞으로 이틀 밖에 버스킹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내심 멜버른에서의 공연 일수를 늘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일단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얼른 호텔로 돌아가서 휴식을 청하고, 내일 컨디션에 따라 공연을 하루 더 할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두아 리파의 <Don’t strat now>를 들으며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장장 3시간이나 춤을 추었으면서도, 두아 리파의 댄스곡을 듣고 있자 하니, 그 흥겨움에 못 이겨 괜히 내 발걸음만 폴짝폴짝 더 가벼워진다. 왠지 이번 일주일은 두아 리파의 노래와 함께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