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버스커 2025
점심으로 먹은 닭가슴살 샐러드와 캥거루 스테이크가 조금 과하긴 과했나 보다. 소화도 시킬 겸, 멜버른 CBD의 북쪽 CHARTON 지역까지 걸어가 본다. 시내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니, 월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프린스 파크에 다다르기 전, <멜버른 제너럴 묘지>라고 적혀 있는 공동묘지가 하나 보인다. 공동묘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비석 하나에, “크로아티아 출신 누구누구 이곳에 잠들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석명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곳 호주에서 죽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영혼은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은 이곳 호주의 사후 세계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바다 건너 저 멀리 자신의 조국 크로아티아의 사후 세계로 가는 것일까? 그래도 사후 세계는 편하게 자신의 조국으로 갔으면 좋겠건만, 크로아티아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호주의 사후 세계로 가게 되면, 크로아티아 출신의 망자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우리 친할머니는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대해 매일 같이 부러움을 표하셨다. 작은 고모께서는 그래도 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몸이 더 성하셨을 때, 유럽 여행을 보내 드리고 싶다 하셨고, 결국에는 작은 고모와 할머니 두 분이서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한국에서 크로아티아까지의 긴 비행시간이 할머니께는 무리였던 것일까? 할머니께서는 생전 처음, 그것도 우리나라 땅이 아닌, 크로아티아 땅에서 <치매>라는 병과 마주하셨다. 할머니께서는 본인이 현재 동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신 채, 자신을 얼른 금산 집으로 보내 달라고 떼를 부리셨다. 이국적인 자연경관, 하얗고 키가 큰 외국사람들을 보면, 지금 계시는 곳이 한국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하실 법도 한데, 할머니께서는 연신 금산 집, 금산 집만 외치셨다. “지금은 유럽이라, 금산 집을 바로 갈 수 없다.”는 작은 고모의 호소 아닌 호소에도, 할머니께서는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자신을 금산집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다.
작은 고모께서 한국에 있는 나에게 SOS를 치신 건 바로 그때였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작은 고모께서 영상통화를 거셨으니, 나는 당연히 할머니와 작은 고모가 여행 중의 재미난 시간을 자랑하려고 전화를 걸으셨겠거니 하였다. 할머니께서 지금 정신이 온전치 못하실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핸드폰 화면 속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의 초점을 잃은 할머니께서는 초록색 잔디의 어느 공동묘지를 다급하게 걷고 계셨고, 작은 고모가 다급하게 그 뒤를 쫓고 계셨다. 다행히도 할머니께서는 화면 속 나의 얼굴을 알아보셨다.
“정배야, 니네 고모가 자꾸 여기가 유럽이라고 그러는데, 여기가 유럽 맞냐? 니네 작은 고모가 자꾸 나한테 거짓말하는 것 같다. 나, 얼른 금산집 가야 하는데, 얼른 너랑 니네 엄마랑 차 가지고 와서 나 좀 데리고 가라.”
“네, 할머니. 얼른 저랑 엄마랑 차 끌고 할머니 모시러 갈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거기까지 차 끌고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고모랑 거기 계신 선생님들 말씀 잘 들으시고 잠깐만 계세요. 얼른 모시러 갈게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여행객들을 태운 버스는 스케줄 대로 다음 행선지로 움직여야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본인은 금산 집에 가야 한다며, 자꾸 버스를 내리려고 하셨단다. 건강하시던 할머니께서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 갑자기 치매가 걸리실 거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래도 여행사 가이드님께서 근처 약국에서 안정제를 구하여 주신 덕분에 긴급한 상황은 모면하였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약기운에 취하여, 그날 저녁 숙면을 취하셨다고 한다. 거의 10시간이 넘게 잠을 주무시고 나서야, 전날의 그 격앙되었던 상황이 좀 가라앉으셨다고 한다.
8년 전의 그날 상황을 떠올려 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신 멀쩡하셨던 할머니께서, 크로아티아의 어느 공동묘지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지탱하던 이성의 끈을 갑자기 놓아 버리셨다. 그 많고 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크로아티아의 어느 공동묘지였을까? 오롯이 혼자서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해야 했던 작은 고모는 그 외지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셨을까?
참으로 낯설고 기묘한 일이다. 7월의 어느 월요일 오후, 호주 멜버른 외곽의 어느 공동묘지를 걷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도 생소하거니와, 공동묘지 안의 그 많고 많은 비석 중에 왜 하필이면 어느 크로아티아인의 비석명이 나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참으로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만약 8년 전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떠나셨던 할머니께서 불의의 사고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셨다면, 우리 할머니의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가시게 되었던 걸까? 우리 할머니는 혼자서 비행기도 못 타시는 분인데, 우리 할머니의 영혼은 한국에도 오시지 못 하시고, 낯선 이국 땅, 크로아티아에만 머무르셔야 했던 걸까?
호주에서 죽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영혼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호주에 오니, 괜시리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진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의 시간들이 그리워 일부러 호주로 돌아온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현세에 치여, 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