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도레의 <빨간 모자>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처음 보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더 정이 가는 작품들이 있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 탓일 수도 있다. 혹은 이전과는 새로운 표현 기법 탓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주제를 다룬 그림 앞에서 발이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낯선 도시에서 아는 고향사람을 만난 느낌이랄까?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멜버른에 있는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서였다. 그곳에 있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이 작품이 유난히 눈에 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빨간 모자와 늑대를 발견하고 나는 제일 먼저 이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미술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어떤 책을 주제로 고를까 고민하는 것도 고민 아닌 고민이었다. 책을 고르는 것은 어떻게 해결했다손 치더라도 책의 어떤 장면을 그려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또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러한 점에서 나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참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악당들을 무찌르는 홍길동을 그린답시고 도화지 이 곳 저곳을 화살 그림으로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만약 '빨간 모자'를 주제로 그렸다면 어떠한 장면을 주제로 삼고 그렸을까? 어린 시절의 나라면 늑대의 배에서 빨간 모자와 할머니를 꺼내는 장면을 그리지 않았을까? 지금 이 동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숲 속 오솔길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께 드릴 꽃을 꺾고 있는 빨간 모자를 그리고 싶다. 십 년 뒤, 아니 당장 일 년 후에 이 질문을 다시 한다면 나는 분명히 이와 다른 또 다른 답을 할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도 이처럼 세월에 따라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일이다. 하물며 다른 문화권, 다른 종교권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다른 생각과 가치관들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가는 어떠한 생각과 의도로 이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을까? '낯선 이의 호의를 늘 경계하라'는 동화 속 교훈을 관객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배경에는 또 다른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혹은 화가의 신병에 주목할만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정말 쓰잘데기 없는 이와 같은 궁금증들이 나로 하여금 오늘날까지 그림과 관련한 일종의 탐정놀이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