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로부터 도망가겠는가?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지겠는가?

피터 브뤼헬의 <두 마리 원숭이>

by 김정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피렌체에서 본 베키오 다리가 떠 올랐다. 베키오 다리 난간에서 바라본 아르노 강은 리옹의 손 강만큼이나 아름답고 포근하게 느껴졌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로서니 자아를 실현코자 하는 욕구는 당연한 일이라는데, 이토록 먹고사는 일도 버거운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슬에 묶인 원숭이를 나무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여워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봤자 나도 기껏해야 프란츠 카프카의 '원숭이, 빨간 피터'와 같은 처지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하여 원숭이의 삶 역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신체의 자유는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에 불과하다. 원숭이는 사슬로부터는 자유로워졌을지는 몰라도 그를 다시금 잡아들이려는 사냥꾼의 위협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슬로부터의 자유,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로부터의 도망에 불과하다. 현실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현실에의 자유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원하는 원숭이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사슬로부터 도망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다음에는 나의 차례가 될 것이다. 경제적 부자유로부터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p.s 오늘의 내가 어제의 너에게 조금은 서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내일의 네가 오늘의 나에게 조금은 서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L에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