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내 인생에 첫 번째 기회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했던 학생기자 활동이라고 하겠다. 교장선생님의 인터뷰로 시작한 나의 학생 기자 활동은 교육감님, 도지사님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무엇보다도 신문 지면을 통해, 나의 이름 석자가 실린 기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나의 인생에 두 번째 기회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호주로의 워킹홀리데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호주로 가기 전, 그러니까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을 하기 전까지 내 주변에는 늘,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붙어 다녔던 것 같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암 소식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늘 함께 생활해 온 할아버지께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은 나를 더욱 슬픔 속에 빠트리게 하였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 장남, 장손이라는 무게감은, 어쩌면 이십 대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한국을 떠나 호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장남도 아니었고, 장손도 아니었다. 서울의 모 사립대학 경제학과 학생도, 취업을 준비하는 휴학생도 아니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도 필요 없었다. 호주에서 나는 오롯이 김정배(혹은 Scott Flinders)라는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호주와 유럽에서 버스킹을 했던 기억들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예술가로 만들어 준다. 거리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 그리고 그들과 나눈 미소와 대화들은 나 자신을 멜버른과 유럽에서의 추억 속에서만 머물게 한다. 한국으로의 귀국 후, 거듭된 취업 실패에 자존감이 자꾸만 낮아진 것도 나를 더욱 추억 속으로만 몰아붙이지 않았나 싶다.
나는 다시 춤을 추고 싶었다. 나의 춤으로 거리 위의 행인분들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웃음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부터가 이 춤추는 행위로부터, 그간 잃어버렸던 자신감들을 되찾고 싶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길바닥에서 춤을 추고 있어? 그럴 시간에 입사 원서 하나 더 쓰고, 토익 문제 하나 더 풀어야지! 아직 취업이 그리 간절하지가 않은가 봐?”
그래, 어쩌면 내가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동안, 나에게 온 세 번째 기회는 나를 가만히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일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오늘의 나의 행복을 희생시키지는 않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일주일 중에 하루만큼은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거리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거리 위의 버스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