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적어도, 공연을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다

<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

by 김정배

호주와 유럽에서 버스킹(거리 공연)을 하면, 거리에서 만난 한국분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에게도, 그분들에게도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의 존재는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다. 그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더 신나고, 더 재미있게 공연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의 거리 공연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곳 한국에서 여느 오천 만 명의 한국인 중 한 명에 불과했고, 수 만 명은 되는 여느 풍물패 중, 단 한 사람의 단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나의 공연은 정말로 하나도 힘을 쓰지 못하였다.


해외에 있었을 때에는 <상모>라는 아이템은 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민속촌에서나 볼법한 전문 풍물패 단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홍대나 신촌에서 볼법한 전문 비보이나, 커버댄스팀도 아니었다.


어떤 어르신께서는 진지하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지금 이 것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으셨다.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나는 대학로에서 버스킹을 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잃었다. 나의 공연의 주 관객층을 대학로의 젊은 친구들로 한다고 해서, 내가 거리공연으로부터 얻어갈 수 있는 이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내 공연에 흥미를 느낄 법한, 외국인 관광객 친구가 필요했다. 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명분 같은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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