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동의 상모 버스커>
스물여덟이라는, 그리 적지 않은 나이에 서울 한복판에서 하는 공연이 이제는 제법 부끄러울 성도 싶었다. 연이은 구직 실패로, 방구석에만 계속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집 밖에서 무엇인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이렇게 인사동 거리로 나섰다.
내가 대형 앰프를 틀고 춤을 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이크를 켜고 고성을 지른 것도 아닌데, 심지어 나는 아직 캐리어에서 짐도 다 풀지 못한 채, 신발만 갈아 신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기념품 가게 주인아저씨께서 다짜고짜 인상을 잔뜩 쓰고 걸어오시더니, 내 공연이 시끄러우니 경찰을 부르기 전에 얼른 짐을 싸서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자신의 말에 바로 짐을 싸는지, 싸지 않는지 지켜보겠다며,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계속 응시하셨다. 당신 점포의 바로 앞에서 공연을 한 것도 아니고, 20미터는 떨어진 어느 폐점 가게의 앞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말이다.
호주와 유럽에서의 공연 이후, 한국에서는 대학로 공연에 이어 두 번째 공연인데, 버스킹을 시작하기 도 전에 기분이 팍 상했다. 호주와 유럽의 타국에서는 늘 환대만 받아 오다가, 막상 자국에서 이렇게 홀대 아닌 홀대를 받게 되니, 기분이 여간 섭섭하고 속상한 것이 아니었다.
거리 위의 예술가는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도시의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다는데, 오늘날의 죽어가는 인사동을 살리려면, 거리의 버스커들에게 더 친화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자리를 옮겨, 안국역 근처의 어느 폐점 가게 앞에 터를 잡았다. 하루의 공연을 끝마쳐갈 무렵, 대만에서 온 한 여성분으로부터 열쇠고리를 선물 받았다. 타이페이,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등 대만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그녀와 대화를 이어 나간다. 문득 멜버른에서 처음으로 버스킹을 하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W며, J며, I며, 대만 친구들이 마카롱을 들고 와, 나의 첫 공연을 응원해주었던 그날의 기억들!
이런 작은 기억들 하나하나가 모여,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부터, 프랑스 여행 중에 만났던 친구들까지 나에게 대만 사람들은 늘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한국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었을까? 버스킹을 하며, 유럽 여행을 하며 만났던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은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인사동에서 만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늘 좋은 이미지만 심어주고 싶다. 명심하자! 인사동, 이곳에서만큼은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상모버스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