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관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이다. 한 여인은 자신의 참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꼬리도 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도 버리고, 자신의 집과 고향까지도 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 결국 돌아온 것은 이웃나라 왕자님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상처뿐이었다. 인어공주의 헌신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날 뿐이다.
어렸을 적의 나는 인어 공주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하는 이웃 나라 왕자가 무척이나 미웠다. 인어공주는 그대를 위해 그토록 헌신적이었는데, 이웃나라 왕자 그대는 왜 인어공주의 마음을 하나도 몰라주는가.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한 걸까?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나도 인어공주처럼이나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과 정성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녀의 시간들을 길들이고 싶었고, 나 또한 그녀의 시간들 속에서 길들여지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같이 그녀에게 손편지를 썼다. 어떤 날은 그녀에게 한 장의 손편지를 건넸고, 며칠 만에 만나는 어떤 날에는 네 통, 다섯 통의 손편지를 한꺼번에 그녀에게 건넸다. 나중에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작은 색종이 하나, 하나에 사랑의 메시지를 쓰고 그것으로 천마리의 학을 접어 그녀에게 선물하였다. 그녀를 위해 접은 그 학 한 마리, 한 마리에, 그리고 그 학 한 마리를 접는 데 걸리는 시간, 시간들에 나의 사랑과 마음이 담겨 그녀에게 전해졌으리라.
그러나 끝내 나의 마음은 그녀에게 가 닿지를 못하였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나의 존재는 나날이 식어만 갔다. 나는 그녀를 위해 밤 깊은 밤, 집 앞까지도 바래다주고, 학교 술자리에서는 그녀가 혹여나 취하기라도 할까 봐 술도 대신 마셔주었다. 일부러 그녀의 공강시간에 맞추어 나의 수업시간도 비워 놓고는 했었는데, 나의 그 모든 마음과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였다.
그녀가 나에게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했던 날의 대화가 생각난다.
“매일 같이 편지를 써주어서 고마웠다. 내 인생에 앞으로 이 보다 더 많은 편지를 받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껏 네가 보내준 편지에 단 한 통의 답장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은 조금 미안하다. 어쩌면 너는 그런 내가 차갑고 무성의한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백건대 나는 단 한 번도 너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요구했던 적은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네가 원해서 했던 일이었고, 네가 스스로 결정했던 행동이다. 그러니 이제껏 내가 너의 편지에 단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녀를 위해서 했던 행동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나 보다. 나는 그녀를 위해 나의 시간과 마음을 바쳤는데,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 무의미한 것들이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나의 그 행동들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행동들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녀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며, 내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나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그녀에게 헌신적인 나의 마음을 나 스스로에게 자랑하고 격려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랑이다. 한 여인은 자신의 참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꼬리도 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도 버리고, 자신의 집과 고향까지도 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 결국 돌아온 것은 이웃나라 왕자님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상처뿐이었다. 인어공주의 헌신을 보고 있노라면, 풋풋하기만 했던 나의 스무 살의 나날들이 생각난다. 그녀를 위해서 했던 나의 행동들이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행동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이야기. 어쩌면 인어공주의 이야기도 나의 사랑 이야기와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었을까. 이웃나라 왕자님은 단 한 번도 그녀의 꼬리를 버리라고, 그녀의 목소리를 버리라고, 그녀의 가족과 고향을 버리라고 인어공주에게 요구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스무 살의 연애 이후로 나는 확실하게 얻은 교훈이 있다.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꼬리를 내어주지 말자고.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꼬리와 나의 목소리를 함부로 내어주지는 말자고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상처를 받은 나 역시, 인어공주처럼 어느 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말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