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다

소설 3화

by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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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다. 얼굴을 외우는 데 재능은 없지만 그런 나도 반복에는 장사가 없나보다. 며칠 째 오시는 여자 손님이 오늘도 들어오셨다. 갈색 단발 머리, 풀어져가는 펌, 상의는 니트, 하지만 더워보이지는 않는 니트, 바지는 청바지다. 작은 키, 동그란 얼굴. 손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깨에 메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등에 메고 있는 것도... 그렇지, 없다.


그녀는 그렇게 훌렁 와서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 하나를 주문해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창을 본다. 다음 날은 다른 커피를 주문하고 똑같이 창을 보며 멍을 때린다. 그리고 한참 뒤에 훌렁 가 버린다.


그녀의 커피 주문에는 특별한 원칙이 있다. 적어도 며칠 동안 그녀의 주문을 받아본 바에 따르면, 일단 무조건 블랙 커피만 주문한다. 나는 그녀가 라떼나 아포가토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메뉴를 주문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하루는 따뜻한 커피, 다음 날은 아이스 커피로 번갈아가며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메뉴는 절대 겹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둘, 핸드드립 셋, 콜드브루 둘. 내 카페의 블랙커피들이다. 메뉴판의 글씨를 차례차례 격파하며 그녀가 돌격해 온 것이 연속으로 6일, 아메리카노는 벌써 전부 쓰러졌고 핸드드립 첫번째 메뉴까지 쓰러졌다. 그녀가 메뉴판의 메뉴 순서대로 주문하기에, 다음 메뉴도 예상이 간다. 일주일째인 오늘은 케냐 더블에이 핸드드립을 준비해야겠군... 그러던 차에 그녀가 의자를 끌고 앉으며 메뉴를 주문한다.


"케냐 더블에이 핸드드립이요. 따뜻하게 주세요" 그렇지, 내 예상대로다. 내 카페는 선주문 후결제 방식이다.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마시기까지의 경험이 연속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방식을 택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카드리더기쪽의 메뉴판을 보지 않고 주문을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녀가 메뉴판을 외웠나 보다. 그녀의 목적은 대체 무엇일까. 산업 스파이? 카페의 메뉴들을 카피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돈과 시간이 무척 많아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면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커피를 내려드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몇 시간의 정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후 그녀가 카페를 나서면서 꺼낸 한 마디 때문에 내가 밤잠을 설치게 될 줄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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