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좌충우돌 직장생활
서울생활 5년 차, 회사 생활의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한참 신규 매장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보내던 시기, 매주 금요일 전체 주간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박 팀장, 일하는데 직원이 더 필요하지 않아?”
“아 네, 지금 인원으로는 조금 힘드네요. 다른 분야로 한 명이 충원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즈음 나는 늘 바빴다. 통합되어 운영되던 팀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두 개 파트로 나눠졌고 내게 ‘팀장’의 직책이 부여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에게 직책이 생겼고 그 무게에 대한 걱정과 고민 또한 빨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팀의 팀원을 뽑으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과 함께 잘해 나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시작점에서 했던 고민과 내린 원칙들은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지금까지도 일의 결정과 협업에 대한 룰이 되었다.
첫 번째 나의 동료가 된 친구는 엉뚱한 생각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과 결과물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또 더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설렘마저 들게 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처음 알게 해 준 기간이었다.
두 명의 팀으로 이루어졌던 팀은 회사에 관련된 많은 디자인 분야를 다뤄야 했다.
CI, 매장 디자인, 사인, 인쇄물, 판촉물, 광고 등 모두를 소화하고 있던 터라 늘 바빴고 바쁨속에서 시행착오에 대한 걱정과 결과에 대해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 5년 차 겨울, 다시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시기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 해 나는 인생의 큰 전환점인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 서있었다.
다음 해 1월,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각자 다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두 명의 동료를 충원을 하면서 우리 팀은 넷이 되었다.
처음에는 한 명을 충원하고자 했었던 계획이 바뀌어 두 명의 인원을 충원받았다.
뒷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 즈음 , 면접을 종료한 후 충원 단계에서 잠시 자리를 피해 달라는 본부장님과 사장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두 분의 결정 속에 나의 결혼에 대한 이슈가 작용했다고 들었다.
그 뒷이야기는 짧은 순간이 었지만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사회생활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시선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느끼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명의 인원이 다시 충원되었고, 또 다른 관계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책임이 부여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일이었기에 왠지 모를 가슴뜀과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 늘 공존했다.
새롭게 합류한 두 명의 동료들은 각자의 분야에 전문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결과물을 대하는 것에서 약간의 긴장과 자극을 연속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 나보다 더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을 내가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함은 뭐지?’
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들의 결과물을 두고 나는 어떤 피드백을 줘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이다.
‘과연, 나의 판단이 맞는 것일까?’
‘나의 부족함으로 갖게 되는 시행착오는 없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아 어리석은 고민을 그만두었다.
그 시간 대신에 나는 역할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해나갔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고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들과 함께 더 좋은 결과물을 제안하고 만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그것이 나의 역할이자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일의 확장하면서 나의 역할과 그들의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고민과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쳐갔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으며 5년 차의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팀장의 역할
소통을 위한 일, 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의 역할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 팀원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 제시한 방향으로 잘 갈 수 있도록 위, 아래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것
! 그리고 내부적인 갈등을 들여다보고 소통하며 해결해나가는 것
이렇게 스스로 세운 원칙으로 팀원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회사에서 기간별로 요구되는 일 외에 각자의 분야에 전문성을 띈 세 사람과 회사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일들을 제시했다.
혼자 할 때와는 달리 네 명의 인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와 영역이 달랐다.
팀으로 만들어지는 일의 결과물은 서로의 전문 분야와 아이디어들이 더해져 혼자 고궁 분투했던 결과물의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회사 내의 업무 영역 확장에 대해 함께 고민해가기 시작했다.
팀원과의 소통법
우리 팀은 회사의 브랜드를 만들고 관리하고 고객과 소통을 위한 일을 하는 팀이었다.
우리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은 리서치의 대상이었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세미나와 전시회는 좋은 정보의 장이었다. 그렇게 함께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와 기회들을 찾으며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술 마시는 회식 대신 새로운 공간과 맛이 있는 공간을 찾아 정보뿐 아니라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소통하는 방법을 만들어갔다.
방문한 공간에 대한 의견과 전시나 세미나를 통해 리서치한 결과를 팀원들 각자의 방식으로 공유하고 그 안에서 회사일의 접목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회사의 일에 접목하고 새로운 일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한 피드백은 최소화하고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함께 내린 아이디어로 만드는 결과물들은 결정과 작업의 속도 또한 빨랐고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며 계획에 맞게 진행되는 일은 성취하는 기쁨도 함께 가져왔다.
그렇게 서로에게 신뢰를 쌓으며 우리의 일하는 방법이자 소통의 방법이 되었다.
!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해 줄 것!
! 의견은 Ok! 비판은 No!
! 타임라인의 공유로 서로의 역할과 상태를 보여줄 것!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팀워크는 직장의 행복지수를 좌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원칙을 세우고 행동으로 보여주며 나부터 먼저 그 소통법을 실천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고 함께하는 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역할과 스스로에게 한 질문에서 답을 찾고 실천하며 팀을 운영한 방법은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일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눈앞에 많은 계획들을 그려나가고 있을 즈음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 ‘결혼’이라는 시기을 맞이하며 나의 직장생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주 추웠던 겨울, 1월 결혼을 했다.
차가운 성당의 공기를 뚫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격려를 받으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주말부부로 나의 반쪽은 지방에서 나는 서울에서 각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우리 언제까지?…’
서로 어떤 약속도 없이 서로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 체 서른셋이 되던 겨울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 오랜 연애 후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던 시기였고 우리는 각자 현재의 일을 해가기로 결정했다.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나의 직장생활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결혼 전보다 편안한 직장생활이었던 기간이라고 해야 하나?
연애의 다툼이 없는 직장생활은 마음의 작은 여유를 더해주었고, 주말마다 가는 지방행 기차는 기분 좋은 여행을 의미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부부로 그리고 나는 현재의 직장생활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 임신, 육아, 그리고…
새롭게 꾸려진 팀원들과의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으로 북적이던 8월이었다.
몸에 작은 이상을 감지했다.
몸에서 느끼는 변화, 뭔가 다르다. 예감은 적중했다.
새로운 생명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결혼 후 인지하지 못했던 앞으로의 생의 주기, 그 시점과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의 시기였다. 아이를 가진 행복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고, 반면 고민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시선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즈음 , 일찍 결혼과 육아를 시작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 임신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 키우면 내 생활은 없지 뭐,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일 년도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쯤 들어가면 괜찮아지려나?”
“집에서만 6년째야. 이제 뭘 시작하려고 해도 겁나네.”
결혼 전까지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구는 내 앞에 없었고 원하든 원치 않았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뭔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나 또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앞으로의 생의 주기에 다가올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아니야. 나는 이 시기를 잘 준비하고 나의 방식으로 만들어 갈 거야.’
점심을 먹으며 나누었던 친구와의 말을 곱씹으며 속으로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처음 접하는 낯선 생의 시간, 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열 달 후 태어날 새 생명을 건강하게 만날 수 있게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또한 명심했다. 현재의 시간은 새로운 생명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생의 특별한 시간을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간절하게 느꼈다.
잦은 회식과 야근은 최소한으로 줄여나갔고 그리고 하고자 했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해 업무분장을 새롭게 해 나갔다. 내가 앞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기를 계산해 각자가 맡아야 할 업무 영역과 분야에 대해 명확히 이관해나가는 일도 함께 시작하며 차근차근 다가올 현재를 준비해 가고 있었다.
‘결혼과 변화’
여자의 생의 주기, 육아와 함께 시작되는 시간과 시선
그 변화에 대해 적응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사회에서 ‘여자의 결혼’이란 그와 동시에 ‘임신과 육아’ 외에 많은 것을 내포한다는 것을 현실로 느끼며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처음 맞는 ‘나의 생의 주기’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by 박 마담의 ‘슬기로운 여성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