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베를린 납세자>를 출간하였다. 사실 출간된 것은 한 달 전이었지만 메이저 유통사에 업로드되기까지가 오래 걸려 홍보가 늦었다. 베를린에서 일하며 보낸 지난 5년 간의 삶이 책 한 권에 잘 정리되었다는 점이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책은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책 출판은 '부크크'라는 자가 출판 플랫폼의 도움을 받았다. 자가 출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을 직접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
책을 POD(Print on Demand; 주문이 들어오면 인쇄하는 방식)로 판매하기 때문에 저자가 투자할 비용이 하나도 없다. 그저 글 쓰고 플랫폼에 올리면 끝이다. 그 후에는 부크크가 알아서 유통 플랫폼에 올려주고 배송까지 해준다. 초기 비용, 재고, 유통망 뚫기에 대한 부담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종이책은 부크크를 통해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책이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같은 메이저 플랫폼을 통해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SNS 팔로워분들에게 책 홍보를 했을 때, 그분들이 익숙한 플랫폼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게 중요했다. (옛날과 달리 결제가 귀찮으면 그냥 안 사는 시대니까)
반대로 전자책은 부크크를 통해 진행하지 않았다(아직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 중이다). 종이책과 같은 플랫폼에서 한 방에 해결하고 싶었으나, 부크크를 통해 출판된 전자책은 메이저 플랫폼에 유통이 되지 않는다. 아마 전자책에 대해서는 플랫폼과의 계약이 안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부크크 전자책은 부크크 마켓에서만 판매된다.
부크크 책 만들기 메뉴로 가면 종이책의 스펙을 골라야 한다.
도서 컬러
내 책에는 텍스트만 들어가기 때문에 흑백으로 정했다(표지는 컬러로 가능).
사진이 들어가는 책이면 컬러가 필요할 것이다.
책 사이즈
<베를린 납세자>는 A5로 정했다. 그보다 작은 46판 사이즈도 고려해봤으나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져서 A5로 했다. 가로x세로 길이가 나와있으니 집에 있는 책들과 비교해보자.
종이 재질
- 표지: 아르떼 210g 무광코팅으로 했다. 무난하다.
- 내지: 미색모조지 100g으로 했다. 어째서인지 제작 페이지에는 이라이트 80g밖에 선택할 수 없다. 나중에 제작하면서 문의글이나 메일로 '내지 재질 바꿔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바꿔준다.
- 면지: 아무 내용도 적혀있지 않은 백회색 종이가 원고 앞뒤로 1장씩 들어간다.
- 샘플 신청: 화면에 종이 샘플 신청하기 버튼이 보일 것이다. 신청하면 우편으로 종이 샘플이 온다. 직접 만져보고 결정하자.
페이지 수
원고를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계산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직접 확인하고 입력해야한다. 나중에 바꿀 수 있으니 완전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여기에 페이지 수를 입력하면 책등 두께를 알려주니 따로 적어놓자(표지 작업 시 필요).
날개 유무
요즘 나오는 책에는 대부분 날개가 있다. 날개에는 보통 저자 소개나 발췌 문장 등을 넣는다. 웬만하면 넣는 것을 추천.
가장 중요한 단계다. 나는 한글 파일(hwp)로 제작하여 업로드했다. 워드 파일도 받고 있지만 출판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형식은 한글 파일인 것 같았다. 직접 작업해보니 한국어 글을 쓰기에는 확실히 워드보다는 한글이 괜찮았다.
원고 내용이야 당연히 직접 써야 하지만 페이지 형식은 부크크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을 활용하면 편하다. 부크크의 공지사항 페이지에서 '원고서식'이라고 검색하면 템플릿을 다운받을 수 있는 글이 하나 나온다. 거기서 다운 받자. <베를린 납세자>는 [한글서식]A5(국판)_부크크서식(선).hwp 파일로 작업했다.
폰트는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만든 코펍체(KoPub서체)를 사용하면 무난한 것 같다. 일단 저작권 신경쓸 필요도 없어 좋고, 가독성도 종이책과 전자책 둘 다 좋다. 제목 부분은 코펍돋움체, 내용 부분은 코펍바탕체로 하면 어울린다.
책의 표지는 매우 중요하다. 유튜브 썸네일과 같다. 무료 템플릿보다는 직접 만들어 올리자.
표지 일러스트의 경우 아는 디자이너에게 외주를 줬지만, 표지 전체에 대한 편집은 직접 포토샵으로 제작했다.
부크크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표지 사이즈 설명이 약간 애매하게 되어있어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A5 기준, 날개 있음, 291p)
[가로, 왼쪽에서부터]
여백 3mm
+ 뒷날개 100(이 중 3mm는 뒷표지가 접혀 들어온 부분)
+ 뒷표지 151(이 중 3mm는 뒷날개로 접혀 들어감)
+ 책등 19.042
+ 앞표지 151(이 중 3mm는 앞날개로 접혀 들어감)
+ 앞날개 100(이 중 3mm는 앞표지에서 접혀 들어오는 부분)
+ 여백 3
[세로, 위에서부터]
여백 3mm
+ 표지/날개/책등
+ 여백 3
*책등 사이즈는 책의 페이지 수에 따라 다르니 참고
*여백 부분은 인쇄시 잘린다
표지 파일을 올리면 미리보기가 나오는데, 미리보기 이미지는 (홈페이지 디자인 탓인지) 사이즈가 딱 맞게 표시되지 않는다. 대충만 참고하자. 나중에 최종본 샘플 파일이 왔을 때 꼼꼼히 확인하면 된다.
책 가격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다만 책 스펙과 페이지 수에 따라 최소 가격이 정해지니 참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 싶으면 나의 인세를 희생하여(ㅠㅠ)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손해 보는 수준까지 낮출 수는 없다. 인세를 거의 0원 받는 수준까지만 내릴 수 있다.
가격을 인하할 경우 납본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5,000원을 결제해야 한다. 출판할 때 한 번만 결제하면 되니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지만... 가격 낮추는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내야된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크크가 납본 보조금이라는 것을 받는 이유는 '정가를 인하한 도서의 ISBN을 발급하면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식으로 적자가 발생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을 받고 판매하는 책이므로 당연히 ISBN을(책 바코드 아래에 찍히는 번호) 받아야 한다. 미리 받아놓은 ISBN이 없다면 '부크크 대행'을 선택하면 된다. 추가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다. 나중에 ISBN을 발급받은 후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사이트에서 내 책의 ISBN을 검색해보자. 책 제목이 진짜로 검색되는 걸 보면 꽤 짜릿하다.
작성한 내용에 이상이 없나 확인 후 제출하면 끝이다. 이후부터는 간간이 연락 오는 부크크 담당자와 제작을 잘 마무리하면 된다(원고 파일은 안 깨졌는지, 표지 사이즈가 맞는지 등을 체크해준다). 주요 소통 채널은 이메일과 1:1 문의이며, 나의 경우 전화도 한 번 왔다(종이 재질 확인하기 위해). 책 제작이 얼마나 진행됐나 궁금하다면 '마이페이지 > 승인내역 조회'로 가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원고의 교정과 편집은 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잘 확인하자.
원고 제출 후 며칠 지나면 부크크 담당자에게서 최종 원고의 샘플을 확인해달라는 메일이 온다. 확인 후 승인하면 제작이 완료되며 바로 부크크 스토어에서 판매가 시작된다. 아직 외부 유통 전 단계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부크크 스토어를 통해 책을 주문해 실물을 확인하자.
외부 유통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크게 할 일이 없다. '마이페이지 > 승인내역 조회'에서 내 책의 '외부유통' 버튼을 클릭하면 유통 신청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마다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니 참고하자. <베를린 납세자>의 경우 예스24와 알라딘은 10일 정도 걸렸고, 교보문고는 거의 3주 이상 걸렸다.
외부 플랫폼에 책이 올라왔다면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저자 소개, 목차 등이 잘 등록되어있는지 확인하자. 확인을 마친 후에는 사람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예스24나 알라딘에 책이 올라온 처음 며칠간은 표지가 저해상도 이미지로 표시될 수 있다(자글자글한 저퀄리티의 표지를 보면... 구매욕구가 싹 사라진다). 이는 (아마도) 플랫폼 측이 일단 저화질 파일로 올린 후 나중에 부크크에게서 고화질 파일을 받아 다시 올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성미가 급해서 예스24와 알라딘에 고화질 이미지로 교체해달라며 표지 파일을 첨부한 메일을 따로 보냈다(담당 부서 메일 주소는 고객센터에 물어보면 알려준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다음 날 표지 이미지가 고화질로 교체되었다.
저자가 혼자 책 쓰고 출판까지 할 수 있으니 이제 출판사는 필요 없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쓰고 나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콘텐츠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유통과 홍보가 더 중요하다. 출판사는 내 책을 서점 매대에 올려놔줄 수 있다. 플랫폼의 메인 영역에 노출시켜줄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사람들 눈에 보이냐 안 보이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살 일도 없는 것이다.
또한 책 퀄리티가 (내가 직접 만든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원고 내용이야 전문가들이니까 당연히 그렇다 쳐도, 표지의 재질, 특히 선명도에서 차이가 난다. 부크크에서 인쇄한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과 비교하면 퀄리티가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POD 방식이 재고가 쌓이지 않아 좋긴 하지만, 배송이 일주일 걸리기 때문에 하루 이틀이면 배송되는 출판사 책들과는 경쟁하기 힘들다.
1. 부크크 플랫폼을 통하면 자가 출판을 손쉽게 할 수 있다. 예스24 같은 메이저 플랫폼에도 유통된다.
2. 부크크에서 전자책 제작도 가능하지만 외부 플랫폼 유통은 안 된다.
3. 스펙은 책 내용에 맞게 잘 정하자.
4. 표지 사이즈 잘 체크하자.
5. 가격은 정해진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6. 돈받고 팔려면 ISBN 발급받자.
7. 담당자와 소통 채널은 이메일과 1:1 문의. 전화도 올 수 있음.
8. 외부 플랫폼에 유통되기까지 2~3주 정도 소요된다.
9. 웬만하면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자. 하지만 그게 안 되면 부크크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