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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션을 쓰지 않는 이유

by 맨오브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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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산성 툴에 관심이 많다.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가입하고 여기저기 만져본다. "UI 깔끔하다" "이 기능은 여기서 베낀 거네?"라며 몇 시간씩 가지고 놀 때도 있다. 써본 후, 꽤 쓸만하다 싶으면 며칠 더 써본다. "이건 정말 괜찮다!" 싶으면 현재 쓰고 있는 툴에서 모든 걸 꺼낸 후, 새 툴로 이사한다.


노션(Notion)이 나왔을 때 "궁극의 툴!"이라고 생각했다. 생산성 툴 여러 개 쓰는 것은 귀찮으니, 하나의 툴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단다. 할 일 목록뿐만 아니라 메모, 문서, 프로젝트 아이디어 등 모든 걸 대통합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그리고 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이사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모으고 모아서, 나만의 완벽한 노션 공간을 만들었다. 이대로 평생 쓰면 모든 게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대통합을 마치고 나니 일단 뿌듯했다. 내 머릿속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이니 일목요연했다. 확인하고 싶은 정보는 언제 어디서든 노션 앱에서 검색할 수 있었다.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작성한 정보를 (약간의 규칙이 전부인) 정보 더미에 쌓아놨었다. 원하는 정보는 검색하거나 대충 감으로 찾았다. 그러다 노션에 모든 정보를 모은 후 꽉 짜인 규칙으로 정리해 놓으니... 새 정보를 추가할 때마다 어느 카테고리에 부합하는지, 겹치는 정보는 없는지 규칙부터 신경 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정보를 신나게 작성하기보다는, 내가 구축한 틀과 규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이 앞섰다.


라이트 한 기능도 쓰면 쓸수록 아쉬웠다. 예를 들어 노션에는 스프레드시트 방식의 테이블 기능이 있다. 표를 보기 좋게 만드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구글 스프레드시트처럼 여러 조건을 설정해 값을 필터링하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또 JIRA와 비슷한 칸반 보드도 제공하지만, 결국 JIRA만큼 강력하진 않다. 기존의 툴을 대체한다며 제공하는 기능이 대체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맛있는 뷔페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노션을 그만 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 가지만 계속 쓰다 보니 질렸다. 여러 툴을 쓰다 보면, UI가 비슷하면서도 제각각이라 "JIRA 프덕매는 왜 버튼을 여기에 배치했을까?" 같은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또한 각 서비스 제공자의 소통방식, 기업 운영에서도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는다. 약간 귀찮더라도 여러 개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 좋은데, 그걸 싹 통합해버리니 무미건조해졌다. 그래서 다시 여러 개를 쓰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많이 쓰지는 않는다. 용도별로 약 4~5개 정도.


이것저것 쓰다 보면 한 가지로 단순화하고 싶다. 단순화한 후에는, 다시 이것저것 써보고 싶다. 그러다가 또 단순화하고 싶어서 노션을 쓸지도 모른다.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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