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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로 할 얘기가 따로 있지!

by 맨오브피스


이메일은 편리하다. 채팅과 달리 내용을 충분히 생각하며 쓸 수 있고, 내 할 말만 하면 된다. 보내기 전에 내용을 얼마든지 수정해도 된다. 수정하면 수정할수록 "음~ 완벽한 이메일이야"라며 흐뭇해진다. 발송 버튼을 누른 후엔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인지 홀가분하다. 모든 것이 내 의도대로 전달되었고, 상대방도 고개를 끄덕이며 100% 납득할 것만 같다.


물론 이건 보내는 사람의 생각일 뿐,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메일을 대충 읽는다. 긴 이메일은 일단 읽기 싫다. 먼저 도착했다 한들 나중에 읽는다. 안 읽는 경우도 많다. 내용 해석도 읽는 사람 멋대로다. 빨리 읽기 때문에 맥락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나는 칭찬하는 말투의 "괜찮네요"를 써도, 상대방은 빈정거리는 말투의 "괜찮네요"라고 읽을 수 있다.


이메일이 편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1. 짧게 쓰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지금은 '정보의 홍수'인 시대다. 상대방이 내 이메일을 유심히 읽어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들 바쁘고 피곤하다. "앗! OO가 나에게 업무 메일을? 커피 한 잔 하면서 여유롭게 읽어야지~!!"라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 이동 중에 읽는 사람도 있고, 슬랙 채팅을 하면서 훑어 읽는 사람도 있다. 회의 중에 몰래 읽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간소 포장해야 한다. 마음에도 없는 날씨 이야기는 다 쳐내고, 본론 한 두 줄로 (아무리 길어도 네 줄 이하로) 끝내는 게 좋다.


예전에 처음으로 일본 업체들과 협업할 때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메일 서두에 계절이나 건강 이야기를 넣는 것이 예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메일을 보낼 때마다 안부를 묻곤 했었다. 주말은 잘 보내셨냐, 골든 위크 휴일은 어떠셨냐 등등... 그런데 매번 다양한 인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고역이었다. 결국 귀찮음을 이기지 못했고,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전부 빼고 본론만 쓰는 쪽으로 바꿨다. 결과적으로는 같이 협업하는데 아무 지장 없었다. 나중에 일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기계적으로 복붙 하는 인사치레 내용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 안부인사가 있든 없든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한다. 안부가 궁금하면 그냥 직접 만나서 묻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2. 정보 전달만 하자 (=의견을 묻지 말자)

'WHY로 시작하라'의 저자 사이먼 시넥의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주관적인 내용은 이메일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들어 이메일이 여러 번 오가고, 결국 오해를 풀기 위해 회의를 한다. 그럴 바엔 그냥 처음부터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생각을 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읽는 사람은 글쓴이의 말투, 표정, 손짓, 눈빛 정보 없이 문장만으로 글의 내용과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사이먼 시넥은 '객관적 정보는 이메일로, 주관적 의견은 전화나 직접 만나서 전달하라'라고 조언한다.


3. 받는 사람 수를 줄이자

가끔 수신인 참조(cc)에 수많은 이를 포함시키는 사람이 있다. 이메일 왔다 갔다 하는 내용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들 읽지도 않는다. 정말 필요한 사람 하고만 이메일을 주고받고, 도출된 결론만 요약해 모두에게 전달하자. 참조에 사람을 많이 포함할수록 나의 책임감이 덜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이해하지만, 그러지 말자. 다들 바쁘다.


4. 결론

슬랙의 등장으로 소통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음을 느낀다. 양측이 자기 할 말만 하며 오해가 생기는 상황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슬랙의 등장으로 이메일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슬랙 등장 7년이 지난 지금도 이메일은 건재하다.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정돈된 데이터를 공유하고, 외부 업체들과 소통할 때는 이메일을 많이 쓴다. 소통 방법이 이메일에서 슬랙으로 대체되었다기보다는, 소통 방법이 늘어난 셈이다.


이메일, 슬랙, 카톡, 전화, 화상통화, 직접 만나기 등 소통 방법은 많다. 너무 많아졌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서로가 서로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략법이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시안을 이메일로 보내 의견을 묻기보단, 직접 보여줬을 때의 리액션을 살펴보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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