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 "어떤 휴대폰 요금제를 써야 하는가?". 한국의 휴대폰 요금제 시스템이 복잡한 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나의 경우 일단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휴대폰 대리점에 들어가, 호구당하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담을 받다가, 결국엔 애매한 요금제에 가입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요금제인지 철저히 따져보지 않았다. 철저히 따지자니 너무 복잡했다. 대충 낼만한 금액이라 잊고 사는 게 편했다. 쓰는 데 딱히 지장이 없었고, 남들도 다 비슷하게 쓰는 걸 위안삼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마음가짐이 달랐다. 6년 가까이 독일에 살면서 '요즘 한국 인프라'에 대해 감이 떨어져 있었다. 더 객관적인 눈으로 분석해보고 싶었다. 느낌적인 느낌이 아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싶었다. 2019년 12월, 마침 크리스마스 연휴라 시간도 많았다. 아내와 함께 (집 근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 온 간식을 먹으며) 열심히 한국의 휴대폰 요금제 정보를 수집했다.
통신사 홈페이지의 요금제 페이지를 여러 개 읽은 후 내린 결론은 '일단 내가 전화와 데이터를 얼마나 쓰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데이터를 많이 쓰니까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필요해'가 아니라, '나는 한 달에 데이터를 평균 1.5GB 정도 사용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휴대폰 설정에 가니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란 건 생각보다 데이터 사용량이 적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와이파이를 연결해 쓰기 때문에, 실제 4G 데이터 사용량은 예상보다 적었다. 또 한국처럼 공공 와이파이가 잘 구축되어있는 환경에서는 사용량이 더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통신사를 고를까 고민하다가, '알뜰 요금제'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알뜰'이라니 올드한 느낌이 났지만, 선입견은 제쳐두고 상세 내용을 읽었다. 그런데 웬걸, KT/SK/LG 요금제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훌륭한 요금제였다.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쓰기 때문에 통신 퀄리티는 똑같고, 고객센터도 잘 갖춰져 있으며, 전용 앱도 있다. 공공 와이파이도 쓸 수 있다 (예: KT망 요금제면 KT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 단점이라면 휴대폰 공기계를 알아서 사야 하는 것과, 영화관이나 카페 할인 같은 혜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금이 워낙 저렴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가입한 요금제는 월 8,800원에 통화 200분, 데이터 2GB, 문자 100건을 제공해준다). 휴대폰은 독일에서 쓰던 픽셀2를 계속 쓰면 됐고, 신용카드나 통신사 혜택 같은 건 나의 경험상 그냥 돈으로 이득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알뜰 요금제를 가입하고, 아무 탈없이 5개월째 사용 중이다. 재밌는 건 아무리 주변에 권해도, 알뜰 요금제로 바꾸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의 부모님 두 분만 유일하게 바꾸셨다. 바꾸지 않은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알뜰 요금제는 뭔가 별로인 느낌'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내가 생각해도 '알뜰'이라는 단어에선 아무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선입견 섞인 느낌적인 느낌만 떨쳐내면, 월 2~3만 원을 아낄 수 있다. 느낌적인 느낌과 실리 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각자의 마음이지만, 난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한 번만 귀찮으면 매달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