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오브피스 May 19. 2020

당근마켓을 써봤다


독일을 떠나면서 스무 개가 넘는 물건을 중고로 팔았다. 책상, 침대, 플레이스테이션4, 컴퓨터, 밥솥, 믹서기 등등... 한국으로 가져오기 애매한 것은 모조리 팔았다. 주로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나 이베이 Kleinanzeigen 플랫폼을 사용했다. 페이스북에는 이용자가 아주 많다. 대신 약속을 어기거나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 200유로에 내놓은 침대를 30유로에 팔아달라고 떼쓴다). 이베이 Kleinanzeigen은 좀 더 상식적인 곳이지만 페이스북보다 이용자 수가 적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다 팔아치웠다. 약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잉여 물건 두 개를 발견했다.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 한 개와 닌텐도DS 게임 한 개. 게임기를 다 팔아버려서 플레이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처음엔 게임 매장에 중고로 팔아볼까 했지만, 꽤 오래된 게임들이라 사줄지 의문이었다. 사준다 해도 거의 헐값일 것 같았다. 계속 고민하다가, 문득 아내가 알려준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이 생각났다. 동네에서 중고 거래하기엔 딱이라고 들었다. 유튜브 광고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시험 삼아 게임 두 개를 중고로 올렸는데, 올린 그 날에 다 쿨거래로 팔아치웠다. 나는 그 속도감에 깜짝 놀랐다. 중고거래란 원래 독일 같이 느릿느릿,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일단 판매글 올리는 것이 쉬웠다. 물건 이름을 입력하니 관련 카테고리를 자동으로 보여줘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었다. 사진 올리는 것과 상세 내용 작성도 간단했다. 페이스북이나 이베이에 올릴 때는 질문사항도 많고 카테고리도 일일이 지정해줘야 돼서 번거로웠는데, 당근마켓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메시지 주고받기, 리뷰 남기기, 물건 상태 변경 같은 기능이 (과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 구현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답변 속도였다. 독일에서 중고 거래할 때는 소통에만 한 세월 걸린다. 소통하면서 여러 언어가 뒤죽박죽 섞이고, 영어 실력도 편차가 크고, 무엇보다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당근마켓에서 나의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의 답장 속도는 빛과 같았고, 다들 약속 장소에 제대로 나와주었다. 서로 리뷰도 착실히 남겨주었다. 걸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당근마켓 이외에도, 스무스한 한국 IT 인프라 경험에 종종 놀라곤 한다. 인프라를 사용자들의 익숙함에도 놀라곤 한다. 귀국한 지 반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적응이 덜 됐나 보다. 한국이 IT 強국은 아닐지언정, 생활 속 IT 침투율만큼은 세계 톱클래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알뜰 요금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