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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May 31. 2020

원격으로 조작하는 공기청정기, 세탁기, 에어컨


전셋집 살림을 구입할 때, 아주 좋은 기회가 있었다. 집 가전제품을 전부 삼성 것으로 사면 대폭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에어컨 모두 삼성 제품을 구입했다. 새 전자제품을 사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들떴다. 그리고 날 들뜨게 하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삼성의 스마트싱스(SmartThings) 앱이다. 이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앱으로 집 안의 가전제품을 조작할 수 있다. 냉장고는 몇 년 된 모델이라 예외였지만, 나머지 가전은 가능하다. 앱에서 와이파이 정보를 입력하고 동기화 과정을 마치니, 정말로 가능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폰으로 알림이 왔다. 공기청정기 바람세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에어컨을 무풍모드로 바꿀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사물인터넷이지!!" 라며 기술뽕이 주욱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요즘엔 앱을 실행할 일은 거의 없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 훨씬 빠르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나오는 멜로디가 푸쉬 알림보다 빠르다. 아내와 나는 대저택에 살지 않기 때문에 집 어디에 있어도 멜로디가 잘 들린다. 공기청정기는 버튼을 누르는 게 앱보다 빠르다. 바람세기는 어차피 '자동'으로 설정해놓기 때문에 굳이 미세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에어컨도 옆에 달린 리모컨을 쓰는게 앱을 실행하고 로딩을 기다리는 것보다 빠르다.


베를린에 있을 때도 그랬다. 와이파이에 연결할 수 있는 필립스 전구가 유행이었다 (아마 지금도 인기있을거라 생각한다). "오케이 구글. 불 꺼 줘"라고 하면 불이 꺼진다. 경이로운 기술이다. 전구, 목소리,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인터넷의 5박자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나는 필립스 전구를 사지 않았다. 매력 넘치는 그 기술이, 생활에 과연 어떤 보탬이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구 가격이 비싼 것은 물론, 늘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인터넷 연결이 끊기면 불을 켜는 것도 애를 먹는다. 물론 생활 공간이 넓어서 전등 스위치까지의 거리가 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다. 멋진 기술인 것은 맞다. 하지만 멋진 기술이 항상 유용한 것은 아니다. 스마트싱스도 아직까진 나에게 그렇게 유용하지 않은 그저 멋진 앱이다. 이 멋진 앱을 어디에 써먹을까 고민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더운 여름이 오면 퇴근하면서 집 에어컨을 미리 틀어놓는 정도일 것이다.


난 새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신난다. 하지만 그 기술을 즐기고,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다. 그 기술이 나의 일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야한다. 뭔가를 계속 유지해야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니까. 돈과 시간까지 투자해야하는 것은 억울하니까. 새 기술을 계속 가지고 놀고 관심을 갖되, 생활 환경은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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