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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Aug 18. 2024

디지털이 되살려준 가족의 추억

어릴 때 집에 SONY 캠코더가 있었다. 90년대 모델인데 어느 날부터 집에 있었다. 당시에 워낙 핫한 물건이라 아마 아버지가 덜컥 사 왔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부모님은 벽돌 같은 캠코더로 가족의 일상과 여행 풍경을 열심히 찍으셨다.


그리고 거의 25년이 지난 지금, 그 캠코더는 아직 부모님 서랍장에 놓여있었다. 한참 전부터 쓰이지 않았지만, 여러 번 이사를 하는 과정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물론 오래전에 고장 났기 때문에 배터리를 교환해도 켜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시면서도 끝내 고치시지 않고 그냥 넣어두셨다. 아마 귀찮으셨겠지. 촬영물을 담은 미니 테이프들도 진짜 벽돌이 되어버린 캠코더와 꿋꿋이 서랍장 내부를 지켰다.


나는 가족의 추억이 그저 잠들어있기만 하고 있는 상태와, '언젠가는 고쳐야지'라며 속만 끓이는 부모님이 답답했다. 그래서 몇 가지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런 옛날 테이프들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주는 업체들이 꽤 있었다. 전용기기를 사용해 테이프 속 영상을 파일로 변환, USB 스틱에 담은 뒤 집 앞으로 배송까지 해주었다.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만 원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 집에 다 같이 모여 '추억 상영회'를 열었다. 배송받은 USB를 스마트TV에 꽂아 복원된 파일들을 하나씩 재생했다. 화질이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고, 무엇보다 당시의 소리가 어린 시절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주었다. 집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 다 같이 밥 먹는 소리, 아이들 깔깔대는 소리 등등... 


나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 유실되지 않도록 영상 파일 11개 모두 구글 포토에 업로드했다. 이제 우리 가족의 추억은 구글의 미국 서버 한켠에 보관되어 있다. 구글 서버의 131.13GB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다. 휴대폰에서도 탭 한 번이면 볼 수 있다. 나는 디지털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기술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인간적인 순간들이 좀 더 자주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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