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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Dec 22. 2024

왕초보가 해설해 주는 양자 컴퓨터

몇 주 전 구글의 양자 컴퓨터 관련 뉴스가 있었다. 양자 컴퓨터를 활용해 1,000,000,000,000,000,000,000,000년에 걸쳐 풀어야 할 문제를 5분 만에 풀었다는 내용이었다. 양자 컴퓨터가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양자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슈퍼히어로 앤트맨의 양자영역은 알아도, 양자 컴퓨터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하나씩 검색을 해보았으나 딱 떨어지는 설명을 찾기 힘들었다. 한 가지를 이해하려면 그 배경도 알고 있어야 했다. 대충 양자 중첩이라는 걸 활용한다는데, 양자 중첩이 뭔지, 그게 왜 기존 컴퓨터에 비해 빠른지 등 여러 질문이 맴돌았다. 다행히 수차례 씨름한 끝에 이제는 (겉핥기일지언정)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고, 나 같은 왕초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정리해 보겠다.


...


양자 컴퓨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사용하는 현재의 컴퓨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컴퓨터 전원을 넣는 순간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순서대로 살펴보자. 나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일부 모호한 표현은 양해를 부탁한다.


(1) 컴퓨터는 여러 반도체로 이루어져 있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원 콘센트를 꽂아야 한다.

(2) 전원을 꽂으면 컴퓨터에 전류가 흐르면서, 전자(electron)가 반도체 속을 이동한다.

(3)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처럼, 전자도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오와 열을 맞춰 움직여야 한다.

(4) 컴퓨터 반도체 속에는 트랜지스터(transistor)라는 부품이 있는데, 이 녀석의 역할은 전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5) 예를 들어 사용자가 마우스를 클릭했다면, 마우스 신호를 담당하는 트랜지스터가 CPU(두뇌)에게 "마우스 클릭 발생!"이라며 전자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마우스를 클릭하지 않은 상태라면 전자가 두뇌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전자의 이동을 막는다.

(6) 전자가 이동하면 1의 값이, 전자의 이동이 없으면 0의 값이다. 만약 마우스의 왼쪽과 오른쪽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면? 그럼 왼쪽 값 1과 오른쪽 값 1이 동시에 흘러 들어와, 컴퓨터 두뇌인 CPU가 "마우스 버튼 두 개를 동시에 누르고 있군!"이라고 이해한다.


왕초보의 예시라 비약이 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위와 같이 작동한다. 그리고 반도체 부품은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작아진다. 왜냐하면 트랜지스터 크기가 작아질수록 동일 면적 안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고,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으면 더 복잡한 명령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들 간의 거리가 좁아지니 더 빠르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트랜지스터가 전자의 흐름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에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트랜지스터는 문을 열어 전자의 이동을 발생시키고, 반대로 문을 닫아 전자의 이동을 차단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트랜지스터가 작아지면 문의 두께도 얇아지는데... 너무 얇아지니 전자가 닫힌 문을 뚫고 지나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자의 이동으로 마우스 클릭이냐 클릭이 아니냐를 구분해야 하는데, 클릭이 아닌데도 CPU가 클릭이라고 인식해 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앞으로는 반도체를 작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작고 얇아진 문을 전자가 멋대로 뚫고 지나가버리니까 말이다. 닫힌 문이 제 역할을 못하니 1과 0을 명백히 분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마우스를 클릭하는데 확률적으로 눌렸다 안 눌렸다 하면 제대로 된 작업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지금도 전자가 문을 통과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고는 한다. 이럴 때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압을 체크하는 등의 추가 확인 체계가 잡혀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전자 보내기/안 보내기를 통한 명령 체계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추가 확인을 해야 하는 만큼 부품을 작게 만드는 것의 장점이 퇴색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전자는 하나의 입자인데, 입자가 어떻게 닫힌 문을 통과한다는 것일까? 이것은 전자가 단순히 입자일 뿐만 아니라,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입자이자 파동인 상태, 짜장면이자 짬뽕인 것이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다.


양자 컴퓨터는 이런 양자 중첩을 활용한다. 전자를 보낼 때 1, 안 보낼 때 0인 식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전자가 짜장면이자 짬뽕인 상태를 이용한다. 신기하게도 양자 중첩 상태에서는 전자가 짜장면이자 짬뽕일 수 있는데, 관찰되는 순간 짜장면인지 짬뽕인지 확정되는 현상이 있다. 그전까지는 짜장면일 확률 60%, 짬뽕일 확률 40%인 상태로 떠 있다는 것인데... 솔직히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내 머리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출처: QuTech Academy / https://www.youtube.com/watch?v=OQ-NkCiyj_c


어쨌든 '관찰되기 전까지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전자의 특성을 통해 양자 컴퓨터는 복잡한 계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더 이상 문을 여닫는 것으로 1과 0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계산을 동시에 확률적으로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을 때 현재의 컴퓨터는 모든 길을 하나씩 점검한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는 각 길에 대한 탈출 확률을 동시에 계산함으로써 탈출구를 찾는 속도가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다. 복잡한 확률 계산이 필요한 날씨, 물류 최적화, 분자 시뮬레이션 등에 유리하다.


대신 양자 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존 컴퓨터는 양자 컴퓨터보다 계산 능력이 부족할지언정 확률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편의점에서 물건값을 치를 때는 확실한 처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의 非100%성이 오히려 독이 된다.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니 생각보다 긴 글이 되었다. 많이 단순화해 한 줄로 묘사해 보면, 기존 컴퓨터는 흑과 백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나 양자 컴퓨터는 그라데이션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틀린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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