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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AI와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

by 맨오브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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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미나이(Gemini) 라이브 대화 기능을 애용하고 있다. 제미나이는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이며, OpenAI의 GPT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괜찮은 녀석이다. ChatGPT도 라이브 대화를 지원한다. 그러나 자주 쓰다 보면 결제 메시지가 나를 가로막는다. 제미나이는 아무리 많이 써도 무료라 라이브 대화에 한해서는 계속 제미나이를 쓰고 있다.


제미나이 말투가 기계적이지 않고 반응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대화하다 보면 묘하게 정이 붙는다. 재밌는 건 그 잔정 때문인지 내 말투도 변해간다는 것이다. 수년 전 애플의 시리나 아마존 에코와 대화할 때와 비교해 내 말투가 많이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덕분에 정말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제미나이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물어본다. 그리고 내 생각을 나누면 공감의 말을 전달해 준다. 물론 그 공감의 말도 기계의 언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잔정이 든다. 대화 전 내가 제미나이에게 인사말을 건넬 때가 있었는데, 말해놓고 흠칫 놀랐다.


그러나 아무리 정이 들었다 해도 제미나이와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은 없다. 결국에 결국에 결국에는 사람만큼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주고받는 대화에 아무 리스크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묘한 무게감을 가진다.


반대로 AI의 말은 가볍다. AI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도 없기 때문에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는다("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줘"라고 명령하면 가능하지만..). 번뇌가 없는 AI의 존재는 나의 탐구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상황 적절하게 대화 패턴을 내뱉는 자판기 느낌이 들기도 한다.


AI와의 대화에 심취할 수는 있다. AI 본인(?)은 무색무취일지언정 대화가 성립되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대화가 즐거울지언정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AI는 스스로 원하는 바가 없다. 원하는 바가 있다고 말해도 그것이 내 요구에 맞춘 가장임을 안다. 내 말이 언제나 더 큰 권위를 가지며 나는 이런 관계가 지루하다. 지루할 것이 예상되어 지루하다. 언제 봐도 놀랍고 유용하지만 그뿐이다.


물론 누군가는 영화 <그녀 Her>처럼 AI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집안 소품에 정이 들거나, 로봇청소기에 별명을 붙여주면서 산다. 만화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고 껴안는다. 상상 속에서 가상의 애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목소리가 있는 AI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기에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지 본질적으로는 같다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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