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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오브피스 Sep 06. 2020

잠자는 개발자 깨우기

업무를 마치고 슬랙을 껐다. 평화가 가득한 금요일 저녁을 맞을 준비를 했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하루는 늘 기분이 좋다. 벌써 주말 같은데 아직 주말이 아니어서 이득 본 기분. 아내와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하스스톤을 하다가, 책 읽다 졸려서 일찍 잤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일어나서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슬랙에 불이 나있었다. 간밤에 베를린 동료들의 대화가 40개나 쌓여있었다. 광고 업체 A의 매출이 갑자기 0 달러로 떨어진 것이다. 금요일 밤에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애쓴 모양이었지만, 결국 미해결 상태로 놔두고 퇴근한 것 같았다. 월요일까지 그냥 놔두면 매출 손실을 감안해야 할 시나리오였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뭔가 광고 설정에 실수가 있었겠지...' 30분 정도면 문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관련 데이터를 2시간 넘게 살펴봤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더 깊숙한 곳의 데이터를 확인해 줄 개발자가 필요했다. 나는 슬랙에서 페이저듀티(PagerDuty) 명령어를 입력했다.


페이저듀티를 사용하면 자동으로 당직 개발자에게 전화가 간다. 긴급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실컷 자고 있는 개발자를 깨우는 게 어째 좀 미안했다. 매출 손실 금액이 '긴급까지는 아님'과 '긴급' 사이에 걸쳐있어서 애매했기 때문이다. 또, 나는 게임 회사에 다닐 때 게임 서버가 다운되면 새벽에라도 일어나야 했다. 개발자가 서버를 고치는 동안 게임 유저들에게 계속 공지를 해주고 테스트해야 했다. 졸려 죽겠는데 잠들면 안 되는 고통을 알기에 더 망설여졌다. 하지만 결국 깨우기로 결정했다. 내가 어느 정도 데이터를 찾아놨기 때문에 개발자가 보면 금방 문제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잠에서 깬 개발자는 핵심 데이터를 슥슥 확인한 뒤, 어떤 설정을 변경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설정을 변경하니 바로 효과가 있었다. 다시 자러 가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문제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간단한 보고서를 쓰는 것으로 주말 일을 마무리했다.


매출 손실을 줄였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 뿌듯함을 핑계 삼아 치킨을 시켰다. 그리고 아내와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뜯었다. 비록 토요일에 일을 해버렸지만, 그 덕분에 굽네치킨의 고추바사삭을 먹을 수 있었으니 이득이라고 정신 승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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