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11월 12일. 플레이스테이션5(이하 PS5)가 발매되는 날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며 아침 운동 중이었다. 쿠팡에서 10시에 판매를 시작한다고 광고를 했기 때문에, 그전에 운동을 마치고 구매 전쟁에 뛰어들 참이었다. 정해진 횟수만큼 아령을 들었다 놓은 후 잠시 휴식. 쉬는 동안 휴대폰에 쿠팡 앱을 미리 실행해놓고 PS5 판매 페이지가 잘 표시되나 확인했다. 모든 PS5가 일시 품절 처리되어 있었다.
'10시 땡 하면 구입하기로 바뀌겠지?'
워낙 인기 제품이라 1초 만에 품절될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시 아령을 들었다. 그리고 휴식. 그새를 못 참고 봤던 판매 페이지를 또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엔 일시 품절이 아니라 구입하기로 바뀌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27분. 아직 10시가 아닌데 왜 구매 버튼이 활성화되어있을까? 이상했다. 시험 삼아 눌러봤다. 결제까지 전부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다. 로켓 배송이라 내일 새벽에 도착한다는 안내와 함께... 그리고 PS5는 정말로 집 문 앞에 도착했다.
'이전 세대 게임기 PS4에서 재미에 방해를 줬던 요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하루 종일 PS5를 가지고 놀면서 든 생각이다. 로딩이 심각할 정도로 빠르다. 홈 UI에서 게임 아이콘을 스크롤할 때 조금도 버벅거리지 않는다. 스토어의 게임 커버들이 빠릿빠릿하게 표시된다. 게임을 켰을 때 로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딩을 기다리는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너무 신기해서 게임을 여러 번 끄고 켜면서 빠름 그 자체를 즐겼다.
UI도 PS4에 비해 훨씬 깔끔해졌고, 모바일 연동도 매끄러워졌다. 이제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 로그인할 때 아이디와 비번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PS 앱을 통해 QR코드 로그인을 하면 끝. 물론 구매하는 것도 앱에서 전부 가능하다. PS4의 핵심 재미를 그대로 계승하는 동시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말끔히 치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세대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패드의 진동이다. 무료로 내장된 게임 <아스트로 플레이룸>을 플레이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리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이 좌우상하로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물에 들어가면 물이 퍼지는 느낌의 진동, 절벽을 올라갈 때는 딱딱한 돌을 만지는 느낌. 모래바람이 부는 곳은 모래 알갱이가 내 피부를 치는 느낌. 진동 하나로 이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할 줄이야. 진동 느끼는 재미에 플래티넘 트로피까지 쭉 달렸다. '새롭다'라는 느낌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가.
보통 차세대 게임기라고 하면 그래픽 향상에 가장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PS5는 PS4와 비교해 눈이 뒤집힐 정도의 그래픽 향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경험의 질이 전혀 다르다. 이전 세대가 작은 원룸+대형 TV 조합이라면, PS5는 같은 대형 TV를 넓은 아파트에 벽걸이로 설치해놓은 느낌. 훨씬 쾌적하고 몰입이 잘 된다.
498,000원이나 하는 비싼 물건이지만 정말로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는 확신이 여러 번 들었다. 오래오래 가지고 놀 물건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