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2)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
경기위원의 성화에 다른 팀과의 인사는 뒤로하고 첫 번째 홀 데파흐(Départ: 프랑스어로 출발. 티 박스*)에 올라갔다. 첫 번째 홀은 파 4*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홀이었는데 오른쪽에 숲을 끼고 왼쪽으로 커브 되는 좌측 도그레그* 홀이었다(아래 그림 참조). 오른쪽이 오흐쥬(OB) 존이기 때문에 오른쪽을 조심해야 하지만 페어웨이가 좌측으로 휘는 이런 홀에서는 약간 우측으로 공을 보내 놓지 않으면 다음 샷 때 시야 확보가 어렵다.
악셀이 어떻게 칠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첫 홀에 우리가 긴장할까 봐인지 아니면 아마추어들이 못할까 봐 주문을 추가하지 않는 것인지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샷을 치는데 집중했다. 어쩌면 스스로 긴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프로라도 아마추어 3명을 데리고 이끌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악셀이 어디로 공략할까 궁금했다. 강하게 날린 악셀의 티샷은 페어웨이 정 중앙에 떨어졌다. 도그레그홀에서 부담이 되었는지 가장 긴 채인 드라이버를 들지 않고 부와(Bois. 우드. 드라이버 다음으로 길고 멀리 가는 채)를 들고 휘둘렀다. 선수들처럼 장타자의 공은 살짝만 방향이 달라져도 멀리 가버리면 그 달라진 방향의 정도가 커지기 때문에 공이 숲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첫 홀의 긴장감 때문인지 부와를 들었던 것 같다. 공이 착지한 곳은 매우 좋은 위치이지만 왼쪽에 나무가 있어서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공략할 때 조금 잘 안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차례다.
‘리듬을 지켜서. 빠르지 않게.’
계속 주문을 외듯이 천천히 드라이버를 스윙했더니 공이 악셀 공 보다 더 그린 가까이 오른쪽 위치에 떨어졌다. 그린을 공략하기에는 악셀 공보다는 내 공이 위치가 좋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프로는 가장 뒤쪽 위치한 티 박스에서 티샷을 하고 나는 한참 앞에서 티샷을 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위치의 거리부터가 이미 차이가 상당하다. 게다가 악셀은 첫 티샷에 드라이버를 휘두르지 않아 일부러 거리를 더 길게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출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샷을 공략하기가 더 편했기 때문에 내 공이 더 좋은 위치에 내려앉았다고 볼 수 있다.
기욤과 알베르틴 차례다.
기욤은 스윙데세(Swing d’essai. 연습스윙 혹은 빈 스윙)를 5번이나 하고 클럽을 칠 것처럼 들었다 내렸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때마다 칠 줄 알았는데 치지 않았다. 한참 있더니 결국 공을 쳤는데 그 공은 오른쪽 OB 존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미루나무가 빽빽이 있는 곳이라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무들이 너무 멋졌지만 그 빽빽한 곳에서 공은 절대 다시는 못 찾겠다 싶었다.
‘너무 오래 서 있더라. 그러면 몸이 굳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회라고 긴장하고 있는데 말을 덧붙여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알베르틴이 티박스로 들어섰다. 알베르틴의 루틴은 길지 않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 있게 친 공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왼쪽 해저드로 들어가 버렸다. 풀이 깊어서 그 공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풀이 그냥 볼 때는 약간 갈대 같기도 하고 무릎보다 살짝 밑에 오는 높이에 찰랑거려서 그 물결이 너무 아름답기만 한데 공이 굴러 들어가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만일 찾는다 하더라도 로리 맥길로리*가 아닌 이상 홀이 있는 그린으로 공략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였다.
첫 홀부터 그런 샷을 쳐서 민망했는지 기욤과 알베르틴 둘 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기욤은 자신을 탓했다.
“기욤, 첫 번째 홀 첫 번째 샷부터 이러면 어떻게 해. 기욤, 정신 차리고 좀 잘하란 말이야. 마에, 네가 우리를 살렸네 고마워.”
프랑스 사람들은 골프를 칠 때 샷이 잘 안 되거나 게임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로 탓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하는데 기욤이 딱 그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실컷 자신을 탓하다가 돌연 나보고 고맙다는 말을 하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악셀이 말했다.
“알베르틴, 기욤, 앞에 초반 세 홀은 몸을 푸는 걸로 갈 거야?”
몸 푸는데 안나타난 그 둘은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기욤이 말을 꺼냈다.
“그래야지. 최대한 빨리 몸을 풀면서 적응해야지. 여기서 스트레칭도 좀 더 해볼게.”
악셀이 이어 말했다.
“지난 샷은 잊어버려. 기억에 가지고 있으면 그 홀에 집중하기 어려워. 샹블은 어차피 첫 번째 샷을 가장 잘 친 사람 자리에 다 공을 놓고 치는 거니까 마에 공이 다 우리 공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집중해 줘.”
그렇게 말한 대로 악셀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고 두 번째 샷을 홀컵 옆 20센티미터 되는 거리에 딱 붙여버렸다. 첫 번째 파 4 홀부터 파(Par)도 아니고 버디(Birdie*)가 기정사실이 될 예정이었다.
나의 두 번째 샷은 그린에 바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홀컵에서 멀지 않은 프린지에 붙었다. 웻지로 한 번 더 쳐도 되고 퍼터로 홀컵에 붙여도 될 상황이었다.
알베르틴의 두 번째 샷도 나와 비슷한 곳으로 공이 떨어졌고 기욤은 그린 앞쪽에 떨어트렸다.
기욤의 세 번째 샷은 그린을 넘겨버렸고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벌써 피로가 몰려왔다. 알베르틴의 세 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갔지만 롱 퍼트를 남겨두고 있어 파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나의 세 번째 샷이 예상대로 홀컵 근처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붙었다.
“마에, 이거 파하자. 꼭 홀컵에 넣어보자. 알레(Allez. 프랑스어로 격려하는 말) 마에”
격려긴 하지만 듣고 있자니 약간 부담이 되고 있었다.
“쉿, 우리 모두 조용히 기다려주자고.” 이때 오히려 기욤이 이런 말을 꺼내 주었다.
모두가 숨 죽인 순간. 내 퍼터에 나비가 앉았다. 이건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나비는 금방 떠났고 퍼터를 들어 살짝, 아주 살짝 시계추 같은 리듬으로 공을 쳤다. 홀까지 거리는 1미터가 남았지만 옆 경사가 있어서 공이 길게 돌았다. 그러다 홀로 천천히 미끄러져 가는 것 같았다. ‘아 빌귈(Virgule. 프랑스어로 쉼표라는 뜻)이다.’ 쉼표 모양처럼 들어갈 것 같지만 홀컵 옆에 작은 높낮이에도 공이 홀 겉만 훑고 지나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흘러나가는 줄 알았던 공이 홀컵 옆에 울퉁 불퉁한 부분이 있었는지 다시 튕겨 들어와 컵에 떨어졌다.
“브라보! “
“마니피크 (Magnifique. 프랑스어로 멋지다는 말)”
“빌귈이었는데 들어갔어! 엑셀랑 (Excellent. 프랑스어로 훌륭하다는 말) 마에”
‘아, 다행이다.’ 숨이 멈춰졌다가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악셀도 퍼트를 하고 버디로 홀을 마무리(홀아웃*) 하였다.
이렇게 1번 홀에서 버디와 파가 이미 나온 상황에 알베르틴과 기욤은 더 이상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4명이 한 팀인 샹블에서는 한 홀의 2개 이상 가장 좋은 점수를 팀의 점수로 기록하기 때문에 현재 파(par)도 하기 힘든 거리에 공을 둔 알베르틴과 기욤이 더 이상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내 공도 파 퍼트라고." 말하며 알베르틴이 공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틴, 더 이상 치지 않아도 돼. 내가 버디했고 마에가 파 했잖아.” 악셀이 설명하였다.
“응 나도 파라고. 나도 넣으면 파잖아.” 알베르틴이 고집을 부렸다.
“뒷팀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출발하고 다음 홀에서 공략하자.” 악셀이 알베르틴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달래 보았다.
“내 공도 파 공이라고.” 그런데 알베르틴은 물러설 조짐이 전혀 없었다.
“그래 그러면, 한번 해봐.”
실갱이를 하는 것이 시간을 더 끄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악셀이 알베르틴에게 쳐보라고 말하였다.
그러고 알베르틴이 공을 치는데 공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보다 홀과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경사가 많네. 다음에 경사가 보이면 나에게 말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네.”
알베르틴이 굳이 고집을 부려 퍼트를 해놓고는 괜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알베르틴, 좀 얌체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거기서 무어라고 말하기 곤란해 그냥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걱정 마.” 악셀이 대답하였다. 말이 “걱정 마”라고 하는 것이고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그만해”가 맞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기욤 볼에도 발그라하게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다.
겨우 1홀인데 남은 17홀은 어떻게 진행될지 갑갑함이 조여왔다. 경기 스코어와 분위기가 상반되어 앞으로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파 4: 숙련된 플레이어가 4번의 샷을 쳤을 때 공이 홀로 들어간다고 여기어 4번 칠 경우 파로 인정되는 홀을 말한다.
*티 박스 (Tee box): 티샷을 하는 곳.
*티샷 (Tee shot) : 각 홀 마다 처음 치는 샷을 말한다.
*도그레그(dog leg): 개의 다리처럼 페어웨이가 직선이 아닌 꺾여있는 형태를 말한다. L자 또는 V자로 꺾여있으며 페어웨이가 왼쪽으로 꺾이면 왼쪽 도그레그 페어웨이가 오른쪽으로 꺾이면 오른쪽 도그레그라고 한다.
*로리 맥길로리(Rory Mcllroy): 북아일랜드 출신의 골프선수로 어릴 적부터 골프 신동으로 불렸으며 PGA의 수많은 우승과 더불어 4대 메이저대회(US Open, PGA Championship, The Open Championship, Masters tournament)에서 우승하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이다. 100주 이상 전 세계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버디(Birdie): 파 4 홀에서 3번 공을 쳐서 홀에 넣는 경우 ‘버디’라고 한다. 이럴 경우 점수를 -1로 기록한다. 같은 홀에서 만일 4번 공을 쳐서 홀에 넣는 경우 ‘파’라고 하는데 이럴 경우 점수를 0으로 기록한다. 골프는 높은 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낼 때 이기는 게임으로 당연히 버디를 하면 파 보다 잘한 것이고 한 타를 더 줄인 것이 된다.
*홀아웃(Hole out): 한 홀에서 플레이가 완료되는 것을 의미하며 퍼터로 공을 홀 안에 최종적으로 넣어 그 홀의 플레이를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
[글쓴이의 말: 새로운 글의 연재로 인해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는 앞으로 사정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업로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