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3)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
알베르틴은 이번 프로암 대회 내내 총 4개의 OB 중 3개를 혼자 기록했다. 예상했던 대로 팀 점수를 내는데 단 한 점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알베르틴 개인으로 보자면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샷을 할 때마다 "엘레 벨 (Elle est belle!)"이라고 외쳐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라도 달래주지 않으면 "나 전에는 진짜 잘 쳤는데. 예전엔 공이 200미터씩 나갔어. 늙어서 그래. 이제 정말 안 되나 봐." 라는 푸념을 멈추지 않았다.
집중해서 한 점씩 내는 것도 어려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달래어야 할 어린아이가 한 명 같이 팀에 있는 기분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런 알베르틴을 기욤은 표정으로 잘 달래주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하고 눈을 맞추고 웃으면서 잘 돌보아 주고 있었다.
‘도대체 저 둘 뭘까? 왜 기욤은 알베르틴을 극진하게 대하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코스 내내 했던 것 같다.
중간에 예쁜 석재 다리도 있었고 조각상들과 예전 울타리로 썼던 멋진 돌 구조물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알베르틴은 악셀이 플레이할 때마다 어떠한 감탄사도 표하지 않았다. 심지어 8번 홀에서는 악셀이 300미터 가까이 되는 티샷을 쳤는데도, 알베르틴은 "공이 왼쪽으로 가버려서 사라진 것 같다"며 딴청을 부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흰 공이 페어웨이 한 중간에서 아주 잘 보이고 있었다.
12번 홀에서 프로인 악셀의 공이 너무 멀리 가서 숲에 들어갔다.
이런 일은 프로암에서 생각보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알베르틴은 공을 같이 찾아줄 생각도,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없어졌을 거야 해 때문에 역광이어서 못 봤어. 그래도 너무 저쪽으로 가는 것 같더라고. 시간 너무 많이 걸려 찾지 마 그냥 기욤 공으로 치자.”
진짜 황당할 노릇이었다.
아, 깃발 사건도 꽤 당혹스러웠다.
그린에서 홀을 조준할 때 플레이 하는 사람에 따라 깃발을 꽂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플레이한다. 이건 각자 습관이랑 선호도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고 깃발을 그냥 빼버렸고, 다른 플레이어가 칠 때도 다시 꽂아 놓지 않았다.
“알베르틴 깃발 좀 다시 꽂아줄래?” 정중하게 부탁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아 미안해. 그럴게. 하지만 이렇게 거리가 짧은데 깃발을 다시 꽂아야 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고 있자니 절대 다시는 같이 골프를 치고 싶지 않았다.
14번 홀을 돌 때 골프장 잔디를 가꾸기 위해 퇴비를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그 냄새보다 알베르틴의 행동이 더 고약했던 것 같았다. 나도 퇴비처럼 푹푹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짜증에 얼굴에 주름은 점점 깊어진다. 비가 그치고 습기도 걷히고 이제 해가 쨍하고 비추고 있는데도 그 햇살마저 거슬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처참해지자 보다 못한 악셀이 알베르틴을 달래며 스윙 자세를 좀 봐주기도하고 경사를 함께 봐주는 등 약간의 억지 신경을 써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욤도 같은 정도의 관심을 받고 싶었는지 칠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오늘 왜 이렇게 안되지? 자꾸 손을 급하게 땡겨서 볼을 덮어 치는 것 같아.”
그래서 결국 기욤도 악셀이 여러 가지를 돌봐주게 되었다.
이 분위기에서 나 혼자 전략을 내고 깃발을 향해 조준해야 했다. 악셀도 그 둘에게 정신이 팔리기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점수 내기 어려워했다. 악셀이 이 골프장을 처음 옴에도 불구하고 다소 과감한 전략을 구사했는데, 알베르틴과 기욤은 그 전략을 따라가기 매우 버거워 보였다. 어쩌면 알베르틴이 이 골프장을 잘 안다고 해서 그런 전략을 펼쳤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앞에서 보고 있자니 악셀은 그 둘에게 전혀 불가능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15번 홀에서 그냥 물을 넘겨 쳐보라고 권했는데 그것을 결국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저 멀리 16번 홀로 가로지르는 길목에서 지점에 앙투아네트 팀이 보였다.
“브라보!”
“쎄땅 보 버디 (C’est un beau birdie. 멋진 버디라는 뜻)”
멋진 버디가 나왔는지 난리가 났다.
앙투아네트 팀은 팀워크가 단단해 보였다. 주먹 하이파이브까지 나누고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팀으로 보였다.
“마에 잘 되어가?”
가로지르는 길에 앙투아네트가 말을 걸었다.
“안녕 앙투아네트? 우리는 매우 좋아. 너희는 잘 치고 있어?” 내 말을 가로채 알베르틴이 대답했다.
사실 답할 기운도 없었는데 잘했다 싶었다. 준비도 많이했고 너무 기대하고 온 프로암이지만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게다가 이 골프장은 언덕이 너무 많았고 타는 카트 대신 손으로 끄는 카트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다. 아무리 전기의 도움을 받는 전동이라 하더라도 언덕에서는 그 피로를 피할 수 없었다.
앙투아네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너무 잘하고 있지. 마에 끝까지 잘 하고 이따 보자.”
사실 경기 내내 알베르틴과 앙투아네트를 한자리에서 만나 무슨 큰일이 나지 않을까 긴장했었다. 그러나 그것에 비해서 비교적 싱겁게 각자 플레이를 하러 떠났다.
그렇게 우예곡절 끝에 18홀을 모두 마치고 네 명이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원래 이렇게 끝나면 같이 식사를 하거나 음료수라도 같이 한잔 하는데 악셀이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분위기가 불편했던 것이 분명하다.
“악셀 너무 고생했어. 고마워.” 가겠다는 악셀을 배웅하며 말했다.
“아냐 네가 정말 고생했어. 너한테 고맙지. 사람들 모으고 등록하고. 나에게 제안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 악셀의 말을 듣자니 뭔가 미안했다. 내가 만든 상황은 아니지만 팀의 다른 멤버들의 매너가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악셀이 가자 마자 기욤이 말을 꺼냈다.
“솔직히 악셀이 오늘 잘 못쳤지.”
‘엥? 얘 왜 이러지?' 정말 기욤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기 처음이라잖아. 프로들도 나흘 연속 경기를 하면 매번 잘 칠 수는 없잖아. 좀 많이 잘 치고 싶었나 봐. 얼마 전에 프로암에서 앙투완 프로가 1위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오늘 힘이 좀 들어간 모양이야.” 나도 모르게 악셀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프로인데 그러면 안 되지. 직업의식이 부족하다랄까. 어리니까 그런 거 같아. 우리 골프장엔 그래도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골프장이 돌아가는 것 같아. 여기는 마샬도 안 돌아다니고 그린 관리도 솔직히 별로야.”
‘우와… 가자마자 바로 이렇게 말하다니.’ 너무한다 싶었다. 알베르틴은 주저 않고 마구 쏘아댔다.
“그렇지? 시간 관리가 이렇게 안되다니. 내가 오늘 마샬로 참여했으면 바로 들어가서 경고했을 거야.”
“그럼 맞아. 네가 우리 골프장 타임 관리를 너무 잘해주고 있어.”
알베르틴의 말을 듣고 보니 기욤이 왜 알베르틴과 가까운지 이해할 것 같았다. 기욤은 칭찬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었다. 알베르틴이 말로 남을 해하건 어떠건 간에 자기에게 칭찬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기욤 머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에게 칭찬해주지 않는 악셀도 기욤에게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 집에 가고 싶다.’
답답한 마음이 수도원 건물 바닥에 깔아놓은 붉고 검은 카페트 같았다.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가 싫어서 괜히 건축 구조물만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라벤더가 벌써 피는 건지 보라색 물결 화단이 있고 벌들이 잔뜩 꼬여 있었다. 보라색 꽃 냄새나 맡아보자 싶어 코를 그곳으로 향했다. 벌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느낀 날이었다.
그러는 동안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밥 맛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곱고 노릇하게 구워진 도미 속에 촉촉한 수분기가 감돌고 있었지만 음미하지 못하고 그냥 마구 씹어 넘겼다. 버터에 고소하게 구워서 달콤하고 풍미 깊은 당근도 물컹 물컹 몇 번 씹고 삼켰다. 이 정성스럽게 준비된 도미와 당근에게 미안한 느낌이랄까?
'오늘따라 미안한 대상이 많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서로를 추켜세우기 바쁜 알베르틴과 기욤의 대화에 끼인 나는 억지로 입가의 미소만 살짝 띄워 놓았다. 그리고 머리를 완전히 비운 뒤 보이는 자연과 건축물에만 집중했다. 중간 중간에 "아 위(Ah oui. 아 그렇구나)" "쎄브레 (C'est vrai? 진짜야?)" 처럼 가끔 추임새만 넣어줬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댓가로 예를 갖추는데 남은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다행히 밥 먹고나니 순위발표의 순간이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우리는 당연히 별로였다. ‘그런 팀워크를 가지고 점수가 좋을 리가 없지.’ 뒤에서부터 세는 게 더 빠를 순위였다.
‘처음에 진짜 출발 잘했는데.’ 아쉬움만 남았다.
그런데, 드라이버 거리 1등을 뽑는 시간이었다.
“드라이버 거리 1등, 마에!”
어리둥절했다. 드라이버 거리를 꽤 내기는 했지만 우리가 다소 일찍 출발한 팀에 속해서 뒤에서 나보다 더 멀리 보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드라이버 1등 상품은 생각보다 좋은 것이었다. 수도원을 개조한 스파에서 스파 이용권과 마사지를 상품으로 받았다.
“축하해.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아까 진짜 멀리 가더라.” 귀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축하해.”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애매한 알베르틴의 얼굴은 안보는게 낫고, 축하말도 안 듣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귀를 막을 수는 없으니 이미 들었고, 들은 말에 대답으로 고맙다고 했다.
“이제 2등을 발표하겠습니다. 2등은 시릴 프로가 이끄는 팀입니다!”
'앙투아네트 팀이 2등을 했구나.'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상품은 비 오면 골프 가방에 씌우는 덮개였다. '그냥 비닐 조각이다' 싶지만 골프 용품을 직접 사려면 항상 가격이 좀 있기 때문에 상품으로 이런 것을 받으면 참 감사하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이어서 나도 덩달아 기뻐졌다.
1등 팀은 다른 골프장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앙투아네트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그중 한 사람이 상품으로 받은 골프가방을 들고 앙투아네트에게로 가서 자랑하는 모양이었다.
“잘 됐네. 경기 잘했구나. 그 가방 내가 정말 받고 싶었는데. 내 가방 너무 오래돼서 내가 필요한데.”
앙투아네트가 진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1점 차이로 1등을 놓쳤기 때문이다.
앙투아네트는 그래서 크게 축하한다고는 말 못하고 '잘됐네, 잘했네'로 마무리한 것 같다.
앙투아네트의 솔직함에 웃음이 났다. 그 가방 진심으로 갖고 싶었나보다.
굳이 자랑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앙투아네트 앞으로 가방을 가지고와 이야기하신 분도 앙투아네트와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아쉬워하는 앙투아네트 표정을 보더니 뭔가 빙그레 웃었다가 금방 또 다시 무언가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자기 팀이 모인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 앙투아네트를 뒤에서 쳐다보던 알베르틴이 또 다시 무언가 소근소근 기욤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 정도 솔직함이 이 사람들에게 이토록 불편한 걸까? 무례한 것도 아니고, '잘됐다, 잘했다' 해줬잖아. 난 솔직해서 좋은데.’
앙투아네트가 내 옆으로 와서 다시 말을한다.
"내 가방 썩었어 벌써 9년 썼는데 다 떨어졌는데 내가 가방이 필요한데... 너무 아쉽다. 퍼터 하나만 더 잘 칠걸."
'썩었다고 표현하다니.' 듣고있자니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