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 9.

영화계 사람들 그리지엘 부자와 앙투아네트도 같이

by 마누아 브르통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


멀리서 그리지엘 부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앙투아네트도 1번 티박스 근처로 걸어간다.


“저기 오네, 로랑, 드니, 안녕? 잘 지냈어?”

앙투아네트는 로랑과 드니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며 비즈(양쪽 볼을 맞대며 하는 프랑스식 인사)를 했다.


“여기는 마에라고 해. 엄청 쌩빠*(Sympa)하고 골프도 잘 친다고.”

'어라? 잘 친다고 말하면 좀 부담되는데. 왠지 잘 쳐야 할 것 같잖아.'


“앙투아네트, 지금 내가 잘 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하하, 아니 잘하잖아. 그리고 마에 여기는 로랑 그리고 드니.”


“안녕 마에, 나는 로랑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우리 튀뚜와예(반말) 해도 되지?”

“아 당연하지.” 당연히 그렇지 세 사람은 말 놓는데 나 혼자 부부와예(존댓말)하면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될 수 있기에 흔쾌히 그러자고 하였다.

“안녕 마에, 나는 드니라고 해. 반갑다”

각자 인사 뒤엔 모두 한 명씩 비즈를 하였다.


이웃 같은 친근함, 로랑과 드니 그리지엘


너무 신기했다.

영화계 유명한 집안이고 전 세계에 주목을 받는 유명인이면 아무래도 잘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신경 쓰이고도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로랑 그리지엘은 늘어난 폴로티셔츠를 입고 머리도 감지 않은 듯했다. 그의 차가운 이미지와 완전히 반전되는 차림이었다. 게다가 그의 공은 자꾸 오른쪽으로 터져버려 숲으로 사라졌는데 그럴 때마다 민망한 얼굴을 하면서 크게 껄껄 웃었다.


로랑이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배우이지만 아직 영화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몇 년 전 칸느 영화제에서 로랑이 출연한 작품을 볼 수 있었고 티브이에서 그가 카메라 앞에 서서 인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족이 다 영화계에 있으니 아마 프랑스에서는 로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전 세계 어디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로랑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배역과 늘 잘 어울리는 연기를 해내는 배우인데 성격 또한 너무 친절하고 따뜻했다. 또, 따뜻한 것을 넘어서 털털함과 동시에 뭔가 동네 쌀집아저씨 같은 반전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로랑의 아버지인 드니 그리지엘은 로랑보다는 골프 실력이 좋았다.

일단 인덱스가 낮았고 그 정도 인덱스면 동네 유명하다는 싱글골퍼는 다 무찌르고 다닐 실력이지 싶다.

그런데 스윙자세가 정말 신기했다.

공을 치기 위해 채를 뒤쪽으로 빼는 동작인 테이커웨이*(take away) 같은 경우 너무 뒤쪽 안쪽으로 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드니 같은 경우에 손목을 사용해서 클럽을 몸 안쪽으로 훽하고 급하게 빼버리는 테이커웨이를 사용했다. 너무나 극단적으로 뒤로 빼는 테이커웨이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공이 착착 잘 맞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분명히 불안해 보이는 스윙인데 공이 너무 잘 간다.


그런 습관이 굳어서 일관성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한 걸까 싶기도 했고, 아니면 우연히 저 스윙이 본인과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시도해지 않고 정착한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드니 샷의 효과적인 결과를 보고 있자니 평소에 나는 왜 스윙자세 연습을 그토록 열심히 하려 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 신기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스윙을 자기 아들 로랑에게 계속 가르치고 있었다.

‘아 그래도 그것만은 하지말지…’

효과적인 결과는 드니에게만 나타났다. 드니에게 전수받은 그대로 이행하던 로랑은 공을 모두 오른쪽 숲 OB존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입가에 미소를 꽉물고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구경하면서 영향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스윙과 비슷해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 유명인을 만나 신기했던 것은 몽땅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공을 쳤다.


그러다 갑자기 드니가 성질을 내며 드라이버를 티 박스로 내리쳤다.

“아 쀠땅(Putain. 프랑스어로 욕). 공이 왜 저리로 가는 거야.”

‘어라? 이 감독 성격 있군. 하지만 골프가 안되면 열받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

골프 치는 사람이라면 그 성질이 나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기도 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알려진 사람인데, 자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니 신기하군.’

어떻게이건 어디선가 알려지고 난 후 모두가 드니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싶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프랑스 사람이라 그런 걸까? 아니지. 아니야.'


다양한 알려진 사람들


아주 예전에 "보나"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최초의 백화점 근처에서 드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드니 보리유라는 배우를 마주친 적이 있다.

서명이 있지만 AI 제미나이가 그린 그림. 유화스타일로 그려달라 해더니 가공의 서명도 같이 해줌.

처음에는 아는 사람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억이 안 나서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번뜩 누군지 떠올랐다.

‘우와 드니 보리유다.’ 하면서 놀래서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 배우가 매우 유명한 배우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혼자 당황하더니 줄행랑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눈만 마주쳤는데 줄행랑 하니 조금 민망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불편한 일이 많았겠지. 그렇지만 뭔가 민망한걸?'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경험이었다.


아 그리고 그 백화점이 있는 동네에서 예전 대선 후보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후보가 아주 옛날에 우리 학교에 와서 세미나를 했었다. 수업 끝나고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그 후보의 생각과 사상이 궁금해 그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때 그 후보는 무언가 상쾌하다랄까? 프레쉬하면서도 우아하고 자신감 있는 표정과 행동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말투 또한 설득력 있었다. 무언가 멋진 여성의 표본 같은 정치인의 모습이랄까?

그런데 그랬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백화점 동네에서 마주쳤다.


불안한 얼굴에 자신감 없고 이리저리 숨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자꾸 어디를 쳐다보는 거지?'

자기를 알아볼까 불안한 눈을 하고 자꾸 여기저기를 눈치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을 대각선 앞 뒤로 두 명을 두고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분이 정부 한 부서 주요직에 있었는데, 본인이 유치하려던 국제기구 유치를 실패했다. 결과가 그렇게 되고 여론이 나쁠 때 이긴 했다.


여하튼 드니와 로랑은 그들과 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프랑스 배우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이탈리아 출신 미녀 배우도 그랬던 것 같다.

10년도 더 전에 카페에서 그 배우와 어린 딸을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냥 동네에 있는 어느 엄마와 다름이 없었다.

그녀의 매우 아름다운 미모만 빼면 말이다.


동네에 여느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 안녕하고 인사하듯이 카페에서 그 배우의 아이에게 안녕하고 인사하였고 그 아이도 나에게 “봉쥬르”하고 인사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람들이 그들을 모르는척 해주어 과한 관심에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로랑과 드니에게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 줄 안다거나 내색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표현 하지 않는 것이 라운딩 하는 동안 그들이 편할 것 같아 그렇게 했는데 몰라준다고 서운해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잠시 예전에 알려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혼자 멍 때리고 있는데 로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운딩의 마지막


“빠빠(Papa. 프랑스어로 아빠를 부르는 말), 그만 성질내셔.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로랑은 웃으면서 성난 아버지를 달래고 있었다.

아빠와 아들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로랑이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들보다 사회적으로 아직은 너무 커다란 아버지에게 잘 보여야 하는 후배인 아들의 마음인 걸까.


'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안 하는데 혼자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 것 같네.'

집중은 저기 물 건너간 라운딩이었다.

‘어라? 벌써 18홀이야?’


그러다 금방 마지막 홀이 다가왔다.

몽골피에 골프장의 악명 높은 읽기 어려운 18번 홀 그린. 분명히 오르막인데 공이 내리막처럼 내려가는 도깨비 그린이다.

“꺄! 버디야 버디.” 그 어려운 그린을 귀신같이 읽어낸 앙투아네트는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쾌활하고 종알종알 말이 많은 앙투아네트가 라운딩 내내 있는 듯 없는 듯 꽤나 조용히 18홀을 마쳤다. 분명 앙투아네트가 그리지엘 가족과 잘 안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잘 안다고 해서 평소의 앙투아네트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앙투아네트 너무 조용한데. 배려하는거야 아니면 잘 아는 사람들과 있어서 오히려 편해 그런걸까?’


“너무 즐거웠어. 다음에 또 같이 치자.” 시간은 금방 갔고 18홀이 벌써 끝나 있었다.

분명 동네 주민과 즐거운 라운딩 1회를 한 기분이었다.

AI 제미나이가 나이 표현을 잘 못해서 한참의 대화 후에 얻어낸 그림.

그런데 돌아갈 때, 드니 그리지엘이 쌩하고 부가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그의 차만큼이나 ‘평소 일상에서 잘 볼 수 없는 희귀한 사람과 있었구나.’ 하는 실감이 그때서야 났다.


아들 로랑은 더 희귀한 차를 탔다. 차에 뒤에 구루마를 장착하고 구루마 안에 골프채를 넣어서 덮어서 온 것이었다.

‘저 생각은 왜 못했지? 나도 저거 하나 사볼까?’

주차공간이 작은 도시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가능한 플랜은 아닐 것 같았지만 굉장히 유용해 보였다.


‘다음에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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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빠(Sympa. Sympathique): 프랑스어로 정확히 한국말로 번역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말을 찾자면 성격이 좋고 호감형이다 정도. 이전 화에 설명.

*테이커웨이(take away): 공을 치기 위해 셋업 한 자세에서 공을 치기 위해 클럽을 뒤로 올리는 백스윙 동작에 시작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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