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아네트와의 만남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프랑스 골프장 몰골피에.
"내가 골프를 25년을 쳤어. 그리고 내가 시니어 대표팀 캡틴을 몇 년을 했다구. 반가워 나는 앙투아네트야."
내 친구 셀레스트와 둘이서 팀을 이루어 스크램블* 경기하러 왔더니, 우리 팀과 같이 출발하는 상대 팀의 한 할머니는 우리를 만나자마자 기선제압을 시작했다.
그냥 골프 캡 모자도 아니고 파나마 스타일에 스카프까지 테를 두른 모자를 쓴 것뿐 아니라 옷도 스포티한 옷이 아니라 엘레강스한 일반 의상을 골프에도 입고 온 앙투아네트.
'아니 25년을 친 거를 왜 만나자마자 이야기하는 거지? 물어보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썩 뭐라고 대꾸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경기 시작하면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만 자기 신상을 이야기하지? 좀 조용해 주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목으로 삼켰다.
이미 첫 번째 홀에 오기 전에 골프장 연습장에서 퍼팅부터 제일 긴 드라이버까지 신나게 연습하고 다시 웨지 거리까지 맞춰 놓고 왔다. 그렇지만 앙투아네트 할머니 말에 영향받지 않으리라 몸을 푸는 척 스트레칭하고 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여기저기 시선을 옮겼다.
"인덱스*가 26이 맞아? 왜 이렇게 잘 쳐?"
"한 달 전에 개인전 하고 나온 인덱스니 진짜 제 인덱스입니다."
잘 치면 잘 친다고 무어라 하고 손이라도 삐끗해서 공을 몇 미터 못 보내면 아예 내가 친 것을 못 본 것처럼 지나치신다. 매번 모든 샷 마다 하시는 반응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원래 치던 것보다 못 치는 것 같다.
셀레스트가 그런 나를 보다 못해 한마디 한다.
"그냥 신경 쓰지 마. 치고 싶은 대로 쳐."
그러던 중에 세 번째 홀에서 드라이버를 잘 날려 좋은 곳에 공을 착지시켜 놓았다.
그럼 이제 두 번째 타를 잘 쳐서 그린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탑볼을 쳐버렸다. 공이 뜨지 않고 굴러서 그린 앞 벙커 옆으로 들어갔다.
' 셀레스트가 잘 쳐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셀레스트가 그린 오른쪽 러프에 공을 착지시켰다.
안 맞는다. 내가 드라이버를 그렇게 잘 쳐서 좋은 지점에 뒀으면 두 번째 타라도 잘 쳐서 팀에 보템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친선경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기인만큼 잘하고 싶지. 셀레스트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네 번째 홀에 왔더니 중간에 개울이 있다. 내가 친 드라이버샷으로 내 공은 개울 직전에 경사지에 위치했고 셀레스트의 티샷은 공을 40미터 덜 보내긴 했지만 평지에 잘 착지해 있었다. 두 공 중에 어느 공을 고르느냐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어김없이 끼어드는 앙투아네트. 같이 개울까지 따라와서 공이 어디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평지에 있는 공과 비교하여 거리는 더 멀지라도 안전한 위치에 있는 공을 편하게 치라고 말해준다.
"나는 캡틴이잖아. 내가 볼 때는 거리보다는 더 안전하고 샷 하기 편한 곳에서 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내 경력이 많아서 말해 줄 수 있는 거야."
"어떻게 할래?"
셀레스트와 나는 망설이다가 앙투아네트 할머니가 추천한 곳의 공을 치기로 했다.
'그래 부드럽게 치는 거야. 천천히. 그냥 이 채는 멀리 가는 채야.'
3번 우드를 들고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부드러운 스윙에 공을 실어 보냈다.
거의 그린에 도착했다.
셀레스트 차례다. 셀레스트가 휘두르더니 갑자기 그린에 떡하니 공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방금 전에 셀레스트를 탓했던 내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방금 전 일은 모두 생각이 안 나고 그저 신나기만 했다.
"봤지? 선택 잘했지? 내가 말해준 게 마음에 들었으면 우리 점수 하나 까줘."
역시 앙투아네트 할머니. 농담이길 바라지만 진심을 스스럼없이 그대로 꺼내 놓는다.
말은 늘 뾰족 뾰족 삐쭉 삐쭉한 할머니의 말이지만 그 말을 받아 들고 보면 나도 모르게 따스하다.
그래서 그럴까 왠지 모르게 앙투아네트의 말이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자꾸 간섭하는 것 같고 도대체 지가 뭔데 이런 생각 드는 건 아니지?"
직접적인 말로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에 웃음이 났다.
"너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외국이름이 어려워 한번만 더 말해줘."
'이상하다. 내 이름은 프랑스에도 있는 이름인데. 내가 외국 사람이라는 이야기인가?'
"마니피크 (magnifique: 멋지다는 말)!"
물론 중간 중간에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초반에 기선제압이 왜 필요했을까 무색했을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도 보이고 서로의 샷을 칭찬해주기도 하고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앙투아네트의 팀 파트너는 파스칼. 파스칼은 분명 앙투아네트의 남편인 듯 보였다.
할머니의 어떠한 뾰족함에도 냉소적인 태도에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앙투아네트의 솔직하고 진솔한 장점이 있지만 까칠한 반면, 파스칼은 부드럽고 농담하기 좋아하며 까칠하지 않아서 이 커플은 균형이 좋은 커플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치만 파스칼의 실력은 앙투아네트보다는 조금 부족한 듯 보였다. 거의 앙투아네트의 공으로 점수를 따고 있었다. 25년이면 둘이서 평생 같이 친 거 같은데 파스칼은 앙투아네트에 비해 운동신경이 부족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툭툭 내뱉던 앙투아네트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셀레스트는 친구야? 너희는 커플인가?"
"나는 파스칼은 내 남편은 아니고 그냥 친구야. 나는 이혼했어 예전에. 그리고 혼자 살아. 원래는 전 남편이랑 같이 이 골프장 멤버였거든 그런데 지금은 나만 하고 있어. 뭐가 변하든 골프는 늘 한결같이 재미있어."
물어보지 않았는데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나에게 개인사를 줄줄 이야기하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잘 몰라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맞아요. 골프가 좀 시작하면 자꾸 하고 싶은 운동이죠."
그냥 뭐든 대꾸해야겠다 싶어 대꾸했는데 앙투아네트가 기대한 반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저찌 10홀쯤 갔을까? 골프장의 마샬*인 기욤이 카트를 타고 달려온다. 진행이 느려서 무어라 하려고 오는 것인지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자 다 서 보세요. 기념사진 찍어줄게요."
재미있다. 중간에 사진 찍어주는 이벤트가 있었던가?
최근에 기욤과 친해졌는데 그래서 누리는 혜택인 것 같기도 하다. 기념사진이 남아 오늘이 더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까칠하고 간섭쟁이이지만 소나무 푸른색만큼 솔직함이 선명한 키 작은 앙투아네트 할머니, 농담을 숨 쉬듯이 하는 파스칼 할아버지, 친구 셀레스트가 담긴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을 찍어준 기욤까지 모두와 함께 있어 사진에 담긴 햇살 같은 마음이었다. 경기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이 날 같이 따사로운 날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앙투아네트 물건이네. 기선 제압에 이어 뚝심 있게 끝까지 점수를 이어가는 것을 보니 과연 캡틴이다 싶다. 게다가 자기 팀 아닌 우리 팀에게도 기분 나쁘지 않게 정확한 조언을 건네는 것을 보면 캡틴의 자질을 가진 것이 확실하다 느꼈다. 시니어 팀의 캡틴은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다음에 프로암이나 팀 경기 나가면 앙투아네트와 나가야겠다 싶었다.
경기를 마치고 클럽 하우스로 돌아왔다. 장비를 정리하려는데 파스칼이 꼭 한잔 사고 싶다며 우리를 클럽하우스로 다시 불러들였다. 음료를 마시며 골프 중에 집중하느라 다 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앙투아네트 말로는 우리랑 치는 것이 좋았고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파스칼도 같은 말을 했지만, 파스칼은 원래도 다정한 사람이라 오히려 그 말이 인사치레 같았고 앙투아네트가 하는 말이 진짜 같았다.
“우리도 즐거웠어. 너의 엘레강스한 스윙 리듬에 우리도 빨라지지도 과하게 세게 치치도 않아서 오늘 잘 친 것 같아. 앙투아네트 덕분이야." 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앙투아네트의 장점을 생각해 냈다.
경기 내내 앙투아네트는 우리에게 뛰투와예(프랑스어로 친한 사람들에게 반말)를 했는데 나는 계속 존대했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 와서야 나도 뛰투와예를 시작했다. 처음 본 모습이 너무도 까칠한 앙투아네트이어서 처음 본 사람과의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까칠함에 숨겨진 따스하고 활짝 열린 마음을 느끼고는 나도 내 마음속 빗장을 해제해도 되겠다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주시하는 눈들이 있었다.
클럽 하우스 테라스에서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잔을 부딪히는 동안 우리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특히 앙투아네트가 말하는 것을 유심히 듣는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앙투아네트 칭찬하는 말을 더 열심히 듣는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왜 저런 얼굴로 쳐다보는 거지?’
* 스크램블 : 친선 경기 형식에서 많이 사용하며 2명, 3명 또는 4명이 한 팀을 이루어 경기 진행. 티샷은 각자의 공으로 티샷을 한 후, 티샷 결과 중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공을 하나 선택하고 나머지 공은 집는다. 선택된 공의 위치에서 팀원 모두가 다시 각자의 공으로 다음 샷을 하여 홀 아웃까지 반복하는 형식.
* 인덱스 : 핸디캡 인덱스로 골퍼의 실력지표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리상스(골프 장에서 골프를 치려면 자격증 같은 것이 필요 그것이 리상스)를 처음 구매할 주어지는 처음 인덱스는 54가 된다. 이후에 개인 경기를 통해 실제 타수에 따라 인덱스가 조정되고 잘 칠 수록 인덱스가 낮아진다.
* 마샬 : 골프 코스의 원활한 경기 진행 및 코스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코스의 경찰이자 경기 진행 감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