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아네트의 적군들 (1) 단계 1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프랑스 골프장 몽골피에.
지난번 대회에서는 결국 입상하지 못했다. '다음에 더 잘 치면 되지 뭐.' 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번에는 입상해 보겠노라.' 다짐하며 다음 대회에 대한 참여의사를 굳혔다. 프로암*이 열리는데 샹블* 형태라고 했다. 이번 경기는 몽골피에 골프장과 파트너십을 맺은 약 1시간 거리의 예전 수도원을 개조한 골프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피에 골프장 코치진 들이 회원 중에 나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그중 악셀이라는 코치 팀에 함께 하기로 했다.
프로암을 준비할 마음으로 연습 겸 주말 아침 일찍 몽골피에로 향했다.
크고 넓은 참나무 숲 전체를 포근하게 걸치고 있는 하얀 안개. 그 사이로 깊고도 긴 선명하게 투명한 아침 햇살이 녹아들었다. 그 빛 속으로 무엇인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몽골피에 골프장 마샬 기욤의 카트였다.
"잘 지냈어 기욤? 이번에 프로암 소식 들었어? 난 악셀 코치랑 같이 참여할 예정인데, 악셀이 몽골피에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나머지 팀원을 내가 모집하기로 했어. 어디서 두 명을 더 구할지 요즘 고민 중이야. 이미 팀이 다 만들어진 것 같던데."
"나 그거 관심 있어. 나도 가도 될까?" 내가 말 꺼내기가 무섭게 기욤이 같이 나가고 싶단다.
"당연하지. 그런데 코치들이 팀원 모을 때는 왜 진작 말 안 한 거야?"
"내가 골프장 회원이 아니라 직원인데 코치진들 찾아가서 먼저 참가하고 싶다고 말 꺼내기는 좀 조심스러웠어."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 나야 좋지. 같이 즐겁게 해 보자."
기욤이 한다고 해서 다행이었고 팀원을 이렇게 쉽게 갑자기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나 그런데 인덱스가 30이 넘거든. 경기 요건에 보니 28까지 가능하다고 적혀있던데 내가 참여해도 되는 걸까?"
"아 걱정하지 마. 그건 그런 게 아니고 인덱스 28부터는 30이 넘던 40이 넘던 28까지만 쳐준다는 이야기야. 그 이상 인덱스가 넘어가도 쿠 헝뒤(프랑스어로 coups rendus. 핸디캡 타수*)를 더 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일 뿐이야."
기욤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에 관한 질문뿐 아니라 그 골프장은 처음 가보는 거라면서 어디서 무슨 점심을 먹는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질문을 계속 쏟아내는 덕분에 나는 몸을 풀지도 못하고 내 티오프*를 하러 1번 홀로 들어섰다. '아, 기욤 대단하다. 신이 났구나 났어.'
'이제 팀원 네 명 중에 한 명만 찾으면 된다.' 지난번에 같은 팀으로 경기했던 셀레스트는 이번에 당직이라 시간이 안된다고 해서 한 명 더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앙투아네트가 있다. 앙투아네트라면 팀의 정신적 지주가 돼서 입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경기를 통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앙투아네트가 먼저 물어와 연락처도 교환했고 이제 연락을 한번 해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점심 먹으며 핸드폰을 꺼내 드는데 기욤한테서 연락이 왔다.
"네 번째 팀원 구했어! 아까 아직 팀원이 셋이라고 해서 알베르틴에게 말했어. 알베르틴이 시간 된데. 너만 괜찮으면 같이 하고 싶데."
'뭐지? 급작스러운 흐름은.' 한편으로 기욤이 나머지 팀원을 찾은 덕에 연락하는 수고를 던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괜찮다고 볼 수는 없었다. 몽골피에 골프장 인트라넷을 조회하니 알베르틴은 잘 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난 몇 번의 경기 결과가 공개되어 있어 살펴보니 알베르틴은 지난번 경기에서 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은 인덱스를 감안하여 핸디타수를 포함시키더라도 좋은 점수를 내어 팀에 기여할 가능성은 적다는 뜻이다.
'그래도 기욤이 너무 신난 것 같은데, 매번 경기를 할 때마다 입상이나 점수에 너무 의의를 둘 필요는 없잖아. 그래, 이번엔 좀 편한 마음으로 참여해 보자.'
결국 알베르틴과 같이 하는 것이 괜찮다고 답하고 말았다.
골프장에서 나오려고 채를 싣고 있는데 저 멀리서 기욤이 카트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멀리서 보아도 신이 난 기욤 옆에 누가 타고 있었다.
"여기가 알베르틴이야. 서로 알지?" 안다기에는 직접 이야기 한 적 없고 지나가는 길에 목례정도 한 사이였다.
"반갑습니다. 알베르틴입니다. 같이하게 되어 너무 기뻐요." 온화한 할머니 같이 보였다. 인자한 미소도 보이고, 친절한 말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누며 어색했지만 인사도 나누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막상 집에 오는 길에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탄산 없는 탄산수를 마실 수 없듯이 '아, 이런 게 아닌데. 경기를 하는 것은 경쟁이 중요한 목적이고 꼭 우승은 아니더라도 입상을 목표로 도전하고 싶었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집에 와서 정리하고 물 한잔 하려는데 기욤이 또 연락이 온다. '아, 또 도대체 어떤 것이 궁금한 거야?' 싶어 조금 귀찮아 지려는데 같이 경기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기쁘고 제안해 주어서 고맙다는 문자였다. 그리고 경기 등록하면 자기에게도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과 같이 하자 해놓고 다른 사람이랑 팀을 이룰까 걱정하는 마음인 것 같다. 약간 밝고 신이 난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정말 해보고 싶구나. 그래 다 같이 재밌게 해 보자.'
그다음 날 오전에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연습장에서 샷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욤이 공을 정리하다가 나를 보고는 신이 나서 프로암 이야기를 또 꺼낸다.
"연습 잘 되어가? 프로암은 어떻게 준비할 생각이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퍼팅부터 드라이버까지 종류별로 세션을 나누어서 연습해야지."
"그래 샷 종류별로 시간을 다 내기가 어렵지. 나도 이따 끝나고 연습하려고."
"그렇구나. 그런데 알베르틴과는 어떻게 친해진 거야? 나는 잘 모르는데."
"알베르틴? 나는 가끔 알베르틴이랑 필드 돌아." 둘이 언제 같이 필드를 칠 시간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기욤이 퇴근하고 같이 돈다는 건가?' 프랑스의 여름은 해가 저녁 9시 넘어까지 지지 않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구나. 나는 시니어들은 잘 몰라. 아, 파스칼이랑 앙투아네트 안다. 지난번 같은 출발조여서 알게 되었지. 네가 사진 찍어준 날. 고마웠어 사진."
"고맙긴, 그날 날도 너무 좋고 사진 찍으면 기념되고 좋을 것 같더라고. 파스칼은 너무 좋은 사람이지 사람이 진짜 덕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앙투아네트도 좋던데?"파스칼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앙투아네트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앙투아네트가 좋다고? 까칠하잖아. 내가 헷갈려서 '마리'라고 이름 한번 잘못 불렀다고 차갑게 째려보더니 자기 이름은 앙투아네트라고 막 머라고 하잖아." 기욤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던지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리... 앙투아네트? 하하. 째려볼만했네."
프랑스의 혁명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목되는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의 부인이자 진실인지 가짜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사치의 대명사이자 혁명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상시키도록 마리라고 불렀다니.' 째려볼만했을 것 같은데 기욤이 앙투와네트의 마음을 정말 생각도 못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앙투아네트 입장에서는 작정하고 놀리는 것 같기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뭐가 대수라고 이름이 헷갈릴 수도 있지 그렇게 무안을 주는지 너무 이상한 사람이야. 그 이후로는 나를 계속 너무 차갑게 대하잖아."
의외다. 기욤이 누군가를 뒷담 화하다니. 비교적 최근에 기욤과 친해져서 그에 대해 깊게는 모르지만, 시간이 없어 필드에 잘 못 나오는 나에게 티 시간을 따로 빼주고 바캉스 이야기도 같이 하며, 늘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다정하고 따뜻하면서 한 번도 남의 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프로암에 참가하게 되어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그저 밝고 맑은 도화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렇게 전혀 다른 이름, 어쩌면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 들 만한 이름을 불러 놓고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아이 같이 자기가 무안했던 느낌과 경험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니. 그래도 그 무안이 너무 컸었어서 그러는 건가 싶어 생각이 많아졌다.
공을 인조잔디에 놓고도 치지도 못하고 빈 스윙을 휘두르며 몸을 푸는 척 그저 먼 곳을 쳐다보았다. 마침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제 보았던 얼굴, 알베르틴이었다.
*프로암 (ProAm): 프로와 아마추어가 한 팀으로 같이 라운드를 하는 경기를 의미한다. 보통 프로 대회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열리는데 수요일이나 화요일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다. 프로 골프투어와 상관없이 프로암만 여는 행사도 많은데 투어 프로뿐 아니라 티칭 프로도 프로로 참여 가능하다.
*샹블 (Shamble): 프로암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로 베스트볼 방식과 스크램블 방식을 결합한 형태이다. 티샷을 모든 팀원이 각자 자신의 공으로 하고 나서, 가장 좋은 위치에 떨어진 공 하나를 선택한다. 나머지 팀원들은 자신의 공을 줍고 선택된 공이 놓인 지점으로 이동하여 샷을 한다. 그러나 스크램블과 다른 것은 두 번째 친 샷부터는 가장 좋은 위치에 떨어진 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홀 아웃까지 자신의 공으로 플레이한다. 다시 말해 첫 번째 티샷만 스크램블 규칙이 적용되고 그다음부터는 각자의 공으로 원래대로 플레이하게 된다. 다만, 스코어 기록 시에 각 홀마다 가장 낮은 스코어 (베스트 스코어)를 낸 사람의 스코어를 팀의 성적으로 기록하는 게임의 형태이다.
*핸디캡 타수: 골프는 실력차이가 나는 사람이 모여 같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실력이 낮은 선수에게 미리 주어지는 추가 타수이다. 예를 들어 파 4 홀에서 샷을 3번 해서 홀에 넣으면 버디이고 4번 해서 넣으면 파이다. 당연히 버디가 파보다 1점이 이득이다. 만일 숙련된 선수와 실력이 낮은 선수 두 명이 있다고 하자, 실력이 낮은 선수에게 어떤 홀에 핸디캡 타수 한 타를 부여하였다면 숙련된 선수가 파 4 홀에서 세 번 쳐서 공을 홀에 넣는 것과 실력이 낮은 선수가 네 번 쳐서 공을 홀에 넣는 것 모두 버디로 동일하게 기록된다. 왜냐하면 실력이 낮은 선수는 추가타수 한 타를 자신의 실제 타수(네 타)에서 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오프 (Tee off): 플레이를 시작하는 행위.
*파 (Par): 플레이 능숙한 골퍼를 기준으로 티샷부터 홀에 넣는데 필요한 예상타수를 말하는 것으로 홀의 길이에 따라 파 3, 파 4, 파 5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파 3의 경우 세 번 쳐서 홀에 넣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고 파 4의 경우 네 번 쳐서 홀에 넣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