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발렌타인을 잃었다. 더는 안돼

쥬스틴 이야기 1.

by 마누아 브르통

1. 나에겐 푸른 새벽,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괜찮을까?’ 며칠 전 갑자기 얼굴 하얗게 하고 병원에 왔던 가브리엘이 떠올라 전화를 걸어 볼까 싶은데 시간이 너무 이르다.


‘아 그런데 6시에 무슨 스터디는 자꾸 하자는 거지. 자기네들이 공부해야지.’ 한숨이 나온다.

‘새벽 출근도 지치는데 이 시간에 차들이 왜 클락숀을 울리는지.’ 도착하면 조는 애들 깨워가며 스터디할 생각에 더 피곤해 온다.


‘6월이 다됐는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파리의 날씨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날이 차가워도 창을 닫을 수는 없다. 여름이 다가오며 신선하고 푸른 냄새가 내 힘든 새벽을 상쾌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절대 가브리엘에게 이야기는 직접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이 푸른 내음이 나에게는 어쩌면 가브리엘 같다.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순간이자 공간 같은 것 말이다.


가브리엘과 이야기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마음에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삶에 이런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런데 며칠 전처럼 가브리엘이 쓰러지거나 아프고, 또 어느 날 이 세상에 없다면,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대학생 때 만났다.

학년 초반에 원하는 운동을 학교에서 배우도록 등록할 수 있다. 정원이 빨리 차면 등록하기 어려운 운동도 있었는데 재즈 댄스는 인기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재즈댄스 클래스에는 우리 학교뿐 아니라 다른 주변 대학 학생들도 섞여있었다. 그때 그 클래스에서 만난 것이 가브리엘이다. 이제는 안지가 거의 30년 가까이 되었다.


2. 가브리엘과 같은 친구, 발렌타인을 잃다.


원래 나에게는 가브리엘 만큼 친한 친구가 하나 더 있었다. 발렌타인. 발렌타인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같은 학교에 과만 달랐다. 내가 가브리엘에게 발렌타인을 소개해 주었다. 대학교 때 우리 셋은 수업 끝나고 퐁피두 도서관에 모였고 그 앞에 까페도 아이스크림집도 늘 같이 다녔다. 수업이 없는 날도 늘 붙어 다녔다. 바캉스마다 산으로 바다로 같이 놀러 다녔고 포도를 수확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매년 9월 초마다 보르도에도 같이 내려갔었다.


그렇게 꼭 붙어 다니던 우리 셋 중 발렌타인의 성격이 제일 밝았다. 새처럼 지저귀는 목소리에 하고픈 말도 많았고 장난도 가장 많이 쳤다. 우리가 자주 가는 까페 사장님의 별명부터 우리가 함께 아는 것들의 모든 애칭과 별명을 발렌타인이 지었다. 우리 중에 유행가를 가장 많이 듣는 친구였고 새로운 밴드가 나올 때마다 신이 나 우리에게 제일 먼저 소개해 주던 것도 발렌타인이다.


좌로부터 가브리엘, 발렌타인 그리고 쥬스틴 20대 시절.


그런데 발렌타인은 더 이상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숨을 잘 쉴 수가 없다. 이제는 10년도 더 된 일인데 말이다. 나와 룸메이트로 지내던 밸런타인이 하루아침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는 아침 일찍부터 비가 와서 습했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집에서 일찍 나왔고 발렌타인도 회사 간다고 나갔던 것 같다. 내가 집에 늦게 들어와 보니 발렌타인은 집에 없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아주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날 발렌타인에게 “어디야? 오늘 많이 늦어?” 이렇게 문자 한 통만 남기고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경찰에게 걸려온 전화로 너무나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발렌타인씨의 긴급연락처를 확인하고 연락드립니다. 쥬스틴씨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발렌타인씨가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네? 뭐라고요?"

마음속에 무거운 것이 갑자기 '쿵'하고 내려앉았고 그 순간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웠다.

그 꿈이 실제가 될 줄 몰랐다.


사실은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꿈을 꾸었다.

발렌타인이 꿈에서 말했다.

“쥬스틴, 나 이제 여기를 떠날 거야.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꿈에서 발렌타인이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너무 걱정이 되어 꿈에서 깨자마자 발렌타인 방으로 달려가 발렌타인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피곤을 못 이기고 깊게 잠이 든 날, 그날 그런 일이 생겼다.


‘미리 꿈도 꾸었는데 정말 그 일을 막을 수 있을 수 없었을까?`

그런 꿈을 꾸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때를 생각하면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내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지금도 그 시간을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감아본다.

'그 꿈만 안 꾸었더라도 조금 덜 내 탓 같을까?'


그 당시 발렌타인의 가족이 모두 해외에 살고 있어 내가 그 소식을 직접 전해야 했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메신저로 발렌타인 바로 밑에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통화로 목소리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메시지를 받고 걸려오는 발렌타인 동생의 전화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동생은 한참을 울었다.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울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나머지 가족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그대로 생생히 기억난다. 힘없이 늘어져있던 발렌타인을 독하게 삼킨 약품 냄새. 장례식에서 발렌타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읊어주던 친지들의 말. 아직 나의 코와 귀에 그대로 머물러 나와 매일을 함께 한다.


영화에서는 그런 가슴 무너지는 소식을 들으면, 소식을 들은 사람은 무너지고 만다. 실신하기도 하고 어쩔 땐 안타까운 순간의 기억도 잃어버리고 오열하고 실성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잠시 숨을 쉬기가 어려웠을 뿐, 마음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몰아치고 눈에 눈물은 계속 고였지만, 담담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3월의 꽃샘추위에 어떤 패딩을 입을지 고르고 안 감은 머리를 감고 주섬주섬 준비해 차키를 들고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손이 너무 시렸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차를 몰아 발렌타인이 있다는 곳까지 운전해서 갔다. 운전하는 동안에도 계속 눈물과 마음속의 깊은 상실감은 그대로였지만 차가 긁히지 않을 만한 넓고 안전한 자리를 찾아 주차했다. 내 슬픔과는 별개로 내 몸과 행동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고, 나의 환경도 평소 그대로였다. 단지 더 울고 싶어도 코가 막혀서 더 울 수가 없었다. 더 울고 싶어도 운전해 집에 가려면 더 울면 안 되었다.



너무 잔인했다. 발렌타인이 이제 곁에 없는데도 모든 것이 그대로 일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실신이라도 했다면 내가 덜 미웠을 것 같다.


발렌타인은 오래 아팠다.


그 시작은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식구가 많은 발렌타인의 가족은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었다. 적어도 발렌타인과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동생이 두 명 언니와 오빠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발렌타인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졌다. 원래 발렌타인의 언니와 오빠는 미국에 있어 왕래가 원래 적었지만 부모님과 동생들은 발렌타인과 그쯤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발렌타인에게 길고도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그렇듯, 처음에는 우리 친구들 모두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발렌타인이 이 어두움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발렌타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을 찾아온 어둠을 밀어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 깊숙이 비어있는 곳에 숨겨 놓고 다시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서 발렌타인은 자신이 속해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까지도 점점 더 어둠으로 채워나갔다. 어둠이 발렌타인보다 더 커졌을 때, 발렌타인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발렌타인은 그렇게 어둠 속에 머무는 것에 익숙해졌고 거기서 나오기 어려웠던것 같다. 그렇게 어둠은 그녀의 마음을 차지한 후 그녀의 몸도 차지하려고 했다.



“쥬스틴,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동시에 슬픈 것 같기도 해. 동생들이 보고 싶어. 엄마 아빠를 주말에 동생들과 같이 만나고 싶어. 난 그 시간이 매주 기다려졌었는데. 이게 속상한 마음일까? 이제 그럴 수 없는 건데 왜 받아들이기가 힘들지? 난 20살도 훨씬 넘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같아.”

그때 발렌타인의 목소리는 가늘고 긴 하얀 힘 없이 찢어진 천 조각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발렌타인이 복용해야 하는 약 종류가 점점 더 늘어났다. 약 때문에 부어있는 얼굴과 어눌해진 말투를 들으면서도 괜찮겠지 하고 바라보는 것 외에 내가 한 일이 없다. 그리고 괜찮아졌다가 또 안 좋아졌다가 하는 그런 주기가 반복되었고 그런 얼굴과 말투를 보는 날이 점점 길어지고 늘어났다.


그런 발렌타인이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상담도 받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기대해보고 싶었다.

'내 기대가 틀렸던 걸까?'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무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슬프다고 해야 할지 기억난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친구 장례식에서 저희는 모든 것이 기억나 울다가 모든 것이 기억나 웃었습니다. 여러분도 너무 보고 싶지만 다시 볼 수 없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나나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