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스틴 이야기 2.
그래도 그해는 정말 달랐다. 연초에 스키 바캉스도 같이 갔었다. 어쩌면 이제 발렌타인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눈에 덮여 웅장하게 보이는 여러 산맥을 바라보며, 그 차가운 눈 밭에서 다리에 알이 배일 때까지 같이 스키를 탔다.
"발렌타인, 너는 정말 빨라. 무섭지도 않아? 이렇게 가파른데."
"이게 다 어릴 때 눈꽃 반에서 갈고닦은 실력이라고."
대학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봐도 놀라운 발렌타인의 날렵한 스키실력을 감탄하며, 나와 가브리엘은 겨우 발렌타인을 따라갔었다. 3천 미터가 넘는 설산 꼭대기에서 눈바람을 일으키며 셋이서 그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내려간 산장에서 호호 불면서 같이 마셨던 뱅쇼(Vin chaud: 와인에 계피등을 넣어 끓인 것)와 쇼콜라쇼(chocolat chaud: 핫초코)의 따뜻함이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난다.
유난히 그 해에 조금씩 발렌타인에게 차도가 보이는 듯했었다. 그래서 그 일은 우리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심지어 발렌타인은 회사도 다니고 있었다. 발렌타인 부모님의 이혼 이후 그 해가 발렌타인의 마음이 가장 안정되어 보였다. 이제 그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완전 잘못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발렌타인은 그 어둠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매주 받는 상담도 나와 공유하는 공간도 발렌타인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와 가브리엘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바캉스는 어둠에서 잠시 외출한 시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친구들 모두가 원했다. 멀리 있는 발렌타인 가족들도 원했다. 발렌타인이 그 어둠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발렌타인에게 같이 지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결국 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발렌타인이 세상을 떠난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불안은 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너무도 오랜 기간 힘들어하는 발렌타인을 보면서, 언제 우리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사실 내 꿈에서처럼 발렌타인이 스스로 떠나기를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점점 쌓여온 약의 무게가 발렌타인을 그렇게 짓눌러 버린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알려진 사인은 심장마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가 모두에게 더 혼란스러웠다. 발렌타인의 마지막 마음을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했다.
지금 출근하면서 지나는 이 다리 알렉산더 3 세교는 나에게는 빨리 스쳐 지나가고 싶은 다리이다. 그해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어려울 때면 알렉산더 3 세교 앞으로 걸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파리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다리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차갑고 처연한 느낌이다. 다리 위의 19세기 화려한 천사 모양 장식과 적당히 어울릴만한 우아한 조명. 그 조명은 따뜻한 느낌이 날듯 말듯한 조도였고 그런 다리를 보고 있으면 내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은근한 조도의 조명은
내 마음도 딱 그 정도의 온도만 남기고 다 꺼버렸다.
알렉산더 3 세교의 우아함과 화려함은 나에게는 너무나 차갑고 또 매정했다.
'다리 건너 앵발리드 앞 잔디밭에서, 나와 가브리엘 발렌타인 이렇게 셋이서 피크닉 하고 노래했었는데...'
그래서 그랬을까 내 마음이 어려우면 자연스럽게 이 다리를 향해 내 발이 움직였다.
그해 그렇게 꽤나 자주 무작정 이 다리까지 걸어왔다.
그래도 차마 앵발리드 잔디밭에는 가지 못했다.
딱 이 다리까지였다.
다리에 서서 강을 마주 보고 힘껏 소리를 질렀다. 차가 매연과 소음을 내며 지나갈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질러내는 소리를 그 안에 묻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출근하며 이 다리를 지날 때면,
내가 어렵게 묻어 놓았던 것들과 다시 마주하게 될까 마음이 좋지 않다.
10년도 더 전 그해에는, 그 밤에 이 다리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아주 이따금씩 지나갔다.
그래서 어쩌면 이 다리는 내 목소리뿐 아니라 내 발걸음 내 숨소리 모두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종종 드는 생각, '내가 나쁘지. 내가 못된 X이지.'
괜찮냐고 물어봐 줬어야 했다. 괜찮다 해도 또 물어봤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발렌타인이 말하기 싫어할까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내 마음이 편한 대로 아무 말하지 않은 것일까 마음이 무겁다.
내 삶도 바빴다. 나도 그때 일이 너무 많았던 시기라 너무 지쳤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발렌타인의 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야. 내가 개입하면 안 되지.'
사실 그랬다. 스스로 더 다치지 않고 발렌타인이 스스로 그 어둠에서 나오도록 지켜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너무 돕고 싶고 힘이 되고 싶었다. 나도 정말 뭐든 하고 싶었다.
옆에서 지켜만 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괴로웠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괴롭다.
이유가 무엇이건 원인이 어쨌든, 빛이 다해가는 친구를 옆에 두고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나의 후회가 지금도 나와 늘 함께한다.
‘한다고 안되었을 수도 있잖아. 센 약을 오랜 세월 복용해서 더 이상 못 이긴 거라면? 심장마비였잖아.‘
이제는 그 진실이 뭔지 알 수 없다. 그 부분이 괴로움의 무게를 더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발렌타인은 그때도 나를 배려했던 걸까?’ 내가 혼자 남을 때를 미리 생각해 같이 지내던 집 밖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발렌타인은 늘 우리를 배려했었다.
부모님 이혼 전에 그녀는 여름철 해바라기 밭 같았다. 밝고 눈부시게 환했다. 착하고 늘 배려하며 웃음이 많았다. 동생들에게 언니 오빠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늘 그랬다.
그렇지만 그 해바라기 밭이 가을이 되면 꽃잎이 마르고 갈색으로 타들어가 검은색이 되듯이, 발렌타인에게도 까맣게 시들어버리는 가을이 온 듯했다. 그리고 그 계절에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그런데 내가 배려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조금만 더 손 내밀어 주었으면 좋았잖아... 그냥 조금만 더 말해주지... 아프다고 하지. 힘들다고 하지…‘ 어쩔 때 생각하면 발렌타인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내, 우리 또는 나의 문제였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할걸... 그날 잠들지 않고 찾으러 나갔더라면...'
이 모든 생각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왔다가 갔다가 늘 내 곁에 머무른다.
이 파도를 일상으로 겪으며 이제는 정확히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발렌타인이 어딘가 우리와 연락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내 정신이 나간 걸까?'
그래서 이번만은 후회하고 싶지 않다.
'절대 가브리엘까지 잃고 싶지 않아.'
운전하는데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백미러를 한번 쳐다봐 주었다.
“띠리링링”
‘갑자기 이 새벽에 무슨 전화이지?’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글쓴이의 말 : 안녕하세요, 소설 "이제 꺼져 몰리토, 자책과 두려움" 6화는 12월 4일 연재합니다. 12월에 더 풍성한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